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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May 04. 2023

양양 남대천 #1


남대천의 사계(1-1)


보라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내 나라 내 겨래


남대천과 함께하는 산책 (1-1)

산책은 시원한 물길을 따라 뚝방길을 걸으며 하는 것이 최고이다. 그것도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사색과 함께 한다면...

특히, 집이나 직장 근처에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행운이다. 그 물소리가 시냇물이 되었건, 또랑물이 되었건 작은 하천물이 되었건...

그러고 보면 나는 행운아이다. 첫 부임지부터 가까운 곳에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해금강의 수원인 오소동 계곡, 냉천리 금강산 건봉사의 실계천, 부대를 관통하는 작은 시내, 서울 한복판 수방사의 관악산 계곡 등... 심지어 지금 이곳 양양에서도 가까운 곳에는 물소리가 들린다.

남대천!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쉽게 접할 수 있는 낯익은 지명이다. 어느 학자는 한반도에서 흔한 하천 이름으로 남대천(南大川)을 손꼽았다 한다. 널리 알려진 지명만 12개이다. 동해에만 9개, 길주, 단천, 이원, 북청, 안변, 강릉, 양양, 평해, 울진, 서해에는 2개, 장연, 무주, 남해의 의성 등 총 12개이다.

그중에서 단연 최고는 양양 남대천이다. 집 근처에 있고 출퇴근 길에 언제나 함께하는데 오대산과 설악산에서 발원해서 동해로 흘러간다. 연어, 은어, 황어, 피라미 등 청정 어류의 산란장이 되어 주기도 한다.

동해바다가 맑은 이유 중 하나가 남대천 때문일 거라는 생각도 해 본다. 공장이나 축사 등 주변에 더러운 물이 나오는 시설이 없는 데다 더러운 사람도 없다. 태백준령의 바람과 계곡, 수풀들이 건너편 서쪽에서 겨우 넘어온 미세먼지들도 다 씻어 주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올라 남대천을 비추는 태양은 신선한 아침 공기를 뚫고 세상사 온갖 번뇌로 탁탁해진 가슴마저 정화시켜 주며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또 퇴근길 서쪽 하늘은 어떠한가? 스스로 어두워지는 설악산은 마치 눈치 빠른 무대 감독이 최고의 기술로도 표현할  엄두조차 못 내게 한다. 매일매일 다른 석양과 구름으로 그려진 동양화를 품어 안은 병풍이 된다.

눈부시지 않은 편안한 붉은 기운은 어떠한가? 온종일 얽히고설킨 인간사로 지친 복잡한 머리를 정결하게 해 준다. 마치 머릿속 해마가 뉴런을 마구잡이로 만들어 내는 듯하다. 설악산 너머로 지는 석양을 비추는 남대천의 물결과 함께 보노라면 인생 참 살만하다는 생각까지 절로 든다.

낮에 보아도 흐르는 물 색깔이  울긋불긋하고 징검다리나 바닥에 낮게 깔린 돌에 부딪혀 살짝 하얀 물결치는 모습은 파스텔이 뿌려진 이쁜 종이 위에 펄을 뿌려 놓은 듯한 착각마저 들게도 한다. 혹, 오색약수가 더해져 저런 여러 가지 빛깔로 반짝이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물이 바다까지 계속 이어지니 동해 바닷물이 더러울 수가 있겠는가? 물에도 영혼이 있다면 그들도 감사해할 것임에 틀림없다. 하늘에서 오래간만에 땅 구경하러 내려왔는데 만약 태백준령 서쪽으로 떨어지거나 흘렀더라면 어쩔뻔했는가?

혼탁한 서해바다까지 가는데 온갖 더러운 곳을 지나야 하고 또 얼마나 볼썽 사나운 인간사들을 보겠는가?

그러고 보니 여기는 물 흐르는 소리도 해맑게 크고 맑기만 하다. 밤하늘의 별과 달빛도 선명하게 비춘다. 어떨 때는 하늘의 그것보다 더욱 뚜렷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덕분인지 남대천 둑길을 걷노라면 눈과 가슴이 맑아진다.

설악산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지금 것 폐에 쌓인 묵은 먼지를 밖으로 밀어내는 힘도 있는 듯하다. 탁함이 사라지는 폐를 호흡으로 느끼게 된다.

거기에 더해 매일 물소리를 듣고 낮이고 밤이고 반짝거리는 물결을 보면 어린 날 길에서 반짝이는 동전을 본 것처럼 살아 있어 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긴다. 아마도 삶에서 특별한 보너스를 받은 듯하다.

둑을 걸으며 사색하고 풍경과 대화도 한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감사한 존재이다. 그래서 이름도 지어 주었다.

성은 남이요, 이름은 대천!
우리는 26년 전 잠시 스치는 인연이 있기는 했었지만 서로를 의식하기 시작한 건 얼마 전이다.

차가운 태백준령의 칼바람과 꽁꽁 언 얼음에 가려진 모습밖에 없던 것이 첫인상이었다. 낯선 곳에 온 이에게 힘내라며 창을 세차게 두드리며 나오라 부르기도 했고 늦게 나왔다고 얼굴을 차갑게 때리기도 하는 까칠하면서도 냉철한 성깔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새로운 곳의 일에 적응해 갈수록 남대천 둑길이 편해졌는지? 남대천 둑길과 친구 되어 부대가 좋아지는지 알 수는 없다.

단지 이곳의 모든 살아 숨시는 생명력처럼 냉기 품은 한 겨울바람에도 봄은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 둘 언 땅을 뚫고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자연의 위대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경외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우리의 대화와 사색을 같이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곳 양양 남대천! 그 감사한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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