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엔 학교 시설 관리자분들과 수리공분들이 다녀가셨다. 고장난 라디에이터에서 물이 분수처럼 새어 나왔던 까닭이다. 장소는 4층에 있는 동아리 방이었다. 그곳에 처음 갔던 때가 벌써 5년 전이다. 얼굴이 흐릿하게 기억나는 동아리 선배들과 피자를 먹으며 오사마리 뮤비를 봤었다. 아주 친하진 않아도 다정하다고 생각하며 좋아하던 선배들이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아직도 90년대 동아리 공연 포스터가 벽면에 덕지덕지 붙어있고 뚱뚱한 옛날 컴퓨터가 책상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맞은편 책상은 디제잉 기계가 차지했다. 이제 파티동아리와 함께 동아리 방을 쓰는 모양이었다. 방음 스펀지가 붙어있는 부스는 문을 걸어 잠근 지 오래라고 했다. 장판은 마구잡이로 일어났고 생전 맡아본 적 없는 먼지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한밤중에 거기 있으면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그날은 왠지 무섭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에게 받은 마이크를 설치해 녹음하기 시작했다.
랩에 대한 흥미를 느낀 건 스무 살 쯤부터였다. 그때도 내성적이고 소심한 구석이 있었지만, 무대에 서는 일은 짜릿했다. 가사를 적는 것도 재밌었고 친구들과 한 마디씩 주고받는 게 즐거웠다. 진심 어린 말과 행동으로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 무렵에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술자리 대화 소재로 나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그들의 말을 옮겨주었다.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 네가 여자치고 잘하는 거지 사실 잘하는 편은 아니라고 하더라 등의 말이었다. 재밌어서 시작한 일에 재단당하는 기분은 좋지 않았다.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그렇게 크지 않아 더 그랬다.
노래를 만드는 건 그저 취미라 해도 지독하게 재밌는 일, 몇 년이 지나도 혼자 킬킬대며 즐거워할 일이다. 좋은 음악을 하겠다는 염원은 없지만 나와 친구들의 유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 할머니가 되면 아이들에게 이때 만든 노래들과 비디오를 보여주며 말할 것이다. “난 이렇게 랩도 했단다”
한바탕 물난리가 난 다음날 다시 동아리 방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수리공분들이 층마다 라디에이터를 고치는 소리가 들렸다. 간밤에 내가 작은 공을 쏘아 올렸다고 생각했다. 다시 녹음을 하고 있는데 수리공 한 분이 문을 두드렸다.
“여기 형광등도 하나 안켜지던데 고쳐 드릴까요?”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네 고쳐주세요"라고 대답했다.
피자를 함께 먹던 선배가 동아리 방 한편에서 혼자 작업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 좀 더 밝은 불 아래에서 내가 녹음을 한다. 그 선배가 랩을 할 때만큼이나 다른 인생을 멋지게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나도 그럴 테니까.
https://soundcloud.com/qhs4tpmdi1w8/1997a?ref=clipboard&p=i&c=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