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방랑자의 이야기

나는 이우의 비진학입니다 - 3

by 와이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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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진학을 고민하고, 결정하게 된 이유나 계기가 무엇인가요?


사실 내가 ‘비진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분명 진학하려 하고 있으니. 학문을 더 나아가 배우고 싶은 것도 맞고 상급 학교를 생각하고 있는 것도 맞으니 나는 ‘진학’하는 사람이다. 다만, 한국의 숫자만 남은 대학은 내겐 조금 숨 막힐 뿐이다. 그래서 지금은 외국어를 배우고 있다. 내가 배우고자 하는 것을 좀 더 제대로 배워줄 것만 같은 곳으로 가기 위해.



고3이 된 다음 무엇을 하며 살아가나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나요?


작년보다 좀 더 큰 나를 보며 살아간다. 고3이라거나 열아홉이라는 것은 사실 이제는 별 상관없이 느껴진다. 친구들도 그런 것 같다. 오히려 또래가 아닌 사람들이 지레 놀라는 기분이랄까? 특별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에 대해선 가끔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열아홉이어서 졸업한다가 아니라, 이젠 졸업할 만큼 배웠음을 느껴서 졸업해야 겠다. 가 맞겠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늘 고민한다. 늘 고민했었지. 십대가 되고 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랬다. 어떤 사람으로 어떤 삶을 살까? 숫자의 획이 하나 더 그어지거나 곡선이 하나 더 생기는 동안 그 고민을 어떻게 움직여볼까 라는 것이 변한 것일 뿐이었다. 글자를 움직임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좀 더 생겨가는 것 같아서 기뻤다. 좀 더 나에게 집중해보려 하는 것 같다.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좀 더 활기차게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요리를 좀 더 많이 하게 되었고 사람을 좀 더 많이 안게 되었고 친구들에게 좀 더 말을 걸게 되었고. 그 와중에 글을 좀 더 아득히 쓰게 되었다.



‘비진학’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혹은 다른 사람의 인식이 버거운 적 있었나요?


위에서 얘기 한 것 같다. 사실 나에게 열아홉이라거나 고3이라는 단어를 덧씌우는 것에 크게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나는 늘 여고생이라거나 키가 작다거나 외동이라거나 머리가 곱슬이란 이유로 무언가에 덧 씌워 졌으니까. 비대입이라든가 고3도 그와 마찬가지 인 것이다. 다만 분명 그러한 덧 씌워지는 현상들을 바꿔야겠다고는 생각해서 지금은 그에 대해 친구들과 책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버겁다’기보다 ‘바꿔야겠다’라는 의지가 더 샘솟는 달까? 또 실제로 내게 그런 말을 했던 사람들은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에게도 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서로 모르니 그 사람의 단어들만 들리는 것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같은 학년의 친구와 단 둘이 오랜만에 대화함에 있어서도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이 학과 간다면서? 왜 관심 갖게 됐어?”라는 덧씌워진 말을 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더 깊이 들어가기는 분명 더 어려웠으니까. 그 단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을 던지기 전에 그 단어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를 제대로 마주하고 변형시키는 것을 먼저로 치고 싶다.



어떤 삶을 살아갈지 고민되는 사람들에게, 입시나 비진학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나 말들이 있을까요?


단어가 아닌 그 사람을 보고 싶다. 누구나 어떤 삶을 살아갈지를 고민한다. 그러나 약간의 방향이 다를 뿐이고 그 길이 잘 닦여있거나 아직 오솔길이거나 일 뿐이다. 단어를 잠시 떼어놓고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 사람은 어떤 감촉과 멜로디를 좋아하는지, 영화는 뭘 좋아하는 지에서 출발하고 싶다. 사실 대학도, 입시도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다고 느낄 때가 많지만 사실 나의 일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분명 잡아주어야 한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열여덟에서 열아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의 어떤 점이 오늘의 나의 어떤 점을 생성하고 기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잡히지 않게 멀게 느껴지는 미래가 불안해서 어떻게든 그 방향으로 뛰어가려 할 때마다 가장 좋아하는 체조를 하곤 하는데, 그건 내 몸이 여전히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실 요즘 들어 더 생각하는 건데, 내가 당장 입시에 뛰어들지 않았고, 그 애는 지금 입시를 하고 있다고 해서 크게 바뀐 것은 없는 것 같다. 나도 바쁘고 그 애도 바빴다. 그러나 분명 그 애는 여전히 입시 전에 좋아하던 것을 좋아하고 있었고, 나도 여전히 작년의 나의 어떤 꿈을 꼭 쥐고 있었다. 그래서 그 애와 단 둘이 있다 해서 어둡거나 답답한 것만 얘기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시시콜콜하고 헛웃음 나오는 이야기에서 즐거워하고 미소 짓고 애정한다.



마지막으로 ‘고3’이 아닌, 나이가 아닌 말로 당신을 표현한다면 어떤 말을 고르시겠어요?


‘고3’이 아닌 다른 말이 나를 차지한다 해도 결국 그 말이 내 속에서 권력을 거머쥘 것 같다. 나는 내가 여러 단어를 가지고 있고, 그 단어들도 어느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만약 누군가 나에 대해 궁금해 한다면 “아, 이건 지금의 저에 대한 건데요, 전 계속 바뀌고.. 또, 생명은 분명 변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계속 변해갈 텐데 그래도 들어주시겠어요..?”하고 먼저 말을 늘어뜨려 놓을 것 같다. 가끔은 열아홉이라 하지 않고 ‘글쓰는 방랑자’를 꿈꾼다고 말하곤 한다. 그게 요즘의 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