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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 Jun 15. 2017

#43 <레미제라블> 자베르의 시선으로

그가 선과 악을 나누는 법 

<레미제라블>스틸컷


<레미제라블>의 자베르를 생각해 볼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냉혈한, 뻣뻣한, 심각한 원칙주의자 등등 다소 인간미가 배제된 느낌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경감인 자베르는 지나칠 정도로 법과 정의만을 우선시한다. 그에게 죄가 저질러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은 고려되지 않는다. 그에게 선과 악을 나누는 유일한 기준은 법에 기초한 ''이기 때문이다.  


죄의 경중 역시 중요하지 않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죄를 저질렀더라도 그는 죄를 지은 죄인을 '악인'으로만 판단한다. 주인공 판틴이 홍등가에서 일을 하는 도중, 한 남자로부터 도망치다 얼굴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 생긴다. 그 때도 역시 자베르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앞뒤 상황은 그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 '죄'만을 인식할 뿐이다.   


빵을 훔쳐 달아난 죄로 감옥에 다녀온 장발장에게도 마찬가지다. 감옥을 나가는 장발장에게 "넌 위험인물이야, 내 이름을 잊지 마라"는 말을 하며 잠정적 죄인으로 규정짓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또한 판틴의 아이가 죽을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판틴이 체포되자, 장발장은 체포를 미뤄달라 요청한다. 하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장발장이 전에 죄를 지었고, 판틴이 죄인이라는 이유에서다. 자베르에게는 한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인 것이다. 


<레미제라블> 스틸컷


사실 자베르가 이렇게 법과 정의에 집착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감옥에서 죄수인 아버지와 죄수이자 점쟁이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그에게 '악'은 자신이 돌아가고 싶지 않은 자신의 과거이자 숨겨야만 하는 태생이고, 경감이라는 자리는 자신이 일궈낸 '선'의 이상향이자 자신의 정체성이다. 이는 그가 자신의 과거, '악'자체를 지나치게 혐오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에게 장발장은 '악'이다. 그의 생존은 '선'만이 존재할 수 있는 자베르의 세상에서 위협적인 존재다. 


따라서 경감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자베르는 장발장을 직접 검거하기 위해 총력을 쏟는다. 자신과 장발장은 같은 세상에서 살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다 혁명군에 잠입을 하는데 자신의 신분이 밝혀져 죽을 위험에처한다.  하지만 장발장은 자베르를 죽이지 않고 살려준다. 또한 자신의 거주지를 알리며 체포를 하라고 말한다. 


자베르는 혼란스럽다. 그가 철저히 '악'으로 규정했던 장발장은 자신에게 '선'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세상에서는 선과 악이 함께 할 수 없다. 장발장의 호의는 그 세계의 존재 가치를 뒤흔들어 버린다. 자베르를 감싸고 있던 세상은 무너진다. 버틸 수 없었던 그는 세상의 끝에서 '악'을 행한다. 난간 위에서 몸을 던지며 생을 마무리한다. (당시 자살은 큰 죄 중 하나다) 


자베르와 장발장. <레미제라블> 스틸컷


처음 자베르가 영화에 등장했을 땐, 빳빳한 제복을 입고 로우 앵글로 비추는 카메라를 경멸어린 시선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죄인의 자식으로 태어나 그 태생을 혐오하고 부정하며 살아왔을 그다. 자신은 '선'의 편이라 겉으로 애쓰고있지만 사실, 자신도 악의 편에 있음을 부정하지는 못하는 자베르. 선악에 대한 지나친 이분법적인 논리는 그가 현재(선)에 자리하기 위한 필사적인 발버둥이었는지도 모른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말 그대로 불쌍한 사람들이다. 빵을 훔쳐 20년 형을 살았던 장발장도, 매력적인 머리칼부터 자신의 몸까지 내던져야 했던 판틴도, 엄마를 잃고 어려서부터 노동을 해야 했던 코제트도, 노력에 상관없이 영원히 빈민으로 살아야 했던 시민들도 모두 불쌍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 자신조차 용서하지 못하고, 용서받지 못한 자베르가아니었을까 싶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아마 천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곳에서 자베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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