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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Aug 29. 2022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군인의 죽음

군인도 잘 모르는 군대 이야기

나의 직업은 군인입니다



산사람 살아야 하고 죽은 사람은 얼른 보내주고(1-2) 1900710


장례는 최종 2일, 가족장 기독교식으로 진행되었다. 수의로 군복을 준비하고 발인하고 마무리 단계인 화장을 끝내고 고인의 최종 종착지가 결정될 때까지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282번지 소재 제7 지구 봉안소, 일명 벽제 임시 봉안소에 안치되었다. 이곳에는 폐품 수집소(군에서 발생하는 각종 폐품을 처리하는 곳), 버리는 각종 폐자재, 모포 세탁소 등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서 가장 좋아 보이고 새 건물로 가장 안쪽에 있는 건물에 사연 많은 군인의 유골이 보관된다.


2층 건물로 1층은 사무실과 간단한 추모행사도 할 수 있는 강당 등이 있고 2층에는 유골 보관대, 실미도 희생자 유품과 유골 등이 보관되어 있었다. 현재는 30여 칸이 봉안되어 있고 각 칸은 20cm × 30cm 넓이에 높이도 20cm가 안되었다.


욕심 많은 사람에게 '죽으면 땅 한 평도 넓다'라고 하는데 한 평이면 엄청난 넓이라 생각되었다. 하기야 화장한 후 잘게 가루를 만들어 뿌리면 아무것도 이 세상에는 남을 게 없으니 세상을 달리해서는 가질 수 있는 물리적은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것이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고인들의 사진과 누군가 다녀간 흔적들..  꽃 등 생전에 좋아하거나 즐기던 것들이 같이 놓여 있었다. 담배, 라이터, 과자, 책, 컵라면, 가족사진, 갓 태어난 100일도 안된 아이랑 눈을 마주치며 얼굴을 붙대고 누워 있는 모습,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함께 한 모습, 친구들과 놀러 가 즐거워하던 한 때, 짧게 자른 머리에 군복을 멋지게 입고 활짝 웃는 얼굴....


그 좁은 개인 공간에 작은 태극기에 쌓여있는 함, 그 옆 빈 공간에 이런 것들이 들어가 있었다. 그 좁은 공간이 부족하면 아래 바닥에 둔 것들도 있었다. 그중에서 특이한 점은 사진 속 모두는 하나같이 밝게 웃거나 행복한 모습들이었다. 그 사진들을 갖다 놓은 건 남은 사람들일 것인데...  


그 미소가 남은 이들의 자기 위안인지? 이제 세상을 달리 한 사람들이 남겨진 이들에게 주고 간 감사함의 표현인지? 알 수는 없으나 아무 관계도 없는 이들에게는 삶에 대한 반성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돌아볼 계기를 주는 것임에는 분명했다. 어찌 보면 죽은 이들로 인해 새롭게 느껴지는 '주어진 삶에 대한 감사함'일 수도 있겠다 싶었졌다.


그 작은 유품, 고인들이 아끼던 소소한 것들이 떠난 이가 주고 픈 선물이라면 남겨진 이들에게 말 한마디 없이 불쑥 떠난 이에게 꼭 하고픈 말들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저기에 하트 모양의 포스트 밑에 이런저런 사연과 기도, 다른 세상에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진실되게 정성 들인 꼭꼭 눌러쓴 글씨체로 쓰여 있었다.


'이 나쁜 놈아! 뭐가 그리 힘들어서 먼저 갔냐? 오늘  ㅇㅇ 100 일이다. 얼마나 이쁜지 아냐? 하늘에서 잘 보살펴 주라! 보고 싶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곳에 오면 항상 든든하고 활짝 웃는 모습이 생각나는구나! 보고 싶어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가 없구나! 끝까지 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부디 좋은 곳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거라! 사랑하는 엄마가'


'형이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못 알아 봐줘서 미안하고 그래도 형이 ㅇㅇ이 미워한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형 미워하지 말고 좋은 곳 가서 푹 쉬어라 고생 많이 했다. 형이 시간 나면 보러 올게'


'우리 아들 ㅇㅇ아! 보낸 지 벌써 49일 되었구나! 울 아들 멀리 보낸 게... 엄마는 지금도 어리둥절하단다. 아직 군복 입은 네 친구들 보면 가슴이 먹먹하단다. 좋을 곳에서 좋은 일만 있어라. 어찌 됐건 ㅇㅇ이 엄마 아들이니까'


'울 사랑하는 아들 ㅇㅇ아! 엄마는 지금도 어리둥절하단다. 그래도 힘든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조금이라도 내색이라도 해주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요놈아 좋은 데 가서 잘 지내고 있어. 엄마도 나중에 다 찾아갈 테니... 안 좋은 기억 나쁜 기억 다 버리고 좋은 기억만 가지고 그곳에 가 있어라. 울 ㅇㅇ아. 아들! 엄마가 많이 사랑해!


'ㅇㅇ아! 엄마 아빠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요 너는 하나님의 자녀 천국에서 만나자 그동안 수고했다 사랑한다 ㅇㅇ아'


'ㅇㅇ아 사랑해 온 가족이 복음으로 하나 되어 행복한 삶을 사시기로 하셨단다. 천국에서 만나자'


'사랑하는 ㅇㅇ아! 이 땅에서 우리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우리 영원한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를 기약하며 ㅇㅇ이 가족 모두 하니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함께 할게'


다들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갑자기 닥친 불의의 일에 놀라움, 아픔 등을 표현한 것들이었다.


만약 떠난 이들이 단 몇 초만이라도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 진다면 뭐라 할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 될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무심코 낭비한 시간들 중 조금만 저축해서 이럴 때 꺼내서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 본다.


하나님도 야속하게 느껴진다. '미리 알려 주었으니 시간을 제대로 활용 못한 너희들 잘못이다'라고 하실까? 아니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온 인간의 어리석음인가? 남은 자와 떠난 자의 현생의 삶을 나누는 부여받은 임무를 하면서 우리들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고 경건한 마음을 되찾게 된 시간이 되었다.


세상을 달리 한 이들의 이승에 남겨진 마지막 흔적들을 보고 나오자니 한 시인이 생각났다. 크리스티나 로제티 (Christina G. Rossetti, 1830~1890)라는 영국 런던에서 태생의 여성 시인, 한 번도 대화해 보지 않은 그의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다.



사랑하는 이여 나 죽거든            

                                                     크리스티나 로제티


나 죽거든  사랑하는 사람이여,

나를 위해 슬픈 노래 부르지 마오

내 머리맡에 장미화도  심지 말고

그늘지는 사이프러스도 심지 마오


내 머리 위에 푸른 잔디 퍼지게 하여

비와  이슬에 젖게 하여 주오

그리고… 당신이 원하시면 기억해 주셔도 좋고

아니면 잊으셔도 좋습니다.


나는 그늘을 보지 못할 것이며

비 내리는 것도 느끼지 못할 겁니다

슬픔에 잠긴 듯 울어요는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도 듣지 못하겠지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또 보이지 않는

날이 새고 지지도 않는 어둠 속에 누워 꿈꾸면서

아마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할 겁니다.

아니, 어쩌면 나도 당신을 잊을지도 몰라요.


 When I am dead, my dearest        

                                                     Christ G, Rosstti


When I am dead, my dearest,

Sing no sad songs for me;

Plant thou no roses at my head,

Nor shady cypress tree:


Be the green grass above me

With showers and dewdrops wet;

And if thou wilt, remember,

And if thou wilt, forget.


I shall not see the shadows,

I shall not feel the rain;

I shall not hear the nightingale

Sing on, as if in pain:


And dreaming through the twilight

That doth not rise nor set,

Haply I may remember,

And haply may for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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