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우의 비진학입니다 - 4
고3이 되어도 여전히 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1,2학년 때 팽팽하게 고민하고 긴장하고 마음쓰던 것들에서 많이 느긋해진 것 같기도 하고.
요즈음 고민에 대한 나름의 어떤 확신을 발견하면서 살고 있어요. 불안함에 대한 확신, 스트레스에 대한 확신, 나에 대한 믿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인턴십을 하면서 대학에 대한 집착을 놓았어요. 인턴십을 시작할 때, '대학 입시 거부로 삶을 바꾼 투명가방끈의 모임' 이라는 강의를 들었는데, 강의에서 '대학 입시 교육의 허구성' 과 '대학 외의 교육 공동체의 희망' 이라는 내용을 들으면서 퍼뜩, 했어요. 대학에 내가 기대하던 건 어떤 이미지(캠퍼스, 교수님, 과제, C.C 같은 것들)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중학교 때 너무 지쳤던 입시 경쟁, 그 과열의 분위기가 떠올랐어요. 강의를 듣고 나오면서, 대학에 대한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정리가 되었던 것 같아요. 내 열아홉의 1년은, 대학 진학을 위한, 그토록 힘들었던 중학교때의 3년을 또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결심했어요. 내가 필연적으로 배우고 싶은 것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안 갈래." 생각하니 후련했어요.
저한테는 그냥 당연한 어떤 거예요. 저를 이루는 한 부분. 특별히 설명할 것도, 내세울 것도, 숨길 것도 없는. 아, 최근에는 '어느 대 갈거야? 수시? 과는 어디 넣었어?' 라는 질문에 '대학 안 갈거예요." 라고 대답했는데, 분위기가 엄청 싸해졌어요. 아마도 이런 눈초리, 우려의 눈초리, 뭐라고 해야 될지 몰라 당황한 눈초리, 이런 것들을 많이 받겠죠. 하지만 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으며 살 것 같아요.
종종 내가 너무 단편적인 목표에 아주 많은 걸 건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 자꾸만 쉽게 좌절을 경험할까요. 왜 자꾸만 쉽게 포기하고 절망하고 무기력해지고는 할까요. 중간고사에서 깎인 점수는 왜 그렇게 절망적이며, 성적표를 보면 왜 그렇게 침잠하고는 할까요. 넘어지는 건 분명 필요해요. 하지만 자꾸 발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건 아주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성적과 대학과 여타 그런 것들은 왜 자꾸만 우리의 발을 걸까요? 왜 자꾸 걸려 넘어져서 아프게 만들까요? 우리의 목표가 왜 아주 짤막하게 존재하게 만드는 걸까요. 왜 우리가 삶 전체에 대한 어떤 풍경이나 생각을 하려고 할 때면 '헛소리 말고 공부나 해.' 라는 식으로 우리 삶의 확장의 기회를 근절할까요. 우리는 이때까지 짤막한 목표와,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는 장애물 앞에서 얼마나 많은 기회를 근절 당했을까요.
내가 삶에서 느끼고자 하는 것. 나의 삶으로 삼고자 하는 풍경들. 그것들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싶어요. 멀고 긴 것들, 어슴푸레하고 명사형이 아닌 것들. 오로지 나의 상상과 감각으로 일구는 내 삶. 대학 안 가면 망한다는 거, 대체 누구의 생각이냐는 거예요. 왜 자꾸 발을 거냐는 거예요, 내 살아감에.
열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열아홉을 열아홉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자꾸 너는 열아홉이 아니라고 그런데도 나는 열아홉이니 열아홉답게 지내라는 말에 코웃음 치며 넘깁니다. 열아홉은 열아홉이지 열아홉이라는 무엇이 아니기에 저는 열아홉으로 살 것이고 그것은 열아홉스럽거나 열아홉답거나 열아홉같거나 한 것이 아니므로 저는 열아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