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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모 Jun 03. 2021

흠모하던 농구 교수님

 갑자기 고시원에서 와이파이를 다시 설치한다고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덕분에 농구 수업을 무척 일찍 갔다. 텅 빈 코트장에서 멍이나 때리자 했는데 교수님이 계셨다. 농구 교수님을 흠모해온 나는 “게임 한 판 어떠셔요? 제가 강백호, 교수님이 서태웅인 겁니다!”하고 말하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조용히 인사를 드린 후 멀찍한 구석에 앉았다. 삼십 분 동안 교수님은 홀로 농구를 하셨고 나는 괜히 노트북을 켜서 논문 자료를 정리했다.

수업이 시작되고 마스크 속에서 아른아른 울었다. 나름 농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패스를 할 때나, 레이업 슛을 할 때 가장 모자란 학생처럼 보인 까닭이었다. 동료가 열심히 스텝과 손동작을 알려주었지만, 순간 깨달았다. 난 이론을 행동으로 곧장 실행할 수 없는 ‘몸치’라는 것을! 한탄스러웠음에도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거리며 열심히 공을 던졌다. 열악한 운동신경일지언정 봐주세요 교수님, 저 정말 최선을 다하죠-


 그 열의도 오래 가지 못했다. 동료들에게 “굿-“ “구웃!” “좋아”하다가 내 차례에서는 “....오케이” 하고 중얼거리시는 교수님이었다.

생일날 친구 M이 이렇게 말했었다. “교수님의 눈에 띄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야. 첫째는 에이스가 되는 거고 둘째는 깍두기가 되는 거지” 에이스가 되어 환심을 사고 싶었으나, 다 익지도 못한 깍두기가 되고 말았다. 눈에 띄어서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과제를 하느라 피곤한 탓에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척을 할까 하다가도 이미 몸은 코트 위를 펄펄 날며 뛰고 있었다. 흐르는 땀에 비례하지 않는 미스, 미스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아, 난 깍두기가 정말 되기 싫다. 동료들에게 건네주던 토레타를 내가 마시고 싶다. 게임을 뛰고 싶다! 그로부터 기필코 레이업 슛을 성공하겠다고 저녁만 되면 농구장으로 향했다. 언젠가 다 익으리라, 얼얼하게 매운 깍두기가 되리라 하며.. 

아마 학기가 끝날 때까지도 교수님께 먼저 말을 붙여볼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굿”이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에이쁠을 받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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