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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렌지 고장

내 몸도 정신도 고장

by Faust Lucas

전기렌지


240819 1100

누구도 도열이나 영접을 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한쪽에 시니어 정도로 보이는 남녀 서너 명이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 중이었다. 한쪽에선 남성 한 명이 텃밭에 물을 주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또래의 여성이 상치 같은 나물들을 뜯고 있었다.


여단장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대형 모니터 앞에는 하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한 반 대머리의 남성과 여성이 차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한쪽에서 등에 작은 가방을 멘 등산복 차림의 남성이 모노레일을 만지작한다. 이쪽을 힐긋 한번 쳐다보더니 그걸 타고 철책을 따라간다.



여기는 과거의 전방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생활하며 전방경계를 하고 계시죠. 저희는 후방 지휘통제실에서 어르신들이 근무하시는 모습만 모니터링하면 되지요. 또 저렇게 모노레일이나 전동차를 타고 철책 순찰을 하시면 센서에 의해 다카운터 되고 거기에 맞게 수당이 지급됩니다.
아 그래요.



네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그냥 본인들께서 알아서 하시는 거죠. 뭐 텃밭도 가꾸시고 닭도 키우고... 제가 알기론 전부 무상임대받아 사용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전방이 아니네요?



그래도 경계는 저분들이 다 문제없이 하십니다. 잔고장 나는 경계센서들도 직접 다 수리하십니다. 은퇴는 했지만 예전에 다 한 가락들 하신 분들이십니다.



저 쪽에 계신 여성분은 여기서 키운 것들로 주변분들과 식사도 하시고
좋네요. 근데 혹 월북이라도 하면...
여기서 저 비무장지대를 너머 월북한다고요. 에이, 그건 말도 안 되는 말씀, 누가 가겠습니까? 실제 가신다 해도 보통 체력 가지고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한번 보세요.

그도 그럴 것이다. 우리보다 못싸는 나라, 밥 먹기도 어렵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이닌가? 김작가는 다른 곳도 보고 싶었다.
대충 보셨으면 이동하시죠.
네. 네.


현역들이 있을 때는 누구 온다고 쇼를 했을 것이다. 청소하고 정리하고 경례 잘해라는 등, 혹 뭔가를 물으면 답변을 어떻게 하라는 둥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라 해도 저 사람들이 하지도 않을 것이다.

도로를 따라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차창밖에 철책을 옆에 두고 이동했다. 가는데 한 노인이 걷고 있었다. 차를 세워 그에게 김작가는 물었다.
어디 가세요?
네. 순찰? 등산하는 거죠.
혼자서 전방을 걷는 게 무섭지 않으세요?
젊은 양반이...
그러면서 북녘땅이 내려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가방에 매달린 작은 스피커에서 얼큰한 뽕짝이 들린다.


여기는 우리 땅, 제들은 오려면 쫌 힘들겠지요. 일단 다 오이고 지뢰밭도 지나야 하고, 나야 뭐 김밥 한 줄, 오이 하나, 막걸리 한 통이면 충분해요. 거기다 돈도 주고
여기 오시기 전에는 뭐 하셨나요?



마누라 먼저 보내고 말동무도 없고 혼자 지하철 타고 가까운 산에 다녔죠. 그러다 친구 놈들도 한 놈 두 놈 가고 아프다고 못 오고 여기 좋아요.


저녁 되면 퇴근한 친구들과 식사하고 한 잔 하고, 바빠요. 가는 길에 텃밭도 돌아봐야 하고,..
이렇게 순찰하시면 힘들지는 않고요?



철책 잘못된 곳 있으면 사직 찍어 보내주고 그러고 건당 수당 받고, 우리 동네에 있는 다른 사람이 또 와서 고치더라고요. 재밌어요. Km 당 천 오백 원이거든요. 그거도 짭짤합니다.



그러면서 막걸리 한 통을 꺼낸다. 가방에서 조그만 봉지를 꺼내서 된장에 고추하나를 찍어 먹는다. 이런 제도를 만든 대통령 그 양반. 대단해요. 내 예전에는 욕 잘하고 해서 싫어했는데.... 우리를 이처럼 챙기는 사람이 있었나? 아주 훌륭한 분이시지.

그 노인과 그렇게 간단한 인터뷰를 끝내고 차에 다시 올랐다. 이동하면서 보이는 풍경은 평화롭고 편안해 보였다.

옆에 앉은 그녀가 물었다.
감회가 어떠세요?
뭐 그렇죠.
참 글은 잘 쓰시는데 말씀은 좀 그렇습니다.
뭐가 그래요?
호호호. 저도 작가님과 같이 있다 보니 닮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저분들과 나이 차이도 얼마 안되시는데...
...
청년이세요
청년?
요새는 65까지는 청년이라잖아요. 모르셨어요?
그건 젊은 MZ들이 그렇게 생각을 해 줘야지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엄마가 왜 잊지 못하셨는지 이해도 조금씩 되고요. 멋쟁이세요.


고맙네. 그건 그렇고 수술은?
출장 끝나면 바로 할 거예요. 엄마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요.
뇌 임플란트라...
부작용은 없대요?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엄마 기억을 제가 공유하는데 뭐가 문제 되겠어요?
아직 미완성인데...
뭐 잘못되면 제가 엄마가 되면 작가님은 좋으신거잖아요.
...
이렇게 젊고 어리고 이쁜 첫사랑을 만나고...
하하 하 웃기지 마세요. 농담도 참
어 진담인데요. 그렇게 돼도 저는 괜찮아요. 작가님 같은 분이라면, 엄마도 좋아하시겠죠?
...
김작가는 혼란스럽다. 그 수술 효과가 어떨지? 그리고 그녀 이야기대로 된다면?
그런 생각을 하다 스르르 눈이 감기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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