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에 사는 하루

by 이탤릭

드라마<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이 퇴근길에 지쳐 걷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아무 말 없이 걸어가는데, 표정만으로도 하루 종일 쓸데없는 생각에 시달린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았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없는데, 나는 머릿속에서 수십 번의 대화를 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가정하고, 일어나지 않을 사건을 미리 걱정한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가 버린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상상은 현실과 거의 맞지 않는다. 걱정했던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았고, 준비해둔 대답은 쓸모가 없다. 결국 나는 머릿속에서만 바쁘게 살고,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걸 몰라서 세상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은 안다. 내가 괜히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는 걸.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건 실제 일인가, 머릿속에서만 도는 건가.”
대부분은 머릿속 일이다. 그렇게 확인하는 순간,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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