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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동안의 행복일기

by 스밍




이번 주부터 소셜 살롱 ‘문토’에서 김신지 작가님과 함께하는 ‘순간 수집 일기’ 모임을 시작했다. 3주 동안 하루의 행복에 대해 짧은 글을 쓰고 나누는 모임인데, 덕분에 스쳐 지나갔을 행복들을 잡아내 글을 쓰며 닦아내는 하루가 더없이 소중해지고 있다. 하루에 이렇게 많은 잔잔바리 행복이 있다는 걸 느낀 건 덤.


이 글은 일주일 동안 쓴 행복 일기들.


첫 번째로 쓴 행복일기

"크리스마스와 정월 초하루 사이의 기이한 일주일은 시간의 밖에 있는 괄호 속 같다."
- 미셸 투르니에 <외면 일기>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매년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가 오기 직전까지의 날들의 내 감정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마음의 실마리를 찾으니 오히려 이 순간이 소중해졌다. 그래서 올해는 불확실한 설렘을 더 깊게, 온전히 느끼려고 했다. 독립 출판물 '2020년 연말정산'으로 한 해를 뒤돌아보고, 메모나 캡처 사진들도 정리했다. 과연 이룰 수 있을까? 싶은 큰 목표도 눈 딱 감고 세워버렸다.

모든 게 마무리되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이 묘한 시간, 붕 떠있는 이 시간을 단단하고 행복하게 보내면서 2021년을 좀 더 잘 살아낼 동력을 차고 넘치게 얻었다.




21. 1. 5 #순간수집일기


술에 진심인 사람을 만났다. 함께 일하는 개발자 D님이다. D님은 술 백과사전처럼 다양한 술과 이야기들을 알고 있는데, 저번 술담소의 주제는 '버터 럼'이었다.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하자 곧 만들어서 나눠주겠다고 했다. 그때는 그저 지나가는 말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정말 오늘 버터 럼을 만들어 오셨다. 게다가 시나몬 스틱까지 함께 챙겨주는 섬세함까지.

좋아하는 잔에 버터 럼을 붓고, 따뜻한 물과 설탕을 넣어 휘휘 저었다. 곧바로 달큼한 버터향이 가득 퍼졌다. 어렸을 적 자주 먹었던 스카치 캔디의 냄새 같기도 했다. 한 모금 꿀꺽 삼키니 시나몬 내음이 묻은 쌉싸래한 럼이 목청을 탁 치고 지나갔다. 혀에는 기분 좋은 단맛만이 남아 있었다.

열두시가 다 돼가는 지금, 아직도 밀린 일이 남아있지만 버터 럼과 함께라 조금 더 행복해졌다.





21. 1. 6 #순간수집일기


회사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은 점심시간. 함께 일하는 친한 동료들과 시간을 나누는 시간이 매일 소중하다. 회사 이야기에서 벗어나 반려 동물이나 요즘 즐겨보는 넷플릭스 이야기를 하며 여유를 즐기는 숨구멍 같은 시간들.

오늘 날씨는 유달리도 추웠지만, 유난히 맛있는 걸 먹고 싶어 단단히 싸매고 멕시칸 음식 맛집을 향해 길을 나섰다. 평소 긴 줄을 기다려야 하는 곳인데 대기 없이 들어간 건 첫 번째 ㅎ. 시간이 어긋나 이곳에 한 번도 함께 오지 못했던 동료가 극찬을 하면서 뿌듯하게 먹어주었던 건 두 번째 ㅎ. 저번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메뉴 나오는 데까지 한참 걸렸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나와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던 건 세 번째 ㅎ. 회사 앞 단골 카페에서 새로 개시한 원두로 만든 커피를 먹었던 건 오늘 점심시간의 마지막 ㅎ.



21.1.7 #순간수집일기


올겨울 첫눈이 내렸을 때 인터넷을 뒤져 어렵게 구한 눈 오리 집게. 가방 속에 들고 다니는 우산을 놓고 오는 날엔 꼭 비가 오는 것처럼, 오리 집게를 회사에 놓고 퇴근한 어제는 눈이 펑펑 내려 얼마나 아쉬웠던지.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일도 얼른 쳐내고, 보통 때보다 점심을 일찍 먹고서 눈 오리를 만들 행복한 시간을 벌었다. 오리가 잘 만들어질 수 있게 적당히 물기 어린 눈을 찾고, 무수한 오리 군단을 만들며 느끼는 오늘의 ㅎ. 별 거 아닌 단순한 작업이지만 예쁘게 피어나는 오리 한 마리, 한 마리들이 너무 귀여워 발을 동동 굴렀다. 행복에도 모양이 있다면, 분명 지나가던 누군가는 내 주변에서 행복에 겨운 나머지 팡- 터지는 작고 무수한 사랑표들에 눈이 부셨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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