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어 습관처럼 행하는 잘못된 관행들과 이별하기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전투화에 얽힌 사연 하나쯤은 누구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특히 육군 보병으로 현역 생활을 마친 사람이라면 행군이나 훈련 시 전투화 때문에 겪었던 크고 작은 고초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2010년 이전 병사들에게 지급된 한국형 전투화는 딱딱한 바닥과 단단한 가죽 재질로 인해 갓 입대하여 처음 전투화를 착용한 병사들의 발을 괴롭혔다. 뒤꿈치가 까지거나 물집이 잡히는 건 기본이고 방습과 통기성도 엉망이었다. 얕은 물에 발을 담가도 물이 쉽게 전투화 내부로 들어왔다. 게다가 한 번 들어온 물은 여간해서 밖으로 배출되지 않아서 신고 있는 내내 발을 퉁퉁 불게 만들었다.
당시는 전투화가 병사들의 발을 보호하기는커녕 병사들이 전투화로부터 자신의 발을 보호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던 시절이었다. 훈련을 앞둔 병사들은 발바닥과 뒤꿈치에 부지런히 반창고를 바르거나 밴드를 붙여댔다. 양말을 두 겹씩 겹쳐 신는 것은 물론이고 물집이 날 것을 대비하여 실과 바늘도 항상 챙기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연대급, 대대급 훈련 후에 주고받는 병사들의 대화 주제는 발에 얽힌 무용담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발을 보호했는지, 발에 전해지는 고통을 어떻게 참아냈는지 등. 훈련을 무사히 끝냈다는 것은 곧 자신의 발이 큰 고통을으로부터 무사히 탈출했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느 시절에나 병영 생활에 얽힌 이야기들은 사람의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특히 전투화에 얽힌 이야기들은 늘 마음 한구석에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풀지 못한 이야기의 응어리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나는 예비 사단인 백마부대에서 보병으로 군생활을 했다. 예비 사단인 까닭에 중대급, 대대급, 연대급, 사단급 전투단 훈련에 고루 참여하며 참 많이도 걸었다. 그래서 지금도 걷는 일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는지 모르겠다. 당시는 군 내무반 부조리라는 게 없으면 이상할 정도로 비일비재하던 시절이다. 그리고 강한 군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병 간 구타나 괴롭힘이 필수적인 것으로 치부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전투화는 나에게 애증의 대상이었다. 점호 때마다 구두약을 짙게 발라가며 내 것은 물론이고 선임병들의 전투화까지 닦아야 했다. 소위 군화조다. 일병을 달고 군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병사들이 군화조를 이루어 전투화 손질을 전담한다. 점호 때마다 자기 기분에 취해 지적질하는 당직 사관에게 전투화 손질에 대하여 지적이라도 당하는 날이면......
휴가나 외박을 나가는 병사의 전투화는 물광과 불광을 내어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는다. 첫 휴가 때 내 전투화는 바로 위 선임이 닦아 주었는데 참으로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나도 내 후임병의 첫 휴가 전투화를 닦아 주었다. 막상 군복을 입고 휴가를 나오면 아무도 내 전투화의 광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아무도 내 전투복에 난 칼 같은 주름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토록 반짝이는 광과 칼 같은 주름에 매달렸을까?
나는 그 이유를 합리적인 사고에서 벗어난 소규모 집단이 만들어 내는 문화 현상에서 찾고 싶다. 이를테면 커다랗게 뚫린 아마존 원주민의 귓불 문화와 비슷하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왜 저럴까? 정도의 궁금증을 유발할 뿐인 고립된 문화 행위도 내부인의 시선으로는 영원히 이어나갈 소중한 전통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투화에 대한 병사들의 불만을 개선하고자 국군은 2012년에 신형 전투화를 보급하였다. 등산화로 이름을 알린 트렉스타에서 만든 신형 전투화는 그동안 병사들을 괴롭혀온 딱딱한 바닥 문제, 두꺼운 가죽으로 인한 뒤꿈치 까짐 문제를 모두 해결하였으며 병사들의 만족도 또한 무척 높다고 한다. 보급 후 네 차례의 개선을 저쳐 현재는 4세대 전투화가 보급되고 있는데, 방수와 통기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착용감과 내구성도 뛰어나 오히려 일반인도 갖고 싶어 할 정도라고 하니 무척 다행한 일이다.
첫째 아들이 현역병으로 복무하고 있는 탓에 휴가 나온 아들의 전투화를 나도 직접 신어보았다. 상상 이상으로 착용감이 편안했다. 신고 있으면 산으로 들로 마냥 걷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렇다면 전투화와 관련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안닌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개선해야 할 관행은 바로 지금부터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고어텍스 전투화는 내부가 고어텍스 원단으로 마감되어 있고 방한/방수 기능이 뛰어나다. 또한 구형 전투화와 달리 방투습 기능이 있는 가죽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투화를 관리함에 있어 전용 세척제를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전용 세척제는 보급되지 않았고, 많은 병사들은 구형 전투화 관리에 사용하던 보급 구두약으로 고어텍스 기능의 신형 전투화를 손질한다.
일반 구두약으로 전투화를 닦아버리면 고어텍스 원단이나 나일론 부분에도 구두약이 발라지기 때문에 방수 기능과 일부 습기 배출 기능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물론 전투화 관리를 전혀 하지 않으면 곰팡이가 생기는 등 가죽에 손상이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두약으로 신형 전투화를 두껍게 덮어버리면 안 되며 얇게 코팅한다는 느낌으로 바르는 것이 좋다고 관련 전문가는 답하고 있다.(디펜스 타임스 2015년 12월호)
3차 개선 신형 전투화는 가죽 부분을 제외하고 얼룩무늬 천으로 이루어졌으나, 이 부분을 구두약으로 검게 칠하는 병사가 많아서였는지 4차 개선 전투화에서는 천의 색이 모두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모든 부분을 검은 구두약으로 칠해도 테가 나지 않게 되었으니 이것을 개선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측에 보이는 전투화의 고어텍스 표식은 원래의 글자색인 흰색을 잃고 검은색으로 변했다. 구두약 덕분이다. 전투화는 전투 시 발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보급품을 소중히 다루고 잘 관리하는 것은 칭찬할 일이지만 고기능의 고어텍스 기능 신발을 모두 검은색 구두약으로 덮어버리는 것은 잘 관리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제부터라도 검은 구두약을 발라 먼지가 보이지 않도록 위장하는 식의 전투화 관리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 21세기, 멋진 화장품이 사방에 널린 시대에 분가루로 얼굴 화장을 하라고 하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전용 세척제를 보급하지는 못하더라도 구두약을 얇게 바르도록 안내하고, 고어텍스 기능을 병사들에게 잘 이해시킨다면 구두약으로 전투화를 화장시켜 겉만 번지르르하게 치장하던 과거의 보여주기 식 군대 보급품 관리 관행들은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
군비 검열을 받을 때마다 긁히고 찌그러진 반합에 페인트를 칠하던 생각이 아련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좋은 군사 보급품을 지급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며 칭찬할 일이다. 다만, 새 제품에 맞는 관리 방법을 잘 안내한다면 병사들도 스스로 자신의 물건을 소중히 여기며 기꺼이 잘 관리할 것이다. 요즘 병사들은 전역한 후에도 전투화를 신고 싶어 한단다. 보급품의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으면 그러하겠는가. 또한 그러하기에 자율적인 관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By 철물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