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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모 Apr 06. 2021

달리기 위한 걷기


 어느 날 친구가 물었다. 왜 달리기를 하느냐고. 곧장 이렇게 대답했다. “달리면 생각이 없어져. 난 생각이 많아서 잠드는 것도 어려워하니까, 달릴 때는 그냥 달리면 되더라고”

그렇게 생각을 없애려 작년 여름과 가을을 달리기로 보냈다. 몸이 무겁거나 기분이 가라앉아도 일단 뛰었다. 보통 인적이 드문 밤에 뛰었고 종종 아침에도 신발 끈을 묶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달리기가 힘겨워졌다. 달리다 보면 언제나 숨이 차올라 결국 버거워지는 지점이 오는데 그런 것과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었다.

 병원에 가서야 발목에 선천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자주 욱신거렸지만, 검사를 하고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의사는 달리지 말고 계단을 오르라고 했다. “이제 달리기 하지 마세요”라는 말이 꽤 속상하게 들렸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처럼 아프고 숨소리가 고통스럽게 변해도 감정을 무시할 수 있어서 달리기를 좋아했던 거였다. 이제 다시 어지러운 생각을 하며 침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을 눈치 챘는지 의사가 다시 다독이며 말했다. “계단 오르기 열심히 하다 보면 달릴 수 있을 거예요”


 계단을 오르는 건 생각보다 더 지루했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높은 계단을 보다가 이내 털썩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달리지 못해 느렸고 느려서 생각이 많았다. 계단을 오르며 떠오른 생각들은 아주 단순하고 그래서 미워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오르고 싶다, 힘들어도 계속 가고 싶다. 도착할 수 있다. 괜찮아질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차근차근 올라가는 발소리와 함께 생각도 메아리처럼 공간을 울리며 채웠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땀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겨울이 찾아올 무렵 꾸준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많이 오르지 않으면 400개 정도의 단을, 많이 오르면 800개 정도의 단을 올랐다. 오를 때마다 아파트 복도에 불이 켜졌다. 컴컴하고 비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지난여름을 생각했다. 그때 나는 계단을 내려와 서글프게 울었다. 복도 불이 꺼지고 고요해질 때까지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그 고요했던 공간이 이제 숨소리로 가득 찬다. 오르는 속도는 더디지만 금세 몸이 더워져 따뜻한 숨을 연이어 내뱉는다. 아프지 않기 위해, 힘들지 않기 위해, 울지 않기 위해 계단을 오른다. 그러면 다시 달리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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