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단지 세상의 끝> 누가 이 가족에 돌을 던지리

by 스밍
단지6.jpg <단지 세상의 끝> 포스터.


영화 <단지 세상의 끝>은 주인공 루이(가스파드 울리엘)가 12년 만에 자신의 죽음을 알리려 고향집으로 돌아가면서 시작된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클리셰가 보일 법 하지만 화면에는 툭하면 화를 내고 별 것도 아닌 일로 언성을 높이는 가족들, 고함과 짜증만이 존재한다. 때문에 혹자는 한 주인공이 분노조절장애 같았다고도 이야기한다. 또한 영화 관련 평에서도 이 가족을 말할 때 ‘정상이 아닌’, ‘이상한’ 등의 수식어들을 붙인다. 하지만 정말 이 가족에게 ‘비정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물론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맥락 없이 화를 (심하게 많이) 내고 (조금 많이) 소리를 지르고 다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는 한다. 그래도 이 가족은 그저 하나의 ‘가족’ 일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가족들은 곳곳에 존재할 터다. 영화에서 다룬 것도 결국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가질 수 밖에 없는 까끄름한 어떤 것들이다.



단지7.jpg 사사건건 가족들과 부딪혔던 앙트완(뱅상 카셀). <단지 세상의 끝> 포스터.


먼저 열등감이다. 영화에서는 형 앙트완(뱅상 카셀)과 동생 루이 사이에 생겨난 열등감이 등장한다. 앙트완과 루이는 서로 형제다. 앙트완이 나이상으로는 장남이지만 엄마(나탈리 베이)는 루이에게 장남은 나이 순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를 보며 둘은 꽤 오래전부터 서로 비교의 대상이 되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족 구성원들의 행동에서도 볼 수 있다. 루이는 철저히 환대받고 가족 모두가 루이의 생각과 의견을 살핀다. 앙트완이 조금이라도 날선말을 하면 그새 저지당한다. 루이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없는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치켜세워진다. 반대로 앙트완은 유난스러운 성격을 가진 아들이자 오빠, 남편일 뿐이다.


어렸을 때부터 하나하나 비교의 대상이 되었을 둘이다. 시선은 그중 하나로 쏠리기 마련이다. 모두가 사람인지라 편애 아닌 편애가 생기기 시작한다. 잔인한 것은 이 비교의 시작이 자아가 정착되기 전부터 시작된다는 것에 있다. 주목을 받지 못하는 쪽은 어찌되었든 나름의 방식으로 그걸 느끼게 된다. 개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이때의 기억이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고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도 있다. 앙트완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재능 있고 항상 형보다 낫던 그 ‘동생’이 집을 떠났다. 그 후 자신은 이 가정에서 12년 동안 장남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돌아왔다. 동생은 오랫동안 집에 오지도 않고, 가정은 돌보지도 않았지만 가족들의 시선은 온통 동생에만 쏠려있다. 형의 열등감은 날 것 그대로 표출된다. 지나치게 무안을 주고 무지막지하게 화를 낸다. 결국 집에서 나가게 하기 위해 억지로 루이를 집에서 끌어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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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장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다. 이 가족 역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앙트완이 쉬잔이랑 싸우는 장면, 쉬잔이 엄마와 다투는 장면, 앙트완이 카트린(마리옹 꼬띠아르)에게 화를 내는 장면 곳곳에서 가장 아프게 찌를 수 있는 말들만 골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루이와 앙트완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에서는 더하다. 사실 루이는 가족 안에서 철저히 듣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형과 함께 차를 탔을 땐 갑자기 수다쟁이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기 시작했다. 일상 이야기인듯 하지만 가족이 보고 싶어서 빨리 오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그런데 앙트완은 엄청나게 화를 낸다. 왜 젠 체 하느냐고. 하지만 이는 단순한 열등감 때문이 아니다. 이미 앙트완도 눈치를 챘다. 루이가 나름의 애정표현을 자신에게 하고 있다는 것. 그런 루이의 마음을 마구 후벼 파는 게 어쨌든 앙트완이 할 수 있는 전부다. 딱히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우리도 가끔 그러지 않나. 마땅히 화가 향해야 할 곳을 착각하곤 엉뚱하게도 가족을 향해 감정을 쏟아내던 부끄러운 날들이.




결국 영화가 비추는 건 우리다. 가족은 마냥 화목하고 아름다워야 할 것 같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있다. 내면을 잘 들여다보면 가정에서 비롯된 사소한 생채기쯤은 하나씩 갖고 살지 않는가. 조금은 모나고 설명할 수 없는 괴상한 모양이더라도 가족은 가족이다. 영화에도 나왔듯 가족은 본디 그런 것이다. 정말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가족이라는 것. 정상가족과 비정상 가족을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도 없고, 또한 규격화된 가정도 없다. 그러니 누가 이 가정에 ‘비정상’이란 딱지를 붙일 수 있나. 그러니 그만 이 가족에게 돌을 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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