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
시험기간, 앞으로 5일
무대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오른쪽 부분에서 명준, 걸어 나온다.
명준: 다가올 중간고사가 너무 무섭습니다. 학력고사는 더 무섭습니다.
행복을 성적순이 아니라고 하지만,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못 바꾸잖아요.
왼쪽 부분의 조명이 들어온다.
당신의 친구, 책상에 앉아 플래너를 빼곡하게 작성하는 중이다.
친구: 중간에 비해 기말 준비할 게 너무 많아. 이럴 거면 중간고사 때 과목 몇 개 더 보지.
당신: 왜 그렇게 열심히 해?
친구, 당신를 바라보다 헛웃음을 짓는다. 질문이 웃기다고 생각하는지 조금 오래 웃는다.
친구: 그래야 하니까.
(사이)
친구: 그래야 하니까. 여기는 한국이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나는 대학에 가야 하니까.
그것도 좋은 대학에 가야 하니까. 그래야 나는 좋은 교수님 아래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으니까.
친구, 다시 문제집으로 고개를 돌린다.
당신,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뭐라 입을 열려다, 발 걸음을 돌린다.
친구: (당신을 슬쩍 곁눈질 하다 작게 중얼거린다.) 안 그래?
< 2장 >
시험 2일전,
무대 오른쪽에서 수환과 명준 함께 공부하고 있다.
수환: 너희 엄마가 나한테 모의고사 성적표 나왔냐고 물으시더라.
명준: (흠칫 놀라며) 뭐야, 말 했어? 나왔다고?
수환: 안 나왔다고 했지 임마, 내가 눈치는 또 백단 아니냐.
명준: (다행이라는 듯) 휴…
수환: 야, 넌 그래도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떨어졌지? 나는 2등급 턱 걸이 한 거 이번에 3등급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사이)
친구2: 와, 진짜 수학 때문에 미치겠다.
친구1 : 워크북만 계속 풀면 되잖아. 나 저번 중간 때는 한 10번 풀었는데.
당신 : 10번? 미쳤다. 아
친구2: 고등학교 수학 진짜 오진다. 나 영어도 해야 되고 사회과 과목 공부도 해야 되는데.
당신1: 너네 비문 책 3권인가 읽어야 된다며
친구1: 나 비문 던짐.
친구2: 아니 영어가 진심 개 심각해. 공부 어떻게 하냐.
친구1: 아 진짜 하기 싫어 죽겠다.
(사이)
수환: 저번에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는 걔 있잖아
명준: 누구? 누가?
수환: 대원외고 전교 1등! 자살 했잖아!
명준: 1등이 자살을 왜 해?
수환: 몰라, 부담스럽다나. 어휴, 쪽팔리게 그런 걸로 뉴스에 나오고.
야, 걔네 엄마 아빠는 어떡하냐. 아니, 그런 얘가 죽으면 우리는 뭐야!
걔네 반 애들은 심난해서 공부 하겠냐.
명준: 부담스러워서? 죽고 싶을 수도 있지. 근데 그건 걔 얘기고,
우린 그럴 시간 없어. 우린 심장도 없는 거야. 이번 중간고사 정말 잘 봐야지,
그래야 서울대 농대라도 가지.
(사이)
친구2: 졸업생 선배랑 톡했는 데, 이야기 들어보니까 개 빻았더라.
친구1: 왜 어떤데?
친구2: 그냥 관계나 공부나 교수나…대학 가니까 더 힘들대.
당신: 야, 그 선배는 대학 어디갔어?
친구2: 그 선배? 성공회대 갔을 걸, 왜?
당신: 그 선배도 힘들다고 하던데. 저번에 만났는데 휴학하고 싶다고 하셔서..
친구1: 나 아는 선배도 휴학하고 싶다고 하더라. 등록금 버느라 생활 망가졌다고 하던데. 계속 알바 하니까 아무래도..
잠시 침묵, 사각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친구2: 아, 누구가 이번에 서강대에 원서 낸다더라
당신: 누구 4점대 아니야?
친구2: 그래도, 뭐 활동도 많이 했고…누구 정도면..그리고 서강대 갈 수 있으면 좋잖아.
친구1: 그지. 서강대 좋지.
당신: 나도 서강대 가고 싶다.
친구1: 아니, 난 서울대 가고 싶은데?
일동, 낄낄거리며 웃는다.
< 3장 >
시험 시작 하기 전 교실,
첫날, 수학 시험이다.
명준, 마지막으로 수학 문제집을 들여다보는 반장 민영의 등을 툭 친다.
(명준은 저번 시험 반 1등이었다.)
명준: 너무 노력하지 말지?
민영, 명준을 노려보다 다시 문제집으로 눈을 돌린다.
명준: (민영의 문제집을 툭 치며) 야야, 그만해. 곧 시작이야.
이런다고 만 점 받을 것 같아? 만점은 너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태생이지.
민영: (조그맣게) 개새끼…
(사이)
반대쪽 무대.
정신없이 서로에게 문제를 물어보고 있다.
친구2: 야, 이 문제 왜 이렇게 된다고?
당신: 이 걸 미분해서. 이렇게...
종소리.
왼쪽과 오른쪽 무대 모두 시험이 시작된다.
학생들, 시험지를 넘기며 빠르게 문제를 푼다.
샤프를 쥔 손이 여기저기 움직인다.
신경질적으로 지우개질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명준,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 듯 잔뜩 미간을 지푸린다.
감독하는 선생님, 손목시계를 흘낏 보더니 말한다.
선생님: 시험시간 10분 남았다.
당신, 초조한 표정으로 마지막 문제를 풀고 있다.
명준, 당신을 바라본다.
명준: 다 풀고 나니까 답이 x=4a가 나왔습니다.
그런데…객관식 예전에 1번이 a, 2번이 2a, 3번이 3a, 4번이 0. 무슨 일이죠? 제 답 4a가 어디 있을까요?
당신, 마킹을 하다가 실수 했는지 화이트로 죽죽 긋는다.
당신, 명준을 바라본다.
당신: 적분 먼저 하고 미분하면 상수가 안 남고…
컴퓨터 싸인 펜이 3번과 4번 사이를 불안하게 오간다.
펜을 딱딱 거리는 소리, 발을 떠는 소리, 머리를 긁는 소리, 침을 삼키는 소리
소리, 소리, 소리들이 거세진다. 그러다 뚝-
종소리, 딩-동-댕-동-
선생님: 모두 풀던 거 내려놓고 손 머리 해, 뒤에서 붙어 걷어와라.
당신, 명준, 서로를 바라본다.
당신, 명준: 시발
< 4장 >
학생들,
시끄럽게 떠들고 있지만 불안감이 감돈다.
학생1: 아직 수학 답안지 안 나왔지?
학생3: 아 어차피 가채점 안해도 망했을 텐데.
학생2: 나도
일동, 웃음을 터트리지만, 가채점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순, 복도가 시끄러워진다.
친구1: 야! 수학 답안지 나왔어!
학생 1,2,3 모두 시험지를 챙겨 복도로 달려간다.
복도에는 학생들이 빼곡하다.
답안지는 학생들의 키보다 설핏 높은 곳에 붙어져있다.
당신 역시 수학 시험지를 손에 들고 복도로 왔지만
답안지 아래 고개를 들고 창백하거나 상기 된 표정으로 채점하는 학생들의 구도를 의식한다.
답안지는 학생들 시선 위에 있다.
누군가: (고개를 숙여 시험지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며.) “좆같네.”
당신, 답안지를 올려다본다.
당신: …좇같네.
< 5장 >
시험이 끝났다.
복도에는 답안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선생님: 성적표 나왔다. 1번부터 나와라.
성적표를 받은 명준, 시험 성적이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반장 민영, 명준의 점수를 슬쩍 바라보며 말한다.
민영: 공부하기 힘들었나 봐?
명준, 민영을 노려본다.
민영, 굴하지 않는다.
민영: 야, 저번 시험 때, 반 1등 했다고 뭐라도 된 줄 알았지?
명준. 민영의 손에서 성적표를 뺐는다, 민영의 성적은 명준보다 높다.
민영: (비웃으며) 고작 3%주제에. 야, 난 0.3%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쉽게 이야기해줄까?
너 군대에서 좆뺑이 칠 떄, 난 어학연수 갈 거야. 너 대학원 다닐 때,
난 유학 갈 거고, 너 회사 다닐 때, 난 회사를 하나 차려도 될 걸?
민영, 명준의 반응을 살핀다.
웃음을 감추려는 듯 지긋이 입술을 깨문다.
민영:이게, 너가 노력한다고 되는 일일까?
명준, 참지 못하고 민영에게 내뱉는다.
명준: 좆 같은 새끼.
민영: 그래도, 연고대는 가야 사람 구실이라도 하지. 안 그래?
(사이)
당신, 성적표를 받아서 확인한다.
선생님: 성적이 전부는 아니니까. 잘했다. 수고했어.
선생님의 말에도 불구하고
울거나 자괴감에 빠진 학생들,
당신, 자괴감에 빠져 계단에 앉아 고개를 숙인 학생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명준을 바라본다.
계단에 앉아있는 학생: 연고대라도 가야 사람 구실을 하지…
명준,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명준, 관객석을 응시한다.
@이선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