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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파이 Jun 05. 2020

이우학교와 모범생들-극작가의 말.

“저희, 모범생들 이잖아요?” 


우리는 비웃을 수 있을 것인가? 감히?

동떨어져 있다고 확언할 수 있는가?

일말의 동일성도 없다며 오로지 관객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나는 중학교 때, 모범생들을 보고 나오면서

집으로 가는 버스 내내 울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내 삶과 끔찍하게 닮았기 때문에

극중에서 1등급을 지칭하는 3%라는 말은 자주 나온다.

이 %라는 기호는 어쩐지 낯설다. 공포스러운 기호일 따름이다. 나에게는.

단순히 내신과 생기부에 찍히는 특수기호이기 때문일까.

3%라는 글자를 빤히 바라보면서, 기요틴-단두대와도 같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3% 라는 문자에 속해 있는 숫자. 외에는 모두 존재조차 불가능한.

나는 결코 저 감정의 더미 속으로 밀려들어가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피가 고이도록 입술을 깨물면서 다짐했다. 


헌데, 어째서 다시 보는 이 극 앞에서

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는가?

나는 중학교와 전혀 다른 환경의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나는 더 이상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발톱이 피가 날 때 까지 뜯지 않는다.

내 발톱은 이제 가지런하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다시 눈물을 흘리는가?

우리의 일상은 웃고 있지 않은가, 웬걸. 나는 입이 쓰다. 


도서관에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고개를 숙이고 펜을 놀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대학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중에 편하기 위해 오늘을 힘들게 살 거라는 말들을 들으면서, 그 모든 말들을 들으면서 나는 목 안 쪽이 말라 비틀어지는 기분을 느낀다. 


“ 그래도 연고대는 가야 사람 구실을 하지, 안 그래?” 


안 그래, 안 그래, 나는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안 그래, 안 그래. 비명을 지르며 날 뛰고 싶지만 


돌아봄에 고요하다.


안 그래? 


눈동자들은 침묵하는 듯, 시선은 이리저리 흩어지고. 


안 그래? 


아무도 답하지 않는 듯한. 고개를 외면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안 그래? 


나는 고통스럽다고 말하고 싶다.

시험기간이 다가온다, 깊이 패인 상처를 다시 긁어 재낀다. 


안 그래. 


부디, 안 그래, 라고. 목소리 들아, 부디.


@이선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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