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부터 그제까지 부산에 있었다. 환승 열차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당연히 동생이 나와서 기다린다. 22:08분 도착인데, 맨날 타고 다니던 SRT 대신에 KTX를 탔더니 내리는 곳이 달라서일까? 헷갈린다.
출구를 못찾아 헤매이다 광장쪽으로 나오다 보니 익숙한 간판과 에스컬레이터가 보여서 쉽게 찾았다. 약 20여분을 왔다갔다했더니 담배 생각이 났다. 실외로 나오기도 전에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네 입에 물고 밖으로 나왔더니 발걸음은 흡연부스 쪽으로 당연히 가고 있었다. 불을 붙이려니 저 쪽에서 동생이 손을 들어 부른다. 그렇게 나의 추석 부산여행은 시작되었다.
매번 집으로 가는 길이지만 이번은 다르다. 명절을 앞 둔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길에는 사람이 없다. 간혹 보이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한 여름이다.
기후변화고 이상 기후고 말도 많고 심지어 기도하는 문하생도 있다.
#3일차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더운 추석날입니다.
인류 문명이 붕괴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오늘 글방에 올린 숙제란다. 내 좋아하는 반듯한 목사님, 요즘 SNS를 너무 많이 보신듯 하다.
댓글을 달았다.
기후위기는 사기입니다. 어차피 인간이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빙하시대, 한반도 대기근 등 기상 이변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긴 시간 같지만 그 분께서 보시기엔 찰나도 안되는 시간입니다. 그걸 걱정하시기 보다는 저를 좀...
이렇게 팩폭을 하고 좀 심했나 하며 아래로 내려보니 또 기후 이야기로 기도하신다.
#2일차 가장 더운 추석 연휴입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해 나갈 연대가 필요합니다.
글방 리더로서 댓글을 보니 내만 엄지척으로 싸인을 보냈다. 실제 덥기도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온도이고 내 마음의 온도는 한 겨울이다. 바다를 보며 젊음을 보며 그 시절 한 여름의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뜨거운 열정은 간데없고 한낱 이 정도 더위에도 비실거리는 이 모습은 현재이다. 그 때는 심장은 폭주하는 기관차같았다. 뜨거운 열기로 오로지 앞만보며 내달렸다. 누가 뭐라해도 앞만보고 뛰었다. 주변의 소리는 모두 들리지 않았다. 귀기울일 틈도 여유도 없었다.
더울 때는 바다가 최고지. 바다로 가자!
“광안리 가자”
“에~이, 더운데, 나이 무가지고 아~아 들 노는데 와 가노?”
“내도 소년이다.”
“누가 치주나, 희머리가 뿌옇구만, 마 집으로 가자. 피곤타”
“집에 가 봐야 엄마, 아부지 주무실건데”
“운전은 내가 하니, 마, 조용히 구경이아 하소”
그렇게 쓸데없는 대화를 하다보니 부산진역을 지나고 서면을 통과하고 있었다.
집에 오니 두 분이 주무시지도 않고 기다리신다. 부모님은 아직도 같은 방에서 주무신다. 연세도 있으신데 코고는 소리도 안내시는가 보다. 한 침대에 지금것 같이 계시니 한 60년을 지금처럼 주무셨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다행이다.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겨도 나머지 한 명이 119에 전화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두분이 같이 하는 삶, 혼자가 아닌 삶은 외롭지 않다. 엄마도 아부지가 필요하다. 시장에 갈 때 무거운 걸 들어 주시고 허리가 불편해 집 청소도 도맡아 하신다. 동생은 아부지를 엄마 머슴이라고 놀린다고 한다. 머슴을 둔 할머니다. 그런 엄마 생일은 음력 8월 13일이다.
오는 길에 엄마 생일 겸 추석 용돈을 찾아오길 잘 했다. 주식한다며 물려 있는 돈 때문에 많이는 못드린다. 조카들 용돈도 그렇고, 몇 년 전에는 대충 끄적인 글 덕분에 인세를 받아 자랑하면서 드리기도 했는데...
지난번까지 집에 도착할 때면 매번 듣던 말씀이 있었다. 이번에도 빼먹지 않으신다. 차 가져오지 마라!
길도 막히고 위험하다고 하신다.
"아부지, 단체로 오려면 한 20만원 들어요. 내려 오는데만,"
"차비 줄게"
"편도요,왕복이면 40만원요"
"너희들 돌벌어서 어디쓰냐"
그러면서 나누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엄마는 그러셨다. 차가지고 내려오면 아부지가 걱정을 하셔서 안절부절하신다고... 노인네 걱정 끼치게해서는 안된다. 이제 좀 있으면 90세가 될 것이다. 같이 할 시간도 얼마 없다. 평생을 자식들 걱정으로 사신분들이다.
아부지의 눈썹이 많이 빠졌다. 엄마는 배고플거라며 냉장고를 여신다. 내 나이 벌써 몇이던가? 부산에 간다고 하니, 아내는 엄마 찌찌 만지고 오란다. 농담의 수위가 높다. 슬데없는 소리한다고 쏘아 붙였다.
나의 추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충 숨을 돌리고 습관처럼 핸드폰을 열어 보았다. 전도유망한 문하생 한 명이 숙제를 보내 왔다.
240912 누구도 기억 못하는 숙제 수행
인생의 목표가 있다하더라도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다 보면 지금 뭘하고 있는지 과연 무엇을 위한 나의 행동인지 헷갈린다. 그저 숙제를 수행하다보면 지나고 나서야 내가 방향성대로 제대로 왔구나 느끼게된다. 근데 신기하게도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더 나은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
오늘도 숙제를 받았다. 하지만 그숙제 주제가 뭐였는지 선생님도 나도 기억을 못한다. 같은 가치관과 방향성만을 갖고 오늘도 난 고뇌한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방향성 자체가 나의 이정표요 네비게이션이다. 가는길을 안내할뿐 깊숙히 관여할 시간도 없고 꼭 그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방향대로 가다보면 이리도 갔다가 저리도 갔다가 언제가는 목표 넘어에 더 좋은 것에 도달하더라. 선생님 감사합니다.
내도 숙제가 생각났다. 부산에서 해야 할 일들, 몇 개나 할 수 있을까? 능력 범위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해야지. 나쁜 머릿속은 복잡하다. 경중완급으로 이리저리 정리해 본다. 인생은 짧고 머리는 나쁘고 할 일은 많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보니 어지럽다. 다시 핸드폰을 의식하고 내려 본다.
240918 24 추석연휴를 보내고
긴 추석연휴다. 무지 덥다. 반바지 추석을 보내적이 있던가 이것도 처음인데 아버지가 없는 추석도 처음이다. 추석에 이것저것 많이도 했던거 같은데 지금은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버지 돌아가신 작년 추석이후 더 한가해 진다. 누구도 뭘 할지 바라지도 않고 나는 내 뜻대로 한다.
현충원에 다녀왔다. 아버지 같았으면 제사음식 싸들고 간단하게라도 의식행사를 했을텐데 난 불필요한거 같아 가족들과 찾아가 기도만 하고 왔다. 그 사이 누가 다녀간듯 꽃이 놓여있다. 각자 맺은 인연대로 그리워하고 기념하는 방식도 달리하는게 좋아 보였다.
걱정했던것만큼 쇼파와는 한몸은 되지 않았다. 영화도 보고 요리도 하고 안하던 설겆이도 하고 빨래도 개고 서점도 가고.. 참 많은 일을 했다. 관악산 등반을 생각했는데 더워서 그건 패스..
사실 게을러서 그랬다. 안양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가기 싫다. 가게되면 수영장도 가고 관악산도 가리라. 그치만 자꾸 미루는 내 모습을 보니 오늘 저녁에나 안양에 도착하겠네. 나도 스스로 통제 못하는게 내 의지의 문제만은 아니니라. 집이 좋아서 그러겠지.. 눈치가 보인다. 와이프는 자꾸 가란다. 그렇다고 간다고 하면 아쉬어 한다. 물론 착각이겠지만..
그래 결심했어.(?)
그래 우리 아부지는 살아 계신것만해도 감사하다. 앞으로도 두 분이 오래 지금처럼 기다려 주시고 명절 때 갈곳이 있는 내가 행복하다.
집에서 엄마 반찬을 먹고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갔다. 어제 지나 온 서면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다. 이번엔 어떤 놈들이 보일까? 궁금함은 잠깐 미뤄두고 목적지를 찾는 것도 버갑다.
부전시장 근처인데.. 여기 꼼장어 맛있다. 그런데 부산 놈들이 또 횟집이다. 점심은 동생이랑 회덮밥에 소주 한 잔. 대낮부터 술 먹고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나갔다.
겨우 찾았다. 추석 전이면 고등학교 동창녀석들은 늘 빠짐없이 모임을 한다. 몇 년에 한번 나와도 언제나 반갑게 맞아 준다. 내 인생 최고의 재산이다.
부전시장 어디 쯤엔가 있는 횟집이다. 평생을 고향에 사는 놈들이 부럽다. 기다려라. 나도 조만간 온다.
이번 모임에도 누군가는 없을 것이다. 어떤 친구는 교통사고로, 또 누구는 백혈병으로, 또 누구는 암으로...
또 누구는 아내가, 자식이, 부모님이...
우리도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다. 살아 있다는 행운으로 나는 그들의 사연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잊어 버릴 것이다. 누구는 명절 모임을 가는 것이 아니라 생사 확인하러 가는 것이라고도 한다. 사실이다.
그래도 소득이 있다. 친구녀석 아들이 장교가 되는 준비를 한다고 한다. 몇 가지 조언?을 했다. 고맙다고 한다. 내야 친구 아들이니 당연히 도리를 하는 것이다. 뭐 그냥 평생을 하는 일, 그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질문하고 평가하는 녀석들, 사실은 내가 그 중에 몇 명은 질문하고 평가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평가를 받고 누군가에게 질문하고,
그리고 카카오로 선물 좀 보내주고 그러면 고마워하고 불편하면 알아보지 마라고 해도 누군가는 알아서 처리 할 것이고...
무인카페에 이러고 할 일없이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내가 웃기다. 반대편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 8명이 축구공 2개와 함께 있다. 다들 핸드폰으로 게임을 한다. 공간을 빌린다고 음료수도 하나씩 주문하고, 하기야 에어컨 바람 아래 있는 값은 해야하니 그래야 할 것이다. 저 친구들도 상도의를 안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다. 저들처럼 해맑지 못했다. 뭔 세상에 그리 불만이 많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