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다가, 염미정이 버스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특별한 대사는 없었지만, 얼굴에는 지친 하루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괜히 나만 무겁게 짓눌려 있는 듯한 기분이 전해졌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 내가 길을 걷다 맞는 바람이 겹쳐진다. 어떤 날은 시원하고 좋지만, 또 어떤 날은 차갑고 불편하다. 하지만 사실 바람은 그저 바람일 뿐이다. 좋고 나쁨은 내가 붙인 해석일 뿐, 바람은 늘 같은 방식으로 불어온다.
마음도 그렇다. 기분이 좋으면 세상이 괜찮아 보이고, 기분이 나쁘면 모든 게 나를 힘들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건 내 마음이었다.
전에는 이걸 몰라 괜히 상황을 탓하거나 원망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세상은 그대로이고,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안다.
그래서 바람을 맞으며 속으로 생각한다.
“바람이 불면 그냥 바람이 있는 거다.”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