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안
4·7 재보궐 선거 전 더불어민주당은 전국 단위 선거에서 4연승을 거두고 있었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선, 2020년 총선에서 가장 많은 당선자를 배출했다. 이해찬의 ‘20년 민주당 집권론’이 화두에 오를 만큼 민주당의 지지세는 굳건해보였다. 그러나 2021년은 그 흐름을 다시금 뒤집어 놓았다. 주요 선거였던 서울과 부산시장은 물론, 호남을 제외한 지역의 지방의회 의석 다수를 잃었다. 서울과 부산의 41개 기초자치단체에서 민주당의 우세 지역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무엇이 민심의 역동적 변화를 이끌었을까?
11년 전으로 돌아 가보자. 현재의 기준으로 2009년 5월 23일은 한국 정치를 뒤흔든 변곡점이다. ‘대통령 퇴임 1년만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사건은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500만 여명의 시민들이 그를 조문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박연차 게이트’로 검찰 수사를 받던 시기였다. 검찰의 압박수사는 본인과 주변 인물을 옥죄어 왔다. 검찰은 그를 소환해 검찰청 앞 포토라인에 세웠다. 언론은 연일 검찰의 수사를 디테일하게 보도했다. 수사 내용 일부가 선정적으로 보도되었던 ‘논두렁 시계 보도’도 이 당시다. 당시 국정원이 해당 수사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이후의 일이다.
따라 당대 시민들의 충격과 분노, 비판의 화살은 검찰과 언론, 그리고 이명박 정부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검찰과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이 임기 중 개혁 대상임을 천명했던 집단이었다. 노무현을 추모하는 시민들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 언론의 일방적 비난을 성토했고, 이를 ‘정치 보복’으로 이용했다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그 이후, 노무현을 대한 ‘검찰’과 ‘언론’을 향한 불신, 그리고 강력한 ‘反보수정당’의 정서는 그를 기리는 시민들의 공통분모가 되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비극은 결과적으로 ‘친노’ 세력의 재기를 이끌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대표적 친노 인사였던 안희정이 친노를 ‘폐족’이라 표현할 정도로 차가운 민심을 맞이했던 친노였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노무현의 정치철학은 민심의 ‘재평가’를 받았다. 청년이 되어 노무현의 극적인 당선에 동참했고, 탄핵 사태와 5년간의 행정을 경험했으며, 비극적 죽음을 맞는 일련의 과정을 전부 목도한 시민들은 ‘친노’를 자처하는 이들을 지지했다. 이들은 한명숙, 유시민, 안희정, 이광재 등의 전국구 정치인을 만들었고, 결정적으로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의 정치 데뷔를 이끌었다. 2010년대를 기점으로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은 민주화 향수를 가진 ‘386’ 세대에서 노무현을 기억하는 ‘친노 3040’ 세대로 이동했다.
현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안티테제의 아이콘이다. 그를 총장으로 지명한 것도, 아이콘으로 키운 것도 정부의 선택이었지만 말이다.
윤 전 총장이 검찰총장으로 지명된 것은 2019년 6월이다. 당시 정계의 반응은 지금과 대조적이었다. 윤석열에 한 차례 데인 경험이 있던 야당, 자유한국당은 ‘코드 인사’라며 반발했으나 민주당은 ‘검찰개혁을 완수할 인물’이라 호평했다. 청문회에서도 민주당 의원들의 비호가 이어졌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윤 후보자는 정권에 따라 유불리를 가리지 않고 검사의 소신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해왔고, 이런 것들이 (현 정부의) 가장 큰 동력"이라 호평했다.
19년 8월,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사태를 수사하기 시작하며 청와대·민주당과의 관계는 틀어졌다. 이를 기점으로 2021년 2월 자진 사퇴까지 윤 전 총장과 정부여당의 갈등은 1년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이어졌다. 조국, 추미애, 박범계로 이어지는 검찰의 카운터파트너는 계속 변했지만, 상호 강경한 대응으로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으며 해당 기간 내내 이슈를 뒤덮었다. 메인 이슈에 오래 머무는 만큼 시민들은 이슈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졌다. 한겨레와 케이스탯리서치의 1월 조사에서, 검찰개혁의 “취지·절차·방법 모두 잘못 됐다”는 여론이 33.9%, “취지는 옳으나 절차·방법 잘못됐다”는 응답이 41.9%인데 반해, “취지와 절차·방법 모두 옳았다”는 응답은 17.2%였다. 한국사회연구소가 2019년 9월 시행한 검찰개혁 공감도 설문에서 ‘공감한다’는 응답이 61%,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36.1%로 공감 여론이 약 2배 가까이 높게 나타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민들은 오랜 기간 검찰개혁 이슈를 접하며 피곤해졌다. 검찰에 대한 강한 맹신 혹은 불신이 없다면 이슈 리딩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와중,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에서 비롯된 검찰에 대한 강한 불신은 해당 이슈를 지속적으로 점화시킬 수 있었다. 민주당의 적극 지지층은 검찰개혁을 신뢰할 수 있었으나, 이외의 시민들이 피로감을 느낀 이유는 여기서 비롯되었다. 노무현의 정치적 비극을 기억하는 세대, 그것이 일부 민주당 지지층에서 주장하는 ‘역사의식 부재’의 의미다.
지난 1년 6개월은 정부와 여당이 가진 검찰개혁에 대한 ‘진심’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다수 시민들에게 정부·여당과 윤 전 총장의 갈등 구도는 피곤을 안겨 검찰개혁의 진의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 의심케 했다. 또한 이는 윤석열을 문재인 정부의 안티테제, ‘반문’ 세력의 아이콘으로 성장시켰다. 현 정부의 검찰총장이 대권주자로 나서는 기이한 상황은, 사실상 정부·여당의 강경대응 일변도 전략이 초래한 것이다.
정치인은 시민의 요구를 반영해 행동한다. 자기 행동의 소구력을 무시하면 생존이 위험하고, 너무 의식해 갈등적 세계관을 제시하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듣는다. 고집과 소통의 중간 어디에서 정치인은 자신의 행보를 결정한다.
국민의힘의 정치인들은 4월 재·보궐선거 직전부터 일제히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대한 비토의 목소리를 냈다. 이 행보가 소신보다는, ‘반문’ 유권자로부터 소구력을 얻으려는 조직된 행위라 본다. 언론인 1인이 대대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례는 이례적이다. 자칫 비판의 수위가 거세지면 ‘언론의 자유 침해’라는 역풍을 맞기 좋다. 하지만 갈등은 비등한 모양새다. 김어준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김어준 비호에 나섰다. 추미애 전 장관은 “시민을 위한 방송, 팩트에 기반한 방송, 진실을 말하는 방송이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며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두둔했다. 송영길 의원도 “‘뉴스공장’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라며 박영선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뉴스공장’을 둘러싼 정치인들의 갈등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하나는 김어준과 그의 방송이 당에 대응할 정도로 진영을 대표하는 언론사급의 지위와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다수의 시민들이 ‘언론개혁’의 표본으로서 김어준의 저널리즘을 우려한다는 점이다.
김어준은 빠른 시간에 메이저 저널리스트로 성장했다. 헌데, 메이저에서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역설적으로 ‘마이너함’이다. 오랜 기간 딴지일보에서 구축해 온 유쾌한 화술과 넓은 인맥, 그리고 때때로 가려움을 긁어주는 정파성과 음모론(그에 표현에 의하면, ‘추정’)이 그를 메이저 저널리즘의 한 가운데로 세웠다.
김어준의 인기는 시대 시민의 요구인지도 모르겠다.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의 <디지털뉴스리포트>는 조사 대상 40개국 중 터키, 멕시코, 필리핀에 이어 한국이 네 번째로 “자신과 같은 관점을 가진 뉴스를 선호한다“(44%)는 조사를 발표했다. 평균(28%)과도 크게 차이나는 수치다. 나는 이러한 지표가 다른 관점을 가진 언론에 대한 신뢰가 낮으며, 사안을 여러 방면에서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미디어 수용자의 비중이 비교적 낮은 것이라 본다.
이 상황에서 모든 언론은 ‘적폐’이며, 기자들은 ‘기레기’라는 수사는 주류 언론에 대한 불신을 뜻한다. 또한 김어준의 인기 요인을 어느 정도 설명한다. 김어준의 주된 주장은“주류 언론은 눈치 보여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 해석을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김어준 특유의 미디어 문법은 종종 필요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SBS)에서 강유미를 통해 양승태를 인터뷰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때로 ‘좋은 언론’에 대한 배타적·제한적 정의는 자신의 과한 정파성과 음모론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더 플랜>의 ‘K값’ 주장이나, ‘이용수 운동가 배후설’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그는 결과적으로 ‘기레기론’을 보충한다.
‘기레기론’은 저널리즘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쉽고 간편한 해결책이다. 나도 여전히 많은 저널리즘의 문제는 언론(사)를 비롯한 공급처로부터 비롯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뉴스 소비자의 수요와 그에 따른 언론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언론 평가는 바람직하지 않다. 언론개혁을 주창하는 정치인은 더더욱 언론에 대한 평가를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지키고자’, 혹은 ‘없애고자’ 하는 주장이 언론개혁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2017년 이전까지, 민주당 내 ‘친노’ 세력은 세 번의 위기를 맞았다. 2012년의 총선·대선 패배, 2015년의 새정치민주연합-국민의당 분당 사태, 그리고 김종인의 2016년 총선 대규모 컷오프 사태다. 개중 마지막 사례인 김종인의 2016년 총선 컷오프 사태를 좀 더 알아볼만 하다.
2016년, 민주당의 문재인 당시 대표는 김종인에게 20대 총선의 전권을 맡겼다. 대대적 혁신을 꾀했던 민주당이 박근혜 캠프 출신의 인사를 옹립했다는 점에서 실로 파격적 선택이었다.
김종인은 한국의 정치인으로서는 특이한 아웃사이더 유형이다. 촉망받는 경제학자 출신으로 전국구 비례대표로만 5선을 지낸 인물로, 당과는 무관히 자신을 불러주는 곳에서 제 역할을 해낸다. 2012년에는 박근혜 캠프에서, 2016년에는 문재인의 부탁을 받은 민주당에서, 2020년에서는 국민의힘에서 중책을 맡았다. 그럼에도 김종인의 역할은 일관적이다. 정치적 부동층에 입장으로, 중도적 성향의 유권자들을 끌어 모으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제거한다. 2016년에는 ‘현역 컷오프’를 통해 그를 이뤘다.
친노의 좌장 이해찬과 높은 인지도의 정청래, 친노계 중진 문희상, 유인태, 노영민 등이 공천에서 컷오프 되었다. 친민주당 성향의 인사들과 뉴미디어로부터 ‘친노 학살’, ‘친노 솎아내기’ 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자신을 비례대표 2번에 ‘셀프 공천’하며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그러나 민주당의 20대 총선 결과는 신승이었다. 국민의당의 분당으로 수도권에서 분산된 표를 얻어 다수의 당선자를 냈다. 호남에서 크게 부진했지만, 새누리당을 누르고 원내 1당으로 올라섰다.
결과적으로, 김종인의 친노 인사 다수 컷오프는 여당의 헛발질과 겹쳐 중도 세력을 끌어 모으는 기제로 작동했다. 정당의 헤게모니를 쥔 세력을 약화시킴으로써 ‘표를 줘도 괜찮은 대중정당이다’는 인식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당시 민주당 내 ‘친노-친문’ 세력은 청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일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종인은 당내 계파색이 뚜렷한 중진은 컷오프 하는 한편, 문재인 당시 대표의 영입인재나 초·재선 의원들의 당선을 다수 이끌어냈다. 컷오프된 이해찬 또한 국회 입성에 성공했음은 물론이다. 이는 향후 대선을 향한 문재인의 당내 지위를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인식을 만들고 실리를 챙긴 김종인과 문재인은 각각 킹메이커, 대선 후보로서의 이점을 얻는 ‘윈윈’의 결과를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4월 재·보궐선거 이전 부재했던 민주당의 반성적 태도, 혹은 시민들로 하여금 그에 준하는 인식을 가지게 할 수 있는 반성적 전략이 부족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번에는 밀리면 안 된다’는 피해의식이 작동한 결과다. 전략적 성찰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낙연 대표는 “잘못은 통렬히 반성하고 혁신하며, 미래를 다부지게 개척하겠다”며 선거운동 시작 메시지를 냈다. 잘못은 있으나, 무엇이 잘못인지는 지적하지 않는다. 정주식 편집장의 워딩을 옮기자면, “열심히 사과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아는 노무현의 꿈은 ‘윤석열 쳐내기’에 급급한 검찰개혁과 ‘뉴스공장’ 존폐 논쟁은 아니었다. 그의 개혁의지를 표방하는 민주당에게 반성과 성찰의 부재는 선거 패배보다 더욱 뼈아프다.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