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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Jun 26. 2023

산사람 살아야 하고 죽은 사람은 얼른 보내주고1

산사람 살아야 하고 죽은 사람은 얼른 보내주고(1-1)   1900710

한 젊은이가 한강에 뛰어내렸다. 왜 삶을 마감하려 했을까?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그를 죽음으로 내 몬 사람들은 어찌 되는가?

얼마 전 북한에서 자유 찾아 목선이 삼척항으로 무사히? 입항했다. 대한민국을 며칠간 들었다 놓았다 한 일이었다.

수상 구조대에 의해 급히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거기까지였다. 심폐소생술도 한계가 이을 하던 응급실에 사인을 정확히 밝혀야 하는데 부검은 부모 동의하지 않아 대신 수도통합
병원에서 CT 촬영으로 가능하고 다시 시신은 부모 지인이 안다는 집 근처의 장례식장으로 근처 부대의 앰뷸런스로 옮겼다.

사안이 예민해서 그런지 상급부대에서 통상적이지 않게 대령급 참모가 현장에서 사복을 착용하고 장례절차를 통제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왔다.

장례식장에는 이미 육본 장례지원팀이 나와 장례 관련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장례식장 상황을 분주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런 시스템 덕에 예전보다는 해당부대에서 갖는 외형적인 부담은 줄었다. 서빙병, 유족 도우미, 조문객 안 내죠 등의 용어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부하를 잃은 그 부대 지휘관 등이 갖는 심적인 충격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듯 느껴졌다. 해당 대대의 주임원사, 그 중대의 행정보급관 둘이 유족들 가까이서 불편함이 없게 보살피느라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아픔까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두 부사관들도 밤새 잠 한숨 못 잔 육체적 피곤함에 부하의 귀한 생명을 지키지 못한 도덕적 죄책감까지 겹치고 더하여 많은 전화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데서 오는 심적인 스트레스 등은 극심한 듯 보였다.

게다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목선 귀순이 발생한 부대의 인명사고라서 그런지 여러 가지 억측과 유언비어 등이 난무했고 아침부터 언론은 관련 기사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북한 목선 사건과 연관성이 있다는 측과 없다는 측의 쓸데없는 공방도 이어지는 듯했다. 죽은 사람은 빨리 그것도 조용히 보내주어야 하는데....

이런 배경 때문인지 벌써부터 여러 언론 매체들이 취재 중이었다. 먼저 와서 기자들 동향을 살피며 어느 매체 왔는지 확인하느라 돌아다니는 중위 공보장교, 사단에서 현장지원팀이라 편성되어 나온 참모부 실무자들, 헌병수사관 등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또 어디다 전화를 하는지 다들 전화기 너머 누군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에 대해 열심히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 가간이 었다. 이에 더해 뭔가를 알아 기사거리를 찾는 기자들...

참 떠난 사람은 말이 없는데, 산사람들은 왜 이리 난리인지하는 의문도 들었다. 한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배경으로 한 인간들의 삼라만상이었다. 정성 어린 마음으로 장례절차를 마무리한다는 임무를 가지고 왔던 터라 어수선한 주변 정리가 필요했다. 다들 모았다.

먼저 어디서 몇 명이 어떤 과업을 받고 왔는지부터 확인했다. 유가족의 접촉은 어제부터 와 있던 해당부대 부사관 2명, 육본 지원팀 2명, 사단 인사참모로 접촉을 최소화시키고 각자 보고해야 할 내용을 통일하기 위해 단톡방을 개설해 정보를 객관화해서 확인되지 않거나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인해 의혹, 왜곡, 오해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리했다. 취재 기자들이 오고 가면서 잘못들은 이야기로 엉뚱한 기사가 나가지 않게 표정, 말조심을 당부했다.

이렇게 한다고 인간들이 말을 잘 따르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 기대도 안 했지만 역시였다. 공보장교 둘이는 자꾸 기자들을 찾아가는 등 불필요한 접촉을 하고 사단 실무자들은 몰려다니는 등 감독과 지도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은 안일한 언론대응이 문제가 되었다는데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한 듯 보였다. 초급공보장교들이 국방부, 육본 핑계를 대며 통제를 안 따르기에 누가 지시했냐며 실명을 이야기하라 했더니 말을 안 하고 버벅거린다. 이러한 기회에 기자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만들거나 영웅심리가 발동한 게 아닌가 추측되었다.

유족들은 주변에 가까운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알리지 않았다 한다. 친척 일부와 교회 신우들만 조문 왔다. 야간에 삼척으로부터 부대 조문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사령관의 조문이 오락가락했다. 실무과장을 통해 조문할 것이라 연락이 왔는데, 왜 오냐 했더니 대답도 참 기가 막히게 한다. '사령관님은 전우를 사랑하셔서 모든 조문을 하신다'라는 것이다.

'그럼 그 많은 조문을 다하시냐? 그렇다면 직무유기다. 부대지휘는 언제 하시느냐? 괜히 기자들 취재 중인데 오셨다가 삼척 목선과 연관성만 키울 수 있으니 조언 잘해드려라' 알려 주었다. 조금 있으니 지상파 방송국 카메라가 자리를 잡고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비서실장에게 보냈더니 그제야 직접 조문을 안 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참 생각이 없는 건지...

밤이 깊어지기 전에 장례절차는 협의가 되었다.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데...

2200을 기해 장례식장 정리가 필요했다. 육본, 사령부, 군단의 애매한 지휘선상에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으려 했고 뭔가는 생색을 내려하는 듯 보였다. 전장에 나간 장수 같은 마음으로 결정하고 통보하고 시행했다.

잔소리만 많은 곳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특이사항 없습니다!
장례식장 현 상황 및 야간, 내일 일정입니다.

* 현 상황
1. 유가족 반응 : 조문 왔던 용사들에게
    식사하고 가라고 친절하고 담담하게
     반응
2. 언론 : 2개 매체 2명(ㅇㅇ일보,
     ㅇㅇ경제) 취재 시도 중
3. 2110 부 이후 민간조문 없음
4. 사단조문(행정부사단장 등 70명) 2140부 복귀
5. 21시경 ㅇㅇ장님 조화 도착

*  종합판단
1. 민간조문객이 없고 가족들이 담담히 안정된 점.
2. 잔류기자들의 추가적인 취재시도 등을 고려 시 잔류 지원병력들과의 불필요한 접촉으로 인한 기삿거리 차단을 위해 통신상태 유지하 최소인원(3명)을 장례식장에 잔류시키고 기타 인원들은 주변숙소 대기 및 휴식토록 하겠음.

* 야간잔류 인원 운영 및 내일일정
1. 장례식장 잔류
   가. 유가족 : 4명(부모, 이모, 누나)
   나. 군지원 : 간부 2, 군종목사 1
        (장례식장 2층 빈방활용)

2. 주변숙소 대기
   가. 군단 : 인사처장 등 3명
      (ㅇㅇ군단 레스텔)
   나. ㅇㅇ사단 인사참모 등 5명
      (ㅇㅇ사단 회관)
   다. ㅇㅇ사단 운구간부 8명
      (수도군단 보충중대 막사)
   라. ㅇㅇ사단 군종목사 2명
       (개별 친지)

3. 내일 09시 입관
    (08시까지 지원팀 장례식장 위치),
    11시 발인, 13시 화장(성남), 이후  
    벽제 임시봉안소 이동

2200부 야간 지원태세로 전환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답신들은 하나같이) 다들 알았다고들...

(아침이 되어) 밤새 특이사항을 확인하고

야간에 특이사항은 없었습니다.
유족은 2300~2400 경까지 소등 후 휴식하다가
2400 후 철수했고 잔류간부들이 장례식장을 지켰습니다.
지원 병력들은 0800 한 현장 전개하여 임무수행하겠습니다.

아침에 아래사항을 재강조하였습니다.
유족들에게 정성 어린 지원, 엄숙한 언행, 언론접촉은 공보장교로 안내, 공식적인 문의/답변 등 불가피한 경우로 제한, 무더위, 강우 등 기상고려 차량 이동 간 안전운행 등입니다.

마치 작전을 지휘하는 마음으로 보고도 하고 통제도 했다. 어찌 되었건 주어진 임무이니 최선을 다해 완수해야 한다는  군인정신 때문일까? 이제 이 정신자세도 반성된다. 삶에 대한 한 사람으로서의 기본정신부터 바로 세워야 하는데...


#군인도 잘 모르는 군대이야기청원출판사(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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