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散在)된 산재(産災)

이산하 김서린 최호영

by 와이파이

산재는 산업 재해의 준말로, 노동자가 업무에 의하거나 작업. 혹은 그 밖의 이유로 부상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을 일컫는다. 법률적으로는 산업안전보건법(제2조)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 제5조)에서 정의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개정 2020. 5. 26.> 1. “산업재해”란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이 업무에 관계되는 건설물ㆍ설비ㆍ원재료ㆍ가스ㆍ증기ㆍ분진 등에 의하거나 작업 또는 그 밖의 업무로 인하여 사망 또는 부상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을 말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개정 2010. 1. 27., 2010. 5. 20., 2010. 6. 4., 2012. 12. 18., 2017. 10. 24., 2018. 6. 12., 2020. 5. 26.> 1.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ㆍ질병ㆍ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



2019년, 경향신문의 한 면을 빼곡히 채웠던 수많은 이름들을, 기사를 기억한다. 기사의 제목은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적어도 하루 세 명씩 산재로 죽는 나라. 재난이 일상인 나라. 경향신문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을 통해 작성한 데이터베이스에서는 조사기간 637일 중 560일, 하루 평균 2.5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그렇게 1년 9개월 동안 사망한 노동자는 1748명이었다.

트위터에는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계정이 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뉴스피드에 뜨지 않기만을 바라는 계정이다. 어김없이 올라와 있는 트윗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정말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맞는지. 누구는 매일같이 떨어지고 다쳐서 그게 너무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려 덤덤해진 건 아닌지. 죽지 않을 수 있었던 한 고귀한 생명의 죽음이 어느새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만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닌지. 누군가는 혹시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매일같이 살아가는데도, 나는 그저 살기 좋다고. 난 편리하고 깨끗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으니 좋은 나라라고 안주하고 위로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것이어야 사고인 것이다. 일상적이고 연쇄적인.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않은 것들은 사고가 아닌 재난. 구조적 모순이다.

"이것은 킬링필드다. 제도화된 약육강식이 아니라면, 이렇게 단순하고 원시적이며 동일한 유형의 사고에 의한 떼죽음이 장기간에 걸쳐 계속되고 방치되고 외면될 수는 없다."
김훈(소설가) *



2016년 5월 28일 오후 5시 57분,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 9-4 스크린도어에서 일하던 김 모 씨가 사망했다. 스크린도어 내부에서 작업하다 달려오는 열차를 보지 못하고 끼어 사망한 것이다. 안전수칙상 2인 1조로 근무하게 되어 있으나,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 모 씨는 두 회사 간 계약한 조건 '고장 접수 후 1시간 이내 현장 도착'을 맞추기 위해 현장에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하고 비정규직이 담당했으며, 회사 간 계약은 지켜질 수 없어 유명무실했고, 결국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2013년 1월 성수역, 2014년 4월 독산역, 2015년 8월 강남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지만 고쳐지지 못했다.

미국의 한 보험사에 다니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는 산업재해를 분석해 하나의 통계적인 법칙을 발견했다.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이다. 한 사람이 중상을 겪기 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경미한 부상이 있었고, 그 이전에 300번의 징후가 나타난다는 법칙이다. 하루 평균 2.5명의 산재사망 통계 뒤엔, 그보다 더 무수히 많은 중상. 경상. 징후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 무수한 전조 증상들을 보지 못해 우리는, 오늘도 3명이 죽는. 어제도 3명이 죽었던. 내일도 3명이 죽을 '사람이 먼지'인 나라**에서 살고 있다.


노동은 신성한 행위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며, 사람의 생명은 하나같이 고귀하다는 말은 정치적 레토릭이거나 환상이거나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당위일 뿐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명도 직업에 따라 다른 값이 매겨진다. 사람이 누군가의 잘못으로 죽거나 다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제기되면, 법원은 신체감정을 통해 노동능력을 얼마나 상실했는지, 그 사람의 월수입이 얼마인지를 조사하고, 정신적 고통까지 계량한 다음 몸값이나 목숨 값을 산정한다. 그러니 회사가 가장 값싼 사람을 가장 위험한 일에 투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사람이 죽거나 다쳤을 때 가장 적은 배상금만 지급하면 되기 때문이다. 모든 노동자는 프로야구 선수처럼 몸값이 낮을수록 죽어서 아웃될 확률이 높다. 아니, 쉽게 아웃되고 대체될 수 있어 몸값이 낮은지도 모르겠다.

<어떤 양형 이유>, 박주영 저



고용노동부에서는 지난 4월 14일 보도자료를 내고 2020년 산업재해 사고 사망 통계를 발표했다. 전체 산재 사망건수는 2,062건. 하루 평균 5명 이상이 산재로 명운을 달리 한 셈이다. 그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882명. 질병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1,180명이었다. 전체 재해자수는 108,379명이었고, 이는

하루 평균 297명이 산재를 입는 셈이란 이야기다. *출퇴근 시 발생한 산재는 미포함


헌법재판소는 2016년 9월, 2014 헌 바 254 결정을 통해 출퇴근 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도 산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뿐만 아니라 국회는 지난 2019년 근로기준법과 산재보험법 개정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을 산재 인정 기준에 포함시켰다.

이처럼 산재의 발생을 예방하거나, 산재를 입었을 때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후속조치를 위한 법들이 제정되어 왔지만,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택배노동자 역시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노동자로서의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고***, 방송국 프리랜서와 같은 경우에도 실질적으로는 방송국과 고용관계에 있지만 산재보험의 가입이 의무사항이 아닌 탓에 미가입 비율이 98.5%에 달한다고 한다****. 또, 산재보험법에서는 그 적용 대상을 농업, 임업 등의 사업장이면서 상시근로자수가 5인 미만인 경우를 제외할 뿐 아니라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는 다양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 않아도 돼 많은 노동자가 노동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2018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는 500만 명이 넘는다.


KakaoTalk_20210625_230449697_01.png '5인 미만 사업장을 위한 핵심 노동법 -고용노동부(2019)'에서 발췌

앞서 밝혔던 통계는 산재 보상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포함이 안되어 있고 직업성 암과 각종 유해물질에 의한 산재사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개인 질환으로 처리되고 있어 실제 산재 피해를 입은 사람의 수는 더 많을 것이다.



지난 1월 8일, 국회에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다.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산업재해와 중대 시민 재해 모두를 포괄하는 법이며,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1년 이내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인해 직업성 질병자가 발생한 경우를 비롯해 특정 원료,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재해에 대한 법률이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정작 산재 유가족들은 통과된 법안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지지부진했던 법안이 겨우겨우 통과되었다는 데에 분명 의미가 있지만,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한 데에 반해 결과물은 초라하다는 평이 많다. 그렇지 않아도 다양한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 대해서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부당하며, 50인 미만 작업장에 법 적용을 유예한 것, 일터에서의 괴롭힘에 의한 죽음을 배제한 것, 책임 있는 발주처와 공무원을 처벌하는 조항이 제외된 것을 지적했다.


KakaoTalk_20210625_230449697_02.png 전국경제인연합회 홈페이지에서 발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은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무작정 법을 반대하기에 앞서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이야기한 정권이지만, 정부에서 제안한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존의 안보다 적용대상을 줄이고 처벌 수위마저 크게 낮췄다.

전체 산재 사고 중 35%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단순히 경제계의 요구만을 받아들인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에 제외된 건 하루에 세 명이 죽는 오늘날의 이 사태를 제대로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자아낸다.


매일같이 재난이 발생한다. 세 명이 죽고, 그보다 몇 배로 많은 사람이 같은 원인으로 중상을 입으며, 그보다 수십 배에 달하는 사람이 같은 원인으로 경상을 입는다. 그보다 수백 배에 달하는 사람이. 매일매일 수천 명, 수만 명이 삶 속에서 사소한 산재의 징후를 맞이하며 살아간다. 오늘 죽을 줄 알고 출근하는 사람은 없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일상화돼 있다. 일상의 재난화란 바로 그런 것이다. 매일 누군가가 죽지만 바뀌지 않는 것. 그래서 내일도 누군가 죽을 것이라는 것. 오늘은 누군가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는데, 기업은 비용 절감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위험한 일은 모두 비정규직에게 떠맡기고 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내자는 사회적 요구는 아주 쉽게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습니다. 더욱이 기업은 인력을 감원하고 업무 강도는 높여, 위험 속에 노동자들을 무방비 상태로 내몰고 있습니다. 구의역 김 군이 그랬고 태안화력발전 고 김용균이 그랬으며, 건설노동자 김태규가, 청년 장애인 노동자 김재순이 그랬습니다. 스물세 살 고 이선호 군의 죽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왜 매번 맞닥뜨려야 하는 것인가요? 노동자들의 목숨과 안전은 기업의 이윤보다 늘 뒷전이어야 하는 것인지요.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양산하는 위험의 외주화를 당장 막아야 합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더욱더 인력을 충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노동안전에 더 많은 비용을 쓰도록 해야 하고 안전에 신경 쓰며 천천히 일해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 다른 이선호가 더 이상 다치고 죽지 않도록,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선호 군의 영혼이 외롭지 않게, 이선호 군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더 이상 노동현장에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로 한 해 2400여 명이 사망하고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산업재해 사망률 1위를 21년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이뤄낸 경제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왜 우리는 늘 다른 이의 죽음과 고통에 기대어 그나마 이렇게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인지요?

[오마이뉴스] 고 이선호 군 49재를 맞아 문재인 대통령께



*[경향신문] 김훈 작가 특별기고 '죽음의 자리로 또 밥벌이 간다'

**트위터,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계정에서 발췌

***지난 6월 2일 중앙노동위원회는 단체교섭과 관련해 택배사를 사용자, 택배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판정을 내렸으나, CJ대한통운은 이에 반발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한다고 했다.

****2016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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