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홍상수 감독의 열아홉 번째 장편영화다. 영화는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에 올랐고 주인공 영희를 연기한 김민희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는 역시나 홍상수 감독이 잘하는 것들, 디테일이나 대사적인 부분이 특히 훌륭하다. 그리고 전작들과는 몇 가지 달라진 점이 눈에 띈다.
먼저 주인공 영희는 이전 영화들에서 여성 주인공들의 보폭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기존 주인공들이 생존에서 '존'에 방점을 둔 모습을 보였었다면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영희는 '생'에 집중한다. 영희는 사고하고 행동하는 적극적인 존재다. 1부에서 영희가 만나는 유부남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견지하고 있는 주체적인 태도나 영희가 겪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생략하지 않고 표현한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2부에서 명수와 카페에서 이야기하다 나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노래하는 장면, 총 두 번의 술자리에서의 영희의 대사도 이를 잘 보여준다. 영희는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서는 다소 당돌한 질문을 던질 수도 있고, 헤어진 연인에 매우 분노할 수도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입 좀 조용히 하세요"라는 직접적인 발화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녀는 극에 떠밀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서서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홍상수 감독 작품 중에서 가장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남성을 다루는 방식의 변화도 들 수 있다. 이제까지의 감독의 영화에서도 남성 주인공들은 찌질하게 그려져 왔고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차이점이 분명 존재한다. 전의 남주인공 들은 '찌질하지만 어떻게 해, 이게 xy염색체를 가진 남자들인걸 하하하'하며 자조 정도만 하며 호쾌하게 넘어갈 수 있는 존재였다면 이 영화에서의 남자들은 계속해서 무시당하고 공격당하는 존재다. 그리고 남성들이 부정되는 건 여성들의 입이다. 전작에서 남성들을 향한 욕은 어느 정도 비유적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서의 욕은 날 것 그대로를 뜻한다. 영희가 말하는 "남자들은 모두 병신 같아."가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세 번째로는 장르의 모호함이다. 영화는 언뜻 다큐멘터리로 보인다. 감독은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인터뷰에서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주인공과 감독이 불륜 관계이고 영화의 내용 또한 비슷한 내용을 다루니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 개봉 전, 많은 이들이 영화가 페이크 다큐가 될 것이라는 짐작을 하고 있었고, 영화 내외적으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산재하고 있다. 그런데도 관객들이 이런 관계나 상황을 모두 제쳐놓고 오롯이 영화로만 소비하길 바랐다면 다소 오만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영화와 현실이 구분되지 않으니 곳곳에서 나타나는 감독의 자기 연민과 변명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표현방식이 젠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윤리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예술을 하는 감독으로서 이를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유의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영화를 '영화' 그 자체로만 만들었다고 말한다고 해도 변명이 될 수 없다. 분명 인터뷰나 기자회견 등 좋은 기회가 있었다. 영화는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실 가장 솔직하지 못한 건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