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존엄’은 인간의 삶에 있어 본질 그 자체다. 그렇지만 종종 이 당위적 명제가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면 존엄이 훼손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이는 국가 차원의 복지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국가가 운용하는 복지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복지 제도를 악용할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가난한'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에 한해 선별적으로 복지를 베푼다.
하지만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처한 사람은 거의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서류가 이를 증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도 이를 다룬다. 영화의 주인공인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이 좋지 않다. 의사도 당분간은 일을 쉬라고 권고한다. 그러나 복지센터의 공무원은 다니엘이 건강해 보인다며 질병 수당 지급을 거부한다. 다니엘은 계속해서 재심사를 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모든 절차는 그에게 친절하지 않다. 서면상으로 수당 지급 거부 통지가 왔지만 유선상으로 안내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언제 올지 모르는 전화를 기다려야 한다. 항소를 준비해도 언제 받아들여질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물론 이 동안에는 수당 지급이 되지 않는다.
질병 수당을 받지 못하는 그에게 복지 센터 직원은 구직 수당을 권한다. 인터넷으로만 신청할 수 있는 수당 신청은 시작부터가 아날로그 세대인 그에게 크나큰 도전이다. 과정도 쉽지 않다. 다니엘은 직접 발품을 팔아 구직 활동을 했지만 인터넷에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구직 수당의 지급을 중지해버린다. 또한 다니엘은 좋게 보았던 목공소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지만 그는 수당을 위해 이력서를 낸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당연히 사장은 화를 내며 전화를 끊는다. 다니엘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듯 화면도 잠시 암전 된다.
센터 직원은 다니엘에게 구직 활동을 하기를 권유하지만 그는 구직 수당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라는 말과 함께. 대신 그는 복지센터 벽면에 “I, Daniel Blake”로 시작하는 자신 나름의 요구와 선언을 적는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그의 노력이다. 길을 걷던 시민들은 그를 위해 박수를 보내지만 결국 경찰서에 끌려간 다니엘은 다신 그렇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만 했을 뿐이다.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인 케이티 또한 지원금을 받기 위해 복지 센터를 찾지만 길을 잘 알지 못해 10분 정도 늦는다. 하지만 직원은 늦었다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이름을 지운다. 심 지어는이 상황에서 촉발된 다툼 때문에 복지 센터에서 쫓겨난다. 길을 잃어서, 센터 직원과 언쟁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는 이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몸 사리지 않고 나서지만 현실적으로 두 아이를 키우기에는 불가능하다. 전기와 난방을 쓰지 않고 며칠을 굶는 방법만이 최선이다. 한 달에 슈퍼 마켓에서 생리대와 면도칼 등을 훔치다 걸리기도 한다. 딸이 ‘가난’을 이 유로 따돌림을 당한다는 말을 듣고는 결국 몸을 파는 방법을 선택한다.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존엄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존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사치다.
푸드 뱅크에서 참지 못하고 무작정 통조림을 뜯어먹던 케이티가 울면서 직원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직원은 말한다. “It is not your fault”,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야. 그렇다. 가난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는 시민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도리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구석으로 내모는 꼴을 보이곤 한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는 이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이 존엄할 권리와 그 권리를 주장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니엘의 장례식에서 케이티는 다니엘이 적어 놓고 다녔던 편지를 낭독한다. 개인적으로 이 편지에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을 모두 담았다고 생각한다. 다니엘의 편지로 이 글을 마친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의 점도 아닙니다.
나는 책임을 다하며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굽실대지 않고 이웃이 어려우면 기꺼이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나의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