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우의 비진학입니다
2학년 인턴십 기간에 스타트업, 요리, 그리고 항상 제 관심사였던 연극에 관해 인턴십을 진행했어요. 그 과정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종횡무진’ 이라는 청소년 극 창작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연기를 배우게 되었어요. 거기서 배운 것들은 고1 한꿈 때 거친 연기 과정과는 정말 달랐어요.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채득하는 연기를 배웠고, 내가 어떤 움직임을 하려는 욕구가 최대치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진짜 그 욕망을 안고 하나의 몸짓을 해낼 수 있다는 것, 그 감각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아요. 자세히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 감각은 나에게 생경함을 주었고, 연기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하게 만든 것 같아요. 그 경험들이 너무 황홀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예종 연기과에서 연기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고3 초반에 충동적으로 본격적인 연기입시를 시작했죠. 선생님께 입시 레슨을 받았는데, 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연기랑 너무 달랐던 부분은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학대해야만 ‘발전’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또한 외모, 체중, 한 사람의 배우로서 보여야 하는 어떤 이미지-캐릭터를 갖춰야만 한다는 것. 저는 이 전의 연기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몸의 감각을 깨우칠 수 있다는 게 정말 황홀하게 다가왔고 그 감각들을 더 찾아내고 싶어서 연기를 선택하게 된 건데, 그 선생님은 “네가 정말 제대로 된 연기를 배우고 싶다면 우선은 1년간 입시연기를 열심히 익혀서 심사위원들의 눈에 들어라. 그러고 나서는 그 입시연기들을 전부 버려야 한다. 입시연기는 정말 대학에 가기 위한 연기다.”라는 말을 하셨어요. 분명 위로 아닌 위로, 동기부여를 해주시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붙으려면 다리를 찢어야 하고, 붙으려면 윗몸일으키기 100개쯤은 거뜬히 해내야 하고, 붙으려면 노래를 주구장창 불러서 목이 한 번쯤은 쉬어봐야 한다는-한도를 넘어야 한다는 말이 굉장히 스트레스로 다가왔어요. 그것이 계속 강압적으로 요구되었고 정말 자기학대를 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던 와중에 나민이에게서 당 활동 제의를 받았어요. 당 활동을 제의 받았을 때 사실 할 생각을 못했었어요. 그 때 입시준비로 너무 지쳐 할 마음이 없었음에도 “난 너무 하고 싶은데 입시 때문에 할 수가 없어”라는 핑계를 대버린 게 너무 죄책감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즈음에 선생님에게서 “네가 하는 연기에는 절실함이 없는 것 같아. 사실 너 이 때까지 연기 하나를 목표로 하고,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할 정도로 큰 결핍이 없었던 거 아니야? 왜 연기에 진정성이 없어”라는 말을 들었죠. 그 말을 듣고서 엄청 충격을 받았고 눈물을 흘렸던 것 같기도 해요. 매일매일 몸을 굴려가면서, 신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인내해가면서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왔는데, 듣고 보니까 내가 가장 최대의 실적을 올렸을 때가 입시 연기를 시작하기 전의 일주일이었던 거예요. 입시연기를 시작하고 나서를 떠올려보면 한순간도 내일이나 모레를 바라보는 동기가 된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한 2달 정도 열심히 다니다가 과감하게 레슨을 끊고, 당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당 활동을 하면서 고3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여성성, 남성성처럼 사회에서 규정하는 사회적 통념들과 같이 ‘고3’ 또한 고등학교 3학년이기에 규정되고 통념되는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고, 우리도 고3 개학식을 시작으로 온통 그 분위기에 휘말려버린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가지 확신이 들었던 건 그 곳에 있는 친구들 모두가 나처럼 불안해하고 있구나, 그리고 고3이라는 게 당연히 어떠해야 하는 학년이 아니라는 걸 다들 알고 있구나, 그래서 우리는 대안을 찾으려고 대화를 하고 담론을 하는 거구나, 라는 걸 깨달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순간, 불안감이 해소가 되었던 것 같고요. 꼭 19살 인생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지 않아도 괜찮겠다. 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동안은 느끼지 못했는데 초
내가 정말 진득한 공부를 할 수 있는, 소위 말하는 수능성적, 내신 성적이 1등급이 되어야 갈 수 있는 학교잖아요. 그런데 내가 그거 하나만을 바라보기에는, 다양한 것을 할 수 있는 내 삶을 소진시키는 게 너무 아깝다 생각했어요. 대부분의 대학교들이 암기위주의 학습을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거 하기 싫었어요. 고3이 돼서야 그런 거 말고 주체적으로 깨우칠 수 있다는 걸 알았는데, 그렇게 깨우치고 나서 이때까지 12년 동안 공부했던 세월이 너무 아까워 진거예요. 더 이상은 다른 사람이 쥐어주는 정보만을 받아들이고만 싶지 않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학이라는 선택지를 지워나갔던 거 같아요.
고2때 스타트업 소모임 할 때도 그랬지만, 자유롭게 배우고 싶은 것을 주체적으로 배우는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트레바리’라는 지식공유소모임을 알게 되었는데, 그런 데가 되게 많더라고요. 그밖에도 만약에 내가 학문 하나만을 전공하고 싶다면 길을 대학이외에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고려하지 않았던 거 같았던 것 같아요.
선배들이나 아니면 지인 분들에게 들었던 학교 분위기도 한 몫을 했던 거 같은데, 대학 군기문화가 다른 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별로 없다는 곳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선후배간 군기문화, 위계질서가 필요하다.”라는 설문조사에 대해서 ‘그렇다’라고 답한 사람이 50%가 넘어간다는 결과를 봤어요. 그걸 보고 좀 충격을 받았던 거 같아요.
내가 가고 싶은 학교들은 위계질서가 없을 수가 없는 분위기인 거 같고 경쟁률이 엄청나고... 그것 말고 되게 다채로운 활동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1년을 입시준비에 찌들어 지내려니까 막막하고 싫었어요.
고3이 되어서 복도를 지나가다가 친구들이 물어요, “너 어떻게 하고 있어?”,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으면 “나 어디대학교 어느 과 준비하고 있어”라고 하고 어떤 친구는 “아직 준비된 게 없는 거 같아. 아직 잘 모르겠어."라는 대답을 하는데, 전자에서 가고자 하는 길이 되게 분명하게 떨어지면 “아 그렇구나”하고 마는데 후자의 질문이 학기 초반에 굉장히 많이 따라 붙더라고요. “아직 잘 모르겠어. 고민 중이야...”라고 하면, “그렇구나”가 아니라 굳이 “왜?”하고 묻는 것. 그게 제일 많이 힘들었던 거 같아요. 지금은 그런 분위기 아니고, 서로를 존중해주는 분위기였던 거 같지만, 처음에 비진학을 이야기했을 때, 뭔가 내가 더 설명을 해야 할 거 같은? 사실 아무계획이 없다고 해도 아무 계획을 가지지 않은 나는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많은 고민과정이 있었을 텐데, 음... 분명하게 떨어지는 것을 제시하는 친구는 그냥 그 답을 듣고 마는데,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안부 묻듯이 하는, 가볍게 던지는 질문인데, 나는 그 질문에 대해서 내가 고민해왔던 이 긴 과정에 대해 온 힘을 다해서 설명해야할 거 같은? 그런 의무감을 가져버린 거 같아서, 그게 되게 불편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비진학이라는 말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요. 진학이기에 붙는 말이니깐, 상대적인 거니까요, 그래서 다른 말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 거 같아요.
학기 초에 그 연기 시작하면서, 또 하나 시작했던 것이 블로그를 보다가, 또 한예종 검색하다가 한예종 극작과 과외를 하시는 분 블로그를 우연하게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분이 쓰시는 글이라던가 품으신 생각이 너무너무 마음이 들어가지고, 함께 과외를 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내가지고, 그 학기 초부터 1주일에 한 번씩 스카이프로 수업하고 있어요. 수업하고 있는 글쓰기 반에서는 22살의 대학을 갔다가 대학의 분위기가 맞지 않아 자퇴를 하고 예종의 극작과를 준비하고 있는 언니도 있고, 대학을 갔는데 휴학만 3년하고 24, 25의 나이에 유학을 생각하고 있는 언니들도 있더라고요. 저가 그 언니들을 알기 전엔, 24, 25의 숫자를 되게 늦은 나이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나보다 몇 년을 오래 산 언니들이 최선을 다해서 가고 싶은 대학이라던가, 목표를 향해 준비하고 있는 걸보면서, 전혀 늦은 거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떤 걸 준비하는 시기에 뒤쳐졌다고 해서 주눅들 필요 전혀 없고 오히려 매순간 현재를 정말 치열하게 살 수 있는 그런 것이 정말 멋지고 대단하다는 생각. 그리고 생각보다 나이 한 살, 한 살 먹는 다는 것이 별거 아닌 거구나. 그냥 나는 나에 충실하면 되는 거구나 라는 것을 느꼈던 거 같아요.
저는 표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무언가에 대한 냉소만으로는 절대 그 무엇도 바꿀 수 없음을 항상 머리에 새기면서 다정이나 친절을 내 안에서 큰 가치로 여기는 것 같아요. 포옹하는 일은 절대 촌스러운 것이 아니기에, 사랑을 오래도록 꼭 붙잡고 싶은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오래오래 도전하고, 놀이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삶을 꿈꿔요. 이런 것들이 제가 꿈꾸는 몽글몽글한 이상, 꿈. 그런 것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