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와 관람객의 관점으로
마지막 날에야 브런치 팝업스토어를 다녀왔다. 주변에서 좋은 팝업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던 터라 기대를 하고 봤는데도 만족스러웠다. 브런치 작가이면서도 마케터로 일을 하고 있는 나라서, 기획자와 고객이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팝업을 들여다보고 경험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팝업스토어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건 모든 스태프들이 한 명 한 명의 관람객에게 친절하게 인사와 스몰톡을 건넨다는 것이었다. 큰 배낭을 메고 있어서 짐을 내려놔도 되는지 묻자 기꺼이 자리를 마련해주시기도 했다.
필요한 위치에 스태프들이 있어서 어떤 위치로, 어떤 순서로 이동하고 진행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고지되는 점도 좋았다. 웬만한 팝업들에서는 확실히 보지 못한 부분이다. 보통은 입장이나 체험하는 곳에만 스탭이 있어서 동선을 헷갈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브런치 팝업에서는 스태프의 안내도, 전시장의 표식도 명확해서 방황할 필요가 없었다.
'작가님이신가요?'라는 인사말도 인상적이었다. 브런치 팝업까지 온 사람들이라면 글과 책을 애정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에게 ‘작가’라는 명칭은 도달하고 싶거나 막연한 꿈일 수도 있는데 팝업에 들어가면서부터 지칭되는 꿈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더불어 사진을 찍고 바로 네임카드를 만들어준다. 흡사 직무 컨퍼런스 장에 들어갈 때 차는 명찰과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작가’라는 정당성을 부여받으면서 동시에 다른 세상으로 차원을 뛰어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이 세계에서는 내가 작가?’와 같은 경험이었다. 디즈니월드에서 일상과 환상의 세계를 분리하기 위해 일부러 매표소부터 실제 디즈니월드까지 이동하는 기차의 길이를 길게 설계했다고 들었다. 어쩌면 이와 비슷한 하나의 장치이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마케터가 부스나 팝업을 준비하다 보면 수많은 팜플렛 지류 발주를 마주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예산과 시간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규격(a4, b5)이 아닌 경우 가격은 높아지고, 컷팅이라도 하는 경우, 접기 위해 오시(접는 줄)를 넣는 경우에도 비싸고 발주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브런치 팝업의 팜플렛이 쉽게 보기 힘든 규격의 사이즈라 놀랐다.
왜 이 사이즈로 뽑았을까 생각해 보면 팝업의 주제와 연관이 있다. 브런치 팝업은 '작가의 여정'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막 팝업에 방문한 사람들에게 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 크기가 최선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인쇄 비용이 추가적으로 발생하더라도 관람객의 좋은 경험을 위해 선택하지 않았을까?
팝업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유입하기에도 좋은 장치 같다. 이렇게 가로로 긴 종이는 품에 안을 수 있는 크기가 아니라 들고 다니면 길게 늘어진다. 나도 그랬고 팝업을 나오는 사람들도 그랬다. 팝업이 열리는 곳은 팝업 스토어들이 가득한 성수. 브런치 팝업을 나온 사람들은 또 다른 팝업을 가거나 성수 전역을 돌아다닐 건데 이때 저 큰 크기의 판형이 쇼핑백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오전 11시에 방문했는데도 전시장에는 사람이 가득했고 당일 모든 예약이 마감되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는 팝업이기 때문이다. 자꾸 보이는 사람들이 똑같은 지류를 들고 돌아다닌다면 저게 뭔지 유심히 볼 것 같다.
아마 브런치 팝업의 큰 목적은 사람들을 쓰게 하는 데 있다. 사람들에게 이 주제의식이 전해질 수 있도록 첨예하게 동선과 메시지를 고려했다는 느낌이 든다. 첫 번째 장소에서는 평범한 사람이었던 사람들이 어느 날 작가가 되어 책까지 출판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좋아하는 취미 축구를 하다가, 방탈출을 하다가, 지하철로 출근을 하다가 작가가 된 제11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자들을 보여주며 이 앞에 서있는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준다.
두 번째로는 작가라면 꼭 해내야만 하는 '계속 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유명한 작가님들의 글쓰기 이력을 시간 순서대로 결과물과 함께 보여주는데, 브런치 작가가 된 날과 첫 글을 게시한 날, 첫 출판물이 나온 날 등이 쓰여있어 계속 쓴다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심어준다. 더불어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사용하는 애장품도 함께 보여주면서 작가의 방을 엿보는 듯한 느낌과 심리적인 거리를 좁혀준다.
브런치 팝업은 관람객이 당장 쓰고 싶게끔 하고, 쓸 수 있게 한다. 전시장 곳곳에 '어제와 오늘의 가장 작은 변화는?'과 같이 물음을 던지는 질문 스티커가 비치되어 있고 벽 한편에는 '30일간의 글감 캘린더'가 있다. 그 옆에는 주제마다 쓸 수 있는 작은 메모지가 함께 있고 집에 챙겨갈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도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글감 캘린더는 그런 사람들에게 분명히 도움을 줄 것이다. 실제로 이 캘린더 앞에 넓게 책상이 하나 있는데, 사람들은 여기서 자신이 쓰고 싶은 주제를 몇 개 고른 후 책상에 가져가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붐비는 전시장 속에서도 모두가 몰두하고 있었다. 여기서 글을 썼던 사람들은 분명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계속해서 쓸 수 있는 동력이 남아있을 것이다. 결국, 이 팝업을 기획한 사람들이 바라는 것도 사람들로 하여금 쓰게끔 하는 것일 거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 결과를 동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획자 입장에서 행복한 팝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팝업을 주최한 곳은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다. 당연히 이 팝업으로 얻어가야 할 것은 아무래도 브런치의 신규유저 유입 및 기존 유저의 활성화일 것이다. 유저에는 글을 쓰는 작가와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
팝업에서는 신규 작가를 유입하기 위해 '브런치 인턴 작가'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은 작가 신청을 하고, 검토 및 승인이 난 후에만 주어진다. 쉬운 편은 아니라 인터넷에 '브런치 작가 합격하는 방법' 등의 노하우가 공유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팝업에서 '브런치 인턴 작가'라는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큰 혜택이다. 이 혜택을 얻기 위해 할 미션은 내가 쓸 책의 제목을 정하고, 표지를 만들어보고, 전시하는 경험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브런치북 표지를 꾸미고 있었는데, 이렇게 한 번 고민을 하며 만들어보고 공유를 하는 과정이 선언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 번 이렇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공표하면 브런치 안에서 인턴 작가 자격으로도, 나중에는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다음 해 브런치북 대상에 오르는 사람도 나타날 거다.
마케터로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팝업은 브랜드가 잘 드러나면서도 억지스러우면 안 되고, 실제로 제품/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물꼬를 터주는 팝업이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 속에서 쌍방향 소통을 하면서도 재미를 챙기고, 제품/서비스의 유입과 전환을 꾀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브랜드를 알리려는 욕심에 제품 전시나 샘플링에 그쳐버리기도 하고, 본질이나 재미만 찾다가 정작 브랜드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팝업전성시대라 매주 수많은 팝업이 있지만 임팩트가 있는 팝업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브런치스토리 팝업은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킨 육각형 팝업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의 본질인 '글쓰기'로 접근해 사람들에게 쓰게 하는 욕망을 심어주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플랫폼을 알리고,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브런치스토리에서 풀어낼 수 있게 인턴 작가 자격을 주며 유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내부적으로 설정된 목표 지표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DAU, 회원가입수, 인턴 작가 신청수, 인턴 작가 글 발행 수, 휴면 고객 글 발행 수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팝업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관람객 입장에서도 그야말로 기승전결이 완벽한 팝업이었다. 모든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았고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유명한 작가지만 누구나 첫 시작이 있었다는 사실도 내게 응원이 되었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사람들의 눈이 반짝이는 것도 고무적이었다. 덕분에 나 역시 다녀와서 브런치에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더없이 좋았다. 팝업에서 받은 긍정적인 느낌과 기운을 간직하며 나도 다시 쓰는 사람이 되어보고자 한다.
+ 브런치스토리 팝업을 브런치와 사이드콜렉티브에서 협업해 진행했다고 들었다. 일전에 사이드콜렉티브가 협업한 라이프집 팝업도 좋았어서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