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용기

심채경,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읽고

by 스밍






미끌거리는 표지의 잡지 에디터가 되고 싶었다. 내 고향과 잡지 속에 있는 세상은 확연히 달랐다. 다들 정돈되고 멋있고 힙했다. 나도 그곳에 있고 싶었다. 문학 교과서에 나오는 정철의 <속미인곡> 에도 밑줄 긋기가 귀찮아 눈으로만 보던 내가, 색색깔 라이브 컬러펜을 들고 잡지에 밑줄을 그었다. 수능 공부보다 열심이었다. 수포자에 가까웠지만 잡지사가 있는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10개년 수능 수리 영역을 달달 외웠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대충 그 번호쯤에 자주 나오는 공식을 넣어봤다. 그렇게 어찌어찌 서울로 왔다.


이제부터는 내가 하기 달렸다고 생각했다. 학교 방송국에도 들어가고 기자단 같은 대외활동을 학기에 두세 개씩 하며 마음껏 쏘다녔다. 학교를 졸업하고 완성된 이력서는 만족스러웠다. KTX를 타고 가면서 봐도 잡지를 좋아하는 사람임이 분명해 보였다. 한겨울의 추운 날, 어시스턴트 면접을 본 날 저녁에 바로 합격 전화가 왔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급하게 나와 겉옷도 입지 못했지만 한순간 따뜻한 김이 온몸에 차올랐다.


첫 출근날, 출근 시간보다 두 시간 일찍 가서 회사 주변을 빙빙 돌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 힘들 나날이 펼쳐질 터였다. 그 당시 잡지사는 공채가 없어 어시스턴트로 진득이 버텨야만 에디터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마저도 누군가의 공석이 생겼을때) 에디터는 정규 월급을 받지만 어시스턴트는 몇 십만 원이 전부였다. 그래도 좋았다. 선배들이 생기는 것도, 선배들한테 혼날 것도 좋았다. 있는 동안 열심히 배워서 꼭 멋진 에디터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실 많이들 말렸다. 그중에는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잡지사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잡지를 좋아하는 이 마음으로 잘 버티면 될 성싶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있었던 일을 다 옮겨적을 수는 없지만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이상하다. 여성은 평등하다고 기사를 쓰는 어떤 선배는 여성 아이돌의 얼굴과 몸을 조각조각 비난했다. 20대 여성들을 위한 기사를 기획하는 어떤 선배는 정작 20대 여성인 내게 매일 이유없이 화를 냈다. 출근 날이 아닌 날 아침에 샤워를 하느라 전화를 받지 못하면 하나의 호통이, 카톡에 답장을 3분 안으로 하지 못하면 또 하나의 화가, 촬영에 가는데 차가 밀려도, 선배가 촬영 시간을 착각해도, 선배가 사 오라는 소품이 이태원 앤틱 가구점 모든 가게에 전무해도 모두 내가 멍청하고 센스가 없는 탓이 되었다.


큰 촬영을 앞둔 전날 오후 다섯 시 반, 선배가 내게 내일 촬영에 필요하다며 오륜기를 구해오라고 했다. 온라인으로 대여해주는 곳은 이미 예약이 다 되어 있었고 을지로 아저씨들도 집에 가버린 시간이었다. 오륜기가 없다고 선배에게 연락을 했다. 선배는 전화기 너머로 한숨을 쉬고는 말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오륜기를 찾아 60통이 넘는 연락을 했다. 하지만 오륜기는 없었다. 인생 처음으로 이대로 걸어가서 한강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참담한 기분으로 전화를 걸어 말을 전했다. 선배는 내 말을 듣더니 아무 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선배는 도착하자마자부터 나를 스쳐 지나갔다. 촬영장에서 난 투명인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백 명이 넘게 모여있는 촬영이었다. 나는 견고한 자세로 윽박을 경청해야만 했다. 점심을 먹는 시간에 몰래 구석으로 빠져나와 오륜기를 찾았다. 몇 시간 전에 수원에서, 중고나라에 올린 글이 있었다. 퀵으로 오륜기를 받아 선배에게 드렸다. 내심 잘했다고 말해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러나 선배는 벌레를 보듯 두 손가락으로 소품을 받아 들더니 한 곳에 치워버렸다. 바쁜 스태프들은 오륜기를 밟으면서 지나갔다. 포장지 위로 하나 둘 발자국이 쌓였다. 왁자지껄한 촬영장 반대편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오륜기가 꼭 나 같았다. 아무도 챙기지 않는 더러워진 소품을 조심히 챙겨 들고, 나는 그날 잡지사를 나오기로 결정했다.


그만두고 나서도 전화를 못받아 혼이 나는 꿈을 몇 번 꾸었다. 그래도 결정은 후회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자의적으로 나온 게 맞는 건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부족해서, 부족함을 못 견뎌서 나오게 된 걸 그날의 일과 선배 때문으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 다른 팀 어시스턴트를 하던 언니가 에디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거봐, 결국 내가 부족해서잖아. 내가 좀 더 센스가 있었다면, 내가 선배가 원하는 소품을 어떻게 해서라도 당일 아침까지 찾아냈더라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지 않았을까.


그도 그럴 것이 잡지사를 나오고 나는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4시간 동안 한 문장을 쓰지 못할 정도였다. 한 단어를 쓸 때마다 선배의 윽박이 바늘처럼 쏟아졌다. (선배의 윽박은 내 글을 향한게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쓸 수도 없었다. 잡지를 떼고 나를 소개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순 없었다. 나는 아무 쓸모가 없어 보였다. 이상과 현실의 갈피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2년을 침잠하며 방황했다.



그러고 나서 지금의 일을 시작했다. 서툴렀지만 잡지사를 준비했던 것들이 도움이 될 때도 있었다. 좋은 공간을 발견한다거나, 절대 못 찾을 것들을 결국 찾아낸다거나 하는 일들. 하지만 일이 서투를 때면 미련과 자책감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내가 이 회사에, 이 직무에 있는 게 맞는 건지를 골똘히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저번 설날에 집에 내려가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집에 있는 몇 백 권의 잡지를 모두 가져다 버렸다. 그만두고 나서 5년이었다. 텅 비어있는 책장을 보면서 내가 왜 잡지를 그만뒀는지를 생각했다. 분명 그만둘 당시엔 수십 가지 이유였는데, 돌이켜 보니 단 하나의 이유였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나왔다. 그게 떠나야 했던 단 하나의 용기이자 이유였다.


삼 년을 넘게 일하면서 느낀 건, 선택을 하고 나서 굳이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앞에 놓여진 길이 순탄하지는 않겠지만 성실하게 걷다보면 분명 굳은 살이 생긴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든다. 여기저기 배긴 흔적들은 있지만 그 경험들이 내게 전해준 슬기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는 찰나의 용기를 믿는다. 예전에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그랬듯, 앞으로 내가 내릴 많은 선택 역시 나를 지키는 용기가 바탕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듯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다시 새로움을 향해 떠나야 할 때,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과거의 나를 찾아간다.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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