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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파이 Jul 10. 2023

진짜 교육의 의미와 방향

수능 킬러문제 배제 사태를 통해 우리가 바라봐야하는 것들 / 장윤하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 장관에게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인, 배경지식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문제를 수능에서 내지 말라’ 고 했어요.  이에 대해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과 교육부는 윤 대통령의 말이 변별력을 갖추되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내용에서 수능에서 빼라는 얘기지, 난이도를 쉽게 하라는 것은 아니라며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교육계에서는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의 배제 지시로 인해 윤 대통령의 발언이 수능 난이도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교육부와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의 사교육비 규모는 26조 원으로 2015년 후 약 7년 동안 약 2배 가까이 증가하고 있고 코로나19의 피해가 사회 전반을 휘둘렀던 2020년부터 쭉 급증하고 있으며, 결국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있어요. 


 삼성금융네트워크인 '모니모'에 따르면 자사 카드를 통해 결제된 입시와 보스학원의 월 평균 결제액을 살펴보니 50대가 57만원으로 제일 높게 집계됐습니다. 1인당 신용카드 보유량이 4.4장이라는 점에서 실제 학부모들이 여러 장의 카드로 학원비를 결제하는 정황을 고려해보았을 때에 실제 월 평균 학원비는 적어도 100만원에서 200만원에 달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더불어 중국의 위와인구연구소는 우리나라에서 자녀를 성인(만 18세)까지 키우는 데까지 소모되는 비용이 1인당 GDP의 7.79배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고 해요.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요? 서울 거주 20대와 30대의 80% 이상은 자녀를 ‘경제적 부담’이라고 답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한 우리나라 교육 상황으로 인해 높은 사교육비와 같은 문제 상황이 발생하고 있고 이러한 문제들은 교육을 넘어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나 저출산으로 이어지는 등 또 다른 피해나 현상을 유발하기도 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윤 대통령의 사교육비 감소를 위한 시도의 ‘목적’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내린 지시와 교육부의 발표에는 분명 문제와 허점이 있습니다. 함께 이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첫째, 올바른 절차를 거쳐온 결정과 발표라고 할 수 있는가?                     

제34조의5(대학입학 전형계획의 공표) 

① 교육부장관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항을 정하거나 변경할 경우에는 해당 입학연도의 4년 전 학년도가 개시되는 날 전까지 공표하여야 한다. 다만, 관계 법령의 제정·개정·폐지 또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제1호에 따른 재난으로 인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신설 2019. 4. 23., 2020. 10. 20.>

1. 제34조제3항에 따라 교육부장관이 시행하는 시험의 기본방향 및 과목, 평가방법, 출제형식

2. 해당 입학연도에 학생이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총 횟수

3. 그 밖에 대학 입학과 관련한 것으로서 교육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② 교육부장관은 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항을 정하거나 변경하려는 경우 공청회 및 정보통신망 등을 통하여 국민과 관계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야 한다. <신설 2019. 4. 23.>


위에 수록한 내용은 바로 고등교육법의 일부입니다. (해당 입학연도의 4년 전 학년도가 개시되는 날 전까지 공표하여야 한다.) 부분을 함께 살펴볼까요? 

교육부 장관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시험의 기본 방향 및 과목, 평가 방법, 출제형식에 관한 사항을 정하거나 변경할 경우에는 해당 입학 연도의 4년 전 학년도가 개시되는 날 전까지 공표해야 합니다. 교육은 모든 사회에서 중요한 것들 중 하나이지만, 특히나 대학입시에 대한 변화는 사회적으로 큰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한 결정,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들의 적응을 위한 것입니다. 윤 대통령의 지시는 엄연히 시험의 기본 방향이나 출제 형식에 큰 영향을 주는 발언입니다. 이를 충분한 기간을 두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 이번 2024 수능에도 반영되게 하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매우 부적절합니다.



둘째, 정말 수능에서의 문제를 바꾼다고 사교육에 대한 문제가 해소될까? 

 수능에서 킬러문항을 배제한다고 해서 사교육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고, 불평등이 없어질까요? 일각에서는 킬러문항이 배제되면 준킬러문항이 늘어날 것이라 별 소용이 없을 거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이러한 추상적이고 급한 혼란으로 인해 근 몇 년간은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셋째, 사교육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공교육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사람들이 앞서 알아본 것처럼 정말 많은 돈을 사교육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 이유로는 수능의 킬러문항보다는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 전반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은 공교육에서 수업을 따라오기 힘든 아이가 잘 따라갈 수 있도록 ‘보완’하는 목적 보다는 더 높은 등급을 받거나 성적을 받아 상위 학교로 잘 올라가기 위함의 맥락이 더 강합니다. 즉, 상대평가라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보편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공교육을 넘어 자신과 소수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정보를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러한 타인을 바라보며 남들도 아는 그 정보를 나도 알고자 사교육에 의지하기도 하죠.

 이렇게 문제의 본질은 결국 뒤틀려진 교육시스템 때문인데, 수능이라는 거대한 시험의 구성을 변화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을까요?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는 교육을 재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의 사전적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한 번 이 정의로 우리 공교육을 다시 생각해 볼까요?   


교육(敎育):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


 사전 속의 교육과 우리가 목격해 온 교육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지식과 기술을 배운 적은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우리의 교육은 오히려 인격을 파괴하고 억압합니다. 학생들은 교도소 같은 구조의 학교에서 도축장에 있는 돼지처럼 등급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러한 억압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교육의 체제가 변하지 않는다면 수능의 킬러문항 개수가 변하더라도 결국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을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수능에서 킬러문항이 몇 개 나오냐가 아니라, 수능의 결과로 한 사람의 생애 전반에 큰 영향을 준다는 불안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교육은 상대를 밟지 않고도 함께 할 수 있는 형태의 배움을 마련해주고,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도 현재에 대해 집중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말 인격을 길러줄 수 있지 않을까요?


 2학년 생태 교과 중 사회적경제라는 수업을 통해 MTA의 팀 코치분과 이야기 나누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 분께서는 교육이 무엇이라고 해석하시냐는 질문에 교육은 두 가지 언어로 나눌 수 있다고 답하셨는데요. Educate (교육)은 Teaching(알려주는 것)과 Coaching(끄집어내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이에요. 우리 사회는 지식 전달에 너무 치우친 교육에 처해있고, 우리의 인격과 자아를 찾고 끄집어낼 수 있는 시간은 결여되어있습니다. Coaching의 결여는 다시 Teaching의 붕괴를 불러오고 있고요. 

정말 좋은 교육이라는 건 무엇일까요. 우리는 대학입시를,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이우학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우리 모두가 막연히 불안해하기보다는 이를 기회로 삼아 교육과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존재만으로 소중하니까요. 


“ 사회가 과거에 비해 얼마나 좋아졌는 지 주목하는 시선들이 많다. 
그만큼 여전히 심각한 문제들이 왜 사라지지 않는지를 다뤄야 한다. 
사회 구조를 제대로 바라보는 개인이 모여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때 
그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많은 문제를 빨리 푸는 경쟁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사람은 숫자로 평가받는다.
정작 사람이 그 숫자 때문에 괴로워하고 아파한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학벌주의는 과시와 멸시의 잔인한 형태로 바뀌었고, 
대학 순위를매기며 과감하게 차별하고 무덤덤하게 차별받는다. 
명성 높은 대학에 진학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안정적으로 살겠다는 바람이 왜 문제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전투적인 목표를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하며 
세상의 불평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회는 곤란하다.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열악한 노동자의 처우를 ‘공부를 열심히 안 한 결과’로 
여기는 사람이 대다수인 공동체는 어떨까? 
열심히 공부했기에 차별에 찬성한다는 이들이 정치인이 되고 교육자가 된다면, 
사회 양극화는 그저 별 수 없는 세상의 이치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러면 불평등의 크기가 줄어들 리 없다. “ 

-오현호 ‘지금 여기, 무탈한가요?’

참고 

과학 같은 국어 문제 없앤다… 수능 꼬아서 안 내기로

'킬러 문항'이 뭐길래... 학원비에만 한 달 57만 원? "실제 200만 원 이상 쓴다" 

기사 피드백 및 글쓴이와의 소통창구 

https://docs.google.com/forms/d/1KC3ExVLAxhT67smlZBsN0FiYqVKb_GbBLNEpezvsWLc/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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