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로 시작하는 짧은 글
5월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보낸 것 같아 쓰는 짧은 글. 가부터 하까지로 시작하는 글.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달력을 한 장 넘겼다.
다시 그 날이었다.
라디오에서 오늘,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최초로 민주광장에서 열린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마뜩잖은 목소리로 ‘이제야?’ 하며 엄마는 현관을 나섰다.
바깥에서는 미세한 향냄새가 비냄새에 실려오고 있었다.
‘사람 살려요’ 전남대 근처에 살던 엄마는 대문밖으로 외침이 들릴때마다 부리나케 외할머니에게 달려갔다고 했다.
아무 면식도 없는, 앳된 얼굴의 사람들을 외할머니는 들이고 들였다.
자식처럼 먹이고, 밖은 위험하다고 아무리 달래며 재워도 다음날이면 이불만 덩그러니 개켜져있었다.
차츰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총알을 피해 집에 있는 창문이란 창문은 두터운 이불로 막아놓고 있던 어느 날, 한 언니가 들어왔다.
‘카마이좀 있으랑께’ 새벽부터 외할머니는 나가려는 언니와 실랑이였다. 가방까지 숨겼지만 결국 언니는 문밖으로 나갔다.
타닥거리는 발소리가 얼마나지도 않았을 무렵 쨍하고 울린 총성에 창문의 이불을 들췄을 때,
파리한 얼굴로 쓰러지던 언니의 얼굴을, 엄마는 기억한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맥없이 주저앉던 외할머니를 기억한다. 유난히 비가 많이 오던, 한 집 걸러 한 집에서 향을 피우던 오월들을 기억한다.
하늘도 여전히 그 날을, 오월을 기억하는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