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문라이트> 이름이 부리는 마법

각각의 이름은 각각의 삶을 규정한다

by 스밍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샤이론과 후안의 첫만남. <문라이트> 스틸컷


<문라이트>는 인생의 변곡점만 툭툭 짚어낸 영화다. 눈에 보이는 서사를 이야기하지도 않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만을 러닝타임 내내 다루지도 않는다. 영화는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막과 막 사이의 시간적 텀은 크다. 또렷한 인과관계도 없다. 투박하다고도 볼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정말 옷을 잘 입는 사람은 대충 입은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 영화는 가장 힙한 방식으로 주인공 샤이론을 보여준다.


특히 ‘정체성’을 다루는 부분이 멋지다. 각 막은 주인공 샤이론이 불려지는 세 개의 이름으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는 친구들이 샤이론을 얕잡아 부르는 리틀, 두 번째는 본래의 이름 샤이론, 세 번째는 친구 케빈이 샤이론을 부르는 별명, ‘블랙’이다. 각각의 이름은 샤이론을 규정한다. 먼저 일 막의 리틀은 말 그대로 ‘Little’을 뜻한다. 샤이론은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작은 체구를 가졌다. 운동도 잘 하지 못하고 학교 친구들을 그를 심하게 괴롭힌다. 심지어 보듬어줄 가족 조차 없다. 엄마는 약에 항상 취해 있고 종종 집 밖으로 샤이론을 내몰기도 한다. 샤이론은 '리틀'이라 불리어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는다. 그저 친구들의 괴롭힘을 피해 도망치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침묵할 뿐이다.


여느날과 같이 샤이론은 친구들의 괴롭힘을 피해 어떤 집으로 도망간다. 그 집은 사실 후안의 마약 창고였다. 이 일로 샤이론과 후안은 인연이 되고 후안은 샤이론에게 가족이 된다. 샤이론은 후안에게 수영을 배우기도 하고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때 가족의 온정을 베풀어 준다. 또한 인생을 알려준다. 후안은 샤이론에게 이야기한다.


“때때로 넌 스스로 무엇이 될지를 정해야만 할 순간이 올 거야.
절대 그 누구도 그 결정을 너 대신해줄 수는 없어.”


리틀은 그제야 샤이론이 된다.


물속에서 후안이 샤이론을 안고 있는 장면은 피에타의 그것과 흡사하다. <문라이트> 스틸컷


2막은 '샤이론'이다. 키는 훌쩍 컸지만 여전히 학교에서는 놀림을 당한다. 케빈만이 종종 그의 친구가 된다. 유일하게 샤이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이다. 어느 날 바닷가에서 만난 둘은 가려졌었던 마음을 서로 확인하지만 달뜬 마음도 잠시, 케빈은 학교 불량배들에 의해 샤이론을 폭행하게 된다. 괴롭힘에 대해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던 샤이론이지만 다음 날 샤이론은 의자로 불량배를 내리쳐버린다. 그리고 학교를 떠난다.


2막에서는 샤이론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집중한다. 1막에서 완전히 수동적이던 샤이론은 점차 능동적인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성정체성을 깨닫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반항하고, 선택한다. 샤이론은 그 자신이 된다. 이는 샤이론의 의지뿐만이 아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후안, 테레사 그리고 케빈이 있었기 때문이다.


케빈과 샤이론. <문라이트> 스틸컷


3막의 이름은 ‘블랙’이다. 3막에서 샤이론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블랙 혹은 B라는 이름을 쓰고, 비싼 스포츠카를 타고 마약을 팔며 다소 위협적인 체구를 가진 모습이다. 전의 위축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 어느 날 케빈에게서 전화가 온다. 그 순간부터 블랙은 다시 '샤이론'이 된다. (사실 ‘블랙’은 케빈만이 샤이론을 부르는 방식이기도 했다.) 케빈을 만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차로 달려 가서는 몇 번이나 머리를 매만지고 식당 앞에서 서성거린다. 케빈을 바라보는 꿀 떨어지는 눈빛은 숨길 수 없다.


다시 만난 샤이론(블랙)과 케빈. <문라이트> 스틸컷


그렇지만 2막과 3막의 샤이론은 분명 다르다. '리틀'과 '샤이론'이 남들에게 불려지는 이름이라면 3막의 '블랙'은 샤이론이 불려지길 선택한 이름이다. 또한 목소리를 낸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2막에서는 샤이론이 질문을 받는 객체로 등장했던 비중이 컸다. 질문을 받더라도 길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3막에서는 블랙이 발화를 하는 주체로 자리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로 그대로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후안처럼 인생을 알려주기도 한다.


더 이상 블랙은 주어진 삶을 살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선택과 의지로 삶을 꾸려 나간다. 케빈이 달라진 샤이론의 모습에 놀라 물는다. "넌 누구니?" 블랙은 대답한다. "나는 나야." '나'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무엇이 될지 결정할 수 있을 때, 불려지는 것과 불려지기를 원하는 것의 차이를 알기 시작할 때, 내가 나를 규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된다.


블랙은 이야기한다.


"나를 만져줬던 사람은 너 밖에 없어. 네가 유일해. 그 이후로 나를 만져준 사람은 없어."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서사는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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