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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Oct 25. 2022

내가 할 말은 네가 원하는 대로 연주하면 된다는 거야

- 재즈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멍크



“내가 할 말은 네가 원하는 대로 연주하면 된다는 거야.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 건 생각할 것 없어. 연주하고 싶은 대로 연주해서 너를 세상에 이해시키면 돼. 설령 십오 년, 이십 년이 걸린다고 해도 말이야.”

 재즈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멍크의 어록이에요. 그는 재즈 스타일 중 비밥(bebop) 장르 창조에 기여한 인물입니다. 1940년대 중반 미국에서 유행했던 이 비밥의 특징이라면, 역동적 즉흥 연주가 가미된 자유분방함입니다. ‘비밥’이란 명칭의 유래가 ‘재즈를 노래할 때 사람들이 흥에 겨워 내는 의성어’라고 하니, 당시 낙락했을 재즈 바의 현장감이 상상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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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시킨다.’는 그의 배포가 멋지다 생각했어요. 십오 년, 이십 년을 내다보는 그 여유도 부러웠습니다. 어쩌면 이런 기지 덕에 자유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고수할 수 있던 걸까요?

아무리 그래도 이십 년은 너무 긴 시간 아닌가. 란 생각이 들다가도, 진정성이란 내 쪽에서 거듭 드러내야만, 타자의 입장에서 겨우 희미한 상이 맺히기 시작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이어 원하는 바를 해내려면, 멍크 같은 배포와 진득함쯤은 몸 속 깊이 지녀야 하나보다. 생각합니다. 만날 수 있다면 물어보고 싶어요. 어찌하면 그런 용기와 여유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물론, 개인의 진정성이 대중의 인정과 반드시 직결되진 않겠지요. 실제로 멍크의 음악은 오랜 동안 적정한 평가를 받지 못했고,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또한 자신이 즐겁다 해서 그게 꼭 결과적으로 뛰어난 예술 작품이 되는 건 아니라 말합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최소한의 지지자를 획득하는 것도 프로로서 필수 조건’이라 덧붙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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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역시, 꾸준함을 유지하는 최상의 기동력은 역시 ‘즐거움’인가 봅니다. 그 또한 ‘나 자신이 즐길 수 있는가’,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자신의 창작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말합니다. 그 이유도 함께요. 


“즐겁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이란 아무리 살아봤자 별로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잖아요? (창작의 방향을 한참 고민하다가도) 기분이 좋다는 게 머가 나빠?-라는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간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자신이 즐거운 창작을 원하는 방식으로 했다면, 설령 평판이 좋지 않더라도, ‘뭐, 어때, 최소한 나 자신이라도 즐거웠으니까 괜찮아’라며 납득할 수 있다는 그의 첨언에 맥이 빠지기보단, 오히려 용기가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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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데, 돌연 나다움을 좇으려 한다 해도, 마음이 동하지 못하고 머뭇댑니다. 하루키는 이 당혹함을 예상했던 걸까요. 그는 당신의 기준을 하사하며 어서 움직이라고 등을 밀어줍니다. 


“매우 단순한 얘기지만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것이 한 가지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부품,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깨끗이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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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겁지 않은 일임에도 놓지 못했던 이유라면, 단연 불안 때문이었습니다. 진정 원하는 바를 좇음에 대한 모호함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찾아 나서게 했어요. ‘추구하는 바’와 ‘그의 연료가 돼줄 의무’ 사이에 균형은 매우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지속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어느샌가 주객이 전도됐다는 기분이 듭니다. 원하는 바를 좇고 싶어 감수하기 시작한 일들인데, 어쩐지 그것들에만 매진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곱씹어 봅니다.
 하고 싶은 것만 추구하다가 (경제적 문제나 의지의 문제 때문에) 결국, 지켜내지 못하는 거 아니야? 란 불안을 다잡기 위한 ‘의무’에 치우치다 보니. 모순되게도 같은 불안에 종착합니다. 이러다가 추구하던 것은 점점 못하게 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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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균형을 잡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애써 쥐고 있는 것들 중 무엇이 덜 중요한지 가름하고 덜어내야겠어요. 진정 원하는 바를 꾸준히 해내는데 꼭 도움이 되는 활동만 남겨보려고요.


 뭐든 더할수록 좋겠지. 란 생각은 착오였어요. 본격 빼기를 시작해야겠습니다. 이왕이면 출처 모를 불안도 함께 털어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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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를 읽고, 영감을 받아 썼습니다. 



글: 이소 │@2st.so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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