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고등학교. 그리고 삼주체

유예린, 이지행

by 와이파이
우리는 과연 각 삼주체에 대하여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


글을 읽기 전, 자신이 가진 삼주체에 대한 인식 여부, 인식하고 있다면 어떠한 인식인지, 인식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며 읽으면 좋겠다.


개인적 성찰부터 시작하겠다.

나는 여태껏 삼주체에 대한 인식뿐 만 아니라 그 주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존재하고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도 없었다. 단지 삼주체라는 명칭이 존재하고, 그 안에 학생, 교사, 학부모가 있다는 것만 알았다. 이러한 삼주체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2020 년 고 1 학년회장을 하면서 깨달았다.


처음에는 학교 개편이었다. 2020 년 당시 1학년이 끝나갈 때인 2021 년 1월에 학교 개편에 관하여 처음 공지를 받았다. 당장 2 달 후면 개학이고 2 학년이 시작된다.

학교 개편에 관한 공지는 다수의 학생들에게 너무 늦어졌고 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에 대한 이유로는 ‘교사 간의 이해도를 조절하는 과정’에 의한 것이라는 전달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그것을 존중하지 못했다. 부정적 인식을 가졌고, 삼주체로서의 공존과 올곧은 인식보다는 다른 구성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태도가 강했다. 이것이 처음으로 ‘삼주체’가 가지는 영향과 상관관계를 기억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두 번째는 2021 년 와이파이 한여름 밤의 꿈 기사 작성 중 김철원 선생님의 인터뷰에서 깨달았다. 한여름 밤의 꿈은 이우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교육과정이다. 이런 교육과정이 여러 가지 변화 과정을 거쳐왔다. 담당 교사 변경, 교육과정 변경, 연극 장소 변경, 새움 프로젝트의 시작. 이러한 과정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으며 ‘교사 간의 이해도를 조절하는 과정’에 대하여 학생이, 그리고 각 주체가 이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선명하게 기억에 새겼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되는 ‘교사 간의 이해도를 조절하는 과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고 위해서 김철원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 일부를 가져왔다.



“교사들이 어떤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아요. 의사소통/결정과 민주적인 협의와 같은 것들은 다른 종류의 일들보다 굉장히 높은 차원을 요구합니다. 교사회가 거기로 가기 위한 진통들을 하고 있는 거죠, 지금. 굉장히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바라보는 관점들도 다르고 실현하고 싶은 것들도 다른 사람들이 모였어요.

초창기의 학교에서는 그 당시 대부분의 학교에서 발생됐던 반인권적인 일들, 독재적인 학교 운영방식과 같은 것들에 대하여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그와 상반되는 방식을 제안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부단히 교육과정을 만들고 굉장히 많은 노력들을 했죠. 근데 지금은 ‘다르게’가 아니라 ‘새롭게’로 가야 되는 거죠. 새로운 길은 진짜 차원 높은 역량을 요구하거든요. 시선의 높이가 달라요. 되게 어려운 지점에 와있는 거고, 그런 면에서 교사들이 의견과 관점이 다르고, 그런 부분들을 조율하고 합의하는 것들이 되게 어려워요.

우리가 쉽지 않은 과업 자체를 합의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지점을 학생들이 그저 '교사들이 의견이 달라, 교사들은 왜 이렇게 생각이 다 달라?'라고만 볼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거예요. 그걸 이제 문제로만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단히 그런 것들을 조율하고 조정하고 합의해내려고 하는 굉장히 끈질긴 과정들이 나름대로 저희한테는 있어요. 그런 부분도 좀 들여다 봐줬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내용을 간략히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교사들은 현재 의사소통/결정과 민주적인 협의와 같은 굉장히 높은 차원의 일을 향해 가고 있다. 교사들의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바라보는 관점과 이루고 싶은 것이 다양하다. 현재는 ‘다르게’가 아닌 ‘새롭게’로 가야 한다. 이것은 차원 높은 역량을 요구하고 시선의 높이가 다르다.


이러한 과정을 단순히 '의견과 생각이 다르다.'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교사가 아닌 다른 삼주체 구성원들이 교사회 내부에서의 끈질긴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가 지금껏 단순히 비판하였던, 혹은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교사의 이해도를 조절하는 과정’이 존재하였다. 이 모든 과정을 그저 ‘교사의 이해도를 조절하는 과정’이라 칭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든다.


이우학교를 재학하며, 삼주체 중 ‘학생’의 존립을 요구하는 활동은 접한 경우는 상당하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주체의 존립에 대하여 고민한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교사는 이우학교의 삼주체 중 하나로, 학교의 ‘공동 주인’이다. 개인적 판단이 내포된 이우학교 교사는, 단순히 수업을 진행하고 구성하는 존재는 아니다. 주체 중 하나로서 띄는 정체성과 권한이 있다. 김철원 선생님의 인터뷰에서, 선생님이 위와 같은 정체성과 권한을 언급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교사들에게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관점, 실현 욕구가 존재한다. 이것이 이우학교가 나아갈 수 있던 이유 중 하나이다. 그것들에 의해, 교사들의 자체적인 희생과 헌신도 동행된다.

또한, 이우학교는 설립 초기부터 삼주체가 강조되었다. 김철원 선생님의 인터뷰를 통하여 그

이유를 알아보았다.


“우리가 마주하는 교육적 과제나 과업, 이우학교의 비전과 같은 것들은 탁월한 영웅이나 특정 집단 만의 역량으로 그것을 해결하고 현실에서 구현해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이우의 교육 목표 등을 해결하고 실천해 나가기 위한 ‘공동 주인’으로서 필요합니다. 초기 세팅은 민주적인 학교 운영, 수직적 위계관계 속에서 운영되는 학교가 아닌 학교를 세팅했을 것입니다.”


각 주체의 정체성을 띤 존립은 학교의 운영으로서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어떠한 주체이든, 그 주체가 삼주체로서 그리고 학교의 공동 주인으로서 가지는 정체성과 존립에 대하여 끊임없이 주목해야 한다. 단발적 요소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입체적인 시각으로 다발적인 요소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단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요소 중에 하나로, ‘교사 간의 이해도를 조절하는 과정’을 제시한 것뿐이다. 이것 외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과정은 상당하다.

‘교사 간의 이해도를 조절하는 과정’과 각 삼주체의 존립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기를 감히 바라본다.

글을 마무리하며, 삼주체는 학교의 ‘공동 주인’과 같은 존재이다. 삼주체 중 하나인 교사들은, 현재 민주적인 협의와 같은 매우 차원 높은 과업을 실현시키려 하고 있다. 그 내부에서 여러 가지 진통이 존재한다.

또한, 현재는 이우학교 설립 초기의 ‘다르게’가 아닌 ‘새롭게’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것은 시선의 높이가 다르고 차원이 높은 역량을 요구한다. 교사들의 다양한 관점, 스펙트럼, 실현 욕구는 이우학교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이다.

이러한 부분으로 발생하는 ‘교사들의 이해도를 조절하는 과정’을 단순히 교사의 입장 차이라고 바라볼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처음에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기사를 쓰기가 두려워졌다. 학교에 대한 단발적인 요소만 접하였다 생각했고 학교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이우학교 앞에 어떤 수식어조차 붙이기 어려워졌다. 이런 학교에 대해서 내가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끌어안을 수 있는가?

그 어떤 존재도 모든 것을 끌어안고 생각할 수는 없다. 내가 쓴 이 기사도 어쩌면 학교에 대한 단발적 요소에 포함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떤가. 단발적 요소를 함부로 내뱉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움직여보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따름인데.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부터 멀어질 뿐이다. 내가 발버둥 쳐야 하는 것은 끌어안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애초에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은 없다. 혹여나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이 글을 읽었다면, 정말 자신이 벗어나야 할 것이 무엇인지 뚜렷해졌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고 나서 깊어진 인식이, 작은 행동의 변화를 불러오기를 바라며 마치겠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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