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에 믿어본다

by 이소


청년들의 주체적 삶을 정말 어렵게 하는 건,

헤쳐나가야 할 무수한 난관들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무수한 참견들인지 모른다.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데, 거길 왜 뛰어드냐.’

‘그것 해서 몇이나 성공하냐.’

‘네가 아직 세상 물정 몰라서 하는 소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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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말들은 아니다.

우리는 아직 가능성을 가늠할만한 경험도 부족하고, 확신보단 기대와 환상으로 목표를 정하곤 하며, 그렇다고 배짱만큼 강인하지도 못해

몇 번이고 무너져버릴지 모른다.

청춘은 더디고, 서툴고, 약하다.

그러나

‘고생’과 ‘행복’이 서로 대조되는 관계만은 아니기에,

‘낮은 가능성’이 ‘도달 가능성’을 결정짓는 건 아니기에,

‘세상 물정 살피는 일’이, ‘나 자신을 살피는 일’만큼 중요한 건 아니기에,


그렇기에 믿어본다. 주체적 각오의 힘을.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자는 어떠한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instagram: @2st.so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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