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술

by 시모


대학에 입학하면 술을 많이 먹어보자고 다짐했었다. 소주를 한 병 다 마시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내성적이던 성격이 돌변하지 않을까, 술자리의 낯선 사람들과 너무 한 번에 친해지면 어떡하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과 활발히 대화하는건 어려웠다.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쭈뼛거리며 혼자 잔을 채우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머지 분량의 술을 마셨다. 그런 이유로 새내기 때 술을 마시고 싶으면 방구석에서 스펀지 밥을 보며 컵라면, 과일 소주와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잔도 필요하지 않았다. 인위적인 자몽 향이나 사과 향이 나는 소주에 빨대를 꽂고 좋아하는 속도로 마셨다. 느끼한 튀김우동 국물을 넘긴 후 소주를 쪼옥- 빨아올리며 뚱이와 스펀지 밥의 천진한 모습을 보면 금세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쯤 부터 내가 술자리보다는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다양한 맛과 기분을 좋게도, 울적하게도 만드는 신비한 힘에 끌렸다. 학교에서 마시는 술은 더욱 특별했다. 가장 즐겨 찾던 장소는 도서관 앞 광장과 대운동장이었다.

낮에는 광장에 가서 막걸리를 마셨다. 학생들 사이에는 그곳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문화가 꽤 오래 유행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테이블을 하나씩 차지하고 대낮의 술판을 벌이는 식이었다. 나는 보통 집에서 싸온 도시락이나 편의점 묵은지 참치김밥 따위를 곁들여 막걸리를 마셨다. 꼬불꼬불한 나무 아래의 테이블에서 과제를 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도 읽었다. 이따금 나무줄기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눈을 찡그리고 막걸리를 병째 들이켰다. 지붕 위에서 떨어져 꿈틀거리는 벌레나 교내 방송에서 들려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술친구였다.

운동장에서는 맥주를 마시곤 했다. 모래 운동장을 둥그렇게 감싸는 돌계단에서 찬 기운을 느끼며 자주 앉아있었다.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으면 별이 잘 보였고 산속 생물들이 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과제물이 뜻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 동아리 공연 리허설에서 실수를 했을 때 그곳을 찾았다. 기숙사를 떠나기 전날이라던가,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목구멍을 적시고 싶은 날에도 운동장은 내 단골 술집이었다.



그래도 혼자 마시는 술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마시는 술이 좋다. 그 사람의 눈을 보며 얘기를 듣다가 이내 비슷한 마음으로 잔을 부딪칠 때의 다정함을 아낀다. 술이 넘어가면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다급하게 안주를 먹은 다음 동시에 웃음 짓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게 자기의 기운을 조금씩 떼어주고 나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람과 있으면 집에 가기 싫다. 날이 밝을 때까지 여러 술집을 전전하다가 첫차에 올라타서야 모른 척 했던 피곤함을 느끼고 싶다.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학교 사람들과 친해지고 어울려 술을 먹기 시작한 건 입학을 하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새내기’라는 호칭이 어색해질 때쯤 이중모션이라는 게임을 배우고 즐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광장에서 유재하 앨범을 들으며 막걸리를 따라주었고 또 누군가는 깊은 밤 운동장에 앉아 모솔탈출에 대한 고민을 함께했다. 그 애들을 무척 좋아했다.

학교의 이름을 따서 ‘OO 마을’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우리는 어둑해지는 밤, 정문에 노란 불빛이 들어오면 그곳으로 향했다. 높지 않은 계단을 내려가 마주하는 풍경은 계절마다 달랐다. 개강이나 종강 즈음엔 술 취한 사람들의 고성이 가득했고, 시험 기간이나 방학 때는 인기척이 없어 스산했다. 자주 가던 곳은 기름 냄새가 가득한 치킨집이었다. 가게 안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쓰여진 낙서가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가장 맛있는 안주는 골뱅이 소면이었다. 단맛이 많이 나는 두부김치와 생마늘이 듬성듬성 올라간 닭똥집 튀김도 맛있었다. 가끔 숙취를 생각하지 않고 매실 소주나 요구르트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몇몇 애들은 그 옆에 인형 뽑기 기계에서 게임을 하다 집으로 갔다. 또 몇몇은 반대편 평상 위에 올라가 담배를 피웠다. 나도 피워볼까 하면 담배를 쥐여주고도 불은 붙여주지 않는 애들이었다. 보통 거기에 가자고 조르던 건 나였다. 정 많은 사장님이 살갑지 못하던 내게 아는 척을 해주신 후부터였다.



사장님은 모든 학생을 특별하게 여기시는 듯했지만 내게는 그 사장님만이 그랬다. 그래서 이제 그곳에 혼자서도 술을 마시러 간다. 사라진 인형뽑기 기계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잠깐 동안 술 게임 박자가 어땠는지 떠올려본다. 그리고 곧 기꺼이 정을 나누던 친구와 장소를 애틋한 마음으로 기억해낸다. 정문을 통과해 친구와 달리기를 하고 맥주를 마시던 운동장을 지나친다. 풀냄새 가득한 언덕을 오르면 가로등이 켜진 광장이 나온다. 그리고 곧 구석 테이블에 앉아 서로의 특별함에 대해 말하는 친구와 내가 보인다. 이제는 대학생이 아닌, 혹은 여전히 대학생인 내 사람들을 이 시절이 끝나도 오래도록 보고플 것이다. 언젠가 ‘대학생’이라는 호칭이 까마득해질 때쯤 다시 좋아하던 그것들과 만나 첫차가 뜰 때까지 함께 하고싶다. 모든 것이 그대로일 수는 없겠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기를, 술만큼이나 너희를 좋아했다고, 여전히 너희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keyword
시모 창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예술가 프로필
팔로워 320
매거진의 이전글봄 술과 떡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