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주,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중
이를테면 밥벌이의 현장에서 부당한 시스템에 부딪혔을 때, 그리고 그것에 이의를 제기할 능력이 없을 때, 그래서 그 무능이 모멸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이따 집에 가서 글을 쓰면 돼'라고 생각했다. 이미 세계에 공고하지만 납득하기는 어려운 권위들이 내게 순종을 요구할 때, 그를 따르지 않으면 내가 감내해야 할 고통이 더 많아질 때, 넙죽 고통을 받아들지 못하는 비겁함이 또다시 모멸로 돌아왔을 때도 '이따 집에 가서 글을 쓰면돼'라고 생각했다. 글을 쓴다고 실제로 뭐가 달라지는 건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일을 언어로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은 희한하게도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것이 구체적인 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지 못해도,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내게 구체적인 힘이 되었다.
위 콘텐츠는 책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윤주 저, 위즈덤 하우스 출판)의 본문을 토대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