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자기 결정권, 변화의 시작

임신 중단은 죄가 아니다 / 김승연, 신예원

by 와이파이
국제 앰네스티의 로고는 철조망에 둘러싸인 촛불 모양이며 억압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류연대의 희망을 나타낸다.
하나둘씩 바뀌어가는 세상, 5년, 10년 후의 나를 위한 변화가 될 수도 있고,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같은 다른 대륙을 위한 변화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 ⑴ amnesty international -


지난 9월 1일, 텍사스주는 일명 ‘심장 박동법’이라고 불리는 임신 중단 금지법을 시행했다. 이는 초음파로 태아의 심장이 뛰는 게 감지되는 시점인 약 6주 이후로는 임신 중단을 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다. 하지만 임신 중단을 선택하는 여성의 85~90%는 이 시기가 지난 이후에 수술을 받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이 법은 성범죄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일 경우에도 임신 중단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큰 논란이 일고 있다.


법의 처벌 대상은 임신 중단을 한 여성과 그 과정에 도움 준 모두를 포함하는데, 이를 고발할 경우 텍사스주에서 최소 1만 달러(약 1,180만 원)의 현상금을 지급한다. 주 정부가 단속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고발하도록 넘겨 임신 중단 권리를 요구하는 이들이 법 시행을 막기 어렵게 한 것이다.

미국은 1970년대 초까지 대부분의 주에서 임산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임신 중단을 처벌했다. 이런 미국의 임신 중단 금지법을 바꾼 것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이다. 1969년, 성폭행으로 인해 원치 않게 임신한 여성이 임신 중단 수술을 거부받고 텍사스주 정부에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이윽고 1973년 1월 22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임신 중단을 처벌하는 법률이 미 수정헌법 14조에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임신 중단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각 주와 연방 법률들이 폐지될 수 있었다. 텍사스 임신 중단 금지법‘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미국 내에서는 이런 임신 중단 금지법에 대해 반대하는 서명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비판의 물결이 일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지난 2019년, 66년 만에 임신 중단 금지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본래 적용되었던 낙태 금지법은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 금지하며, 이를 위반했을 때 처벌하도록 한 현행법이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 금지법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했고,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했다.”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정부는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 실현을 최적화할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기존 모자보건법상 허용 사유에 더해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추가 규정함으로써 낙태죄 조항의 위헌적 상태를 제거하도록 했다.


그러나 2020년 10월 7일 법무부는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는 대신, 임신 중지 허용 요건을 확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안의 내용은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반영해 임신 14주 이내에는 일정한 사유나 상담 등 절차 요건 없이 임신한 여성 본인의 의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할 수 있고, 임신 15∼24주 이내에는 기존 모자보건법상 사유 및 헌법재판소 결정(헌법불합치·단순 위헌 의견)에서 명시한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 낙태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국민들은 형법 개정안이 형법상 ‘낙태죄’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국제 인권 규범과 기준, 양성평등정책위원회의 권고뿐만 아니라 시민 사회단체의 끝없는 목소리를 모두 무시한 단독적이고 퇴행적인 결정이라 비판했고, 국제앰네스티는 지난해 11월, ‘낙태죄의 완전 삭제’를 촉구하는 법률 의견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이후 낙태죄 조항 대체 입법이 지난 12월 31일까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 1월 1일 0시를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1953년에 제정되어 2020년 12월 31일까지 적용되었던 낙태 관련 규정을 완전히 폐지하였다.


임신 중단 금지법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여전히 개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무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제도적 변화를 비롯하여 이를 위해 내었던 목소리와 연대로 더 많은 나라에서 임신 중단의 비범죄화를 이루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때까지 다 같이 함께 나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⑴ amnesty international: 국제 엠네스티. 국제 비정부 기구로 "중대한 인권 학대를 종식 및 예방하며 권리를 침해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정의를 요구하고자 행동하고 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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