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머니>를 읽고

책 <어머니> : 빠벨의 동지들 모두 그를 어머니라 불렀다 2부

by 와이파이


막심 고리끼 책의 구절을 통해 본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삶




#2 아들을 지키기 위해_배은심 여사


한 여자이자 어머니로서의 그녀에게는 항상 아들의 육체가 영혼을 일깨워주는 것 이상으로 소중한 것이었다. 이런 생기 없는 눈들이 아들의 얼굴을 기어오르고 아들의 가슴, 어깨, 팔뚝을 사정없이 더듬고, 뜨거운 살가죽을 문대는 것을 보면, 마치 그들이 예전에 비난했어야만 했고 자기 자신들로부터 떼어놓아야만 했던 젊은 삶에 대한 되살아나는 탐욕과 질투에 눈이 멀어 반은 죽어가는 사람들의 굳어 버린 혈관과 늙어빠진 근육 속에서 그나마 흐르는 몇 방울의 피에 불을 지펴 불길을 올리고 끝내는 뜨겁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죽기 아니면 살기고 매달리고 있지 않은가 하는 해괴망측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빠벨의 재판장에서 유형을 구형하는 판사를 보며


이소선 여사 이후 민주화유가족협의회를 이끈, 아들의 뜻을 지키려 했던 또 다른 어머니가 있다. 바로 87년 6월 항쟁의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다. 이한열 열사가 대학진학을 위해 고향인 광주에서 서울로 떠나고 어머니는 이한열 열사에게 시위에 나가도 앞이 아닌 뒤에서 있으라 당부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이한열 열사는 시위를 맨 앞에서 이끌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끝내 세상을 떠난다. 이한열 열사의 죽음 이후,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이한열 열사의 흔적을 되짚었다.


mosaxz4RJD.png?type=w720 이한열 열사와 이소선 여사의 사진


“우리 한열이가 중2때 5.18 광주 민중 항쟁이 터졌어요. 사방에서 총소리가 나니까 밖에 못나가게 하고 무서울까 봐 이불로 꼭 덮어줬지. 그런데 나중에 보니 한열이는 그게 부끄러웠던 거에요. 시내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숨고만 있었던 게 미안했던 거지. 대학 입학해서 진실을 알아버리고는 부끄럽다고 글을 써 놨더라고.”


배은심 여사는 이한열 열사의 일기를 보며 세상 이야기를 이한열 열사와 함께 나눴더라면 이처럼 죽었을까 후회했다. 마치 책 <어머니>에서 재판장에 선 아들을 보며 어머니 세대가 예전에 비난했어야만 했고 떼어놓았어만 했던 역사를 후회하는 것처럼 말이다. 배은심 여사는 이한열 열사의 죽음 이후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민주화유가족협의회에 가입한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 이소선, 박종철 열사의 아버님 박정기, 인혁당 사건 유가족과 함께 민주화유가족협의회에서 ‘억울하게’ 죽은 민주화 열사들의 죽음의 진실을 정부에 요구한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배은심 여사는 국회 앞에서 422일간의 농성을 하고, 이한열 열사는 2001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는다.


그렇게 시작된 협의회 활동은 다른 죽음들과 약자를 향한 연대로 이어졌다. 백골단에 의해 맞아 숨진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 열사, 군 의문사 죽음, 용산참사 피해자들의 죽음에 달려가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또한 경찰의 물대포로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씨를 만나 위로한다. 또한 2017년 1월 14일 범국민행동에서 배은심 여사는 “세월호 가족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며 왔다”며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고 국회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심지어 얼굴엔 웃음을 띠기까지 하면서 감옥으로 끌려가는 이 정직하고 착실한 젊은이들을 보면서 어머니는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그녀의 마음에선 그들에 대한 자애로운 어머니의 사랑이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공장에서 끌려가는 다른 노동자를 보며



빠벨의 어머니가 아들과 닮은 노동자들을 보며 어머니의 사랑으로 보듬어주듯, 배은심 여사는 30년동안 이한열 열사처럼 국가폭력으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곁에 함께 있었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슬픔을 평생동안 짊어지고 살아가는 배은심 여사는, 그 슬픔으로 또 다른 가족들의 슬픔을 보듬어주며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3 어머니에서 한 인간으로


책 <어머니>는 빠벨의 어머니가 남편의 폭력을 견뎌내는 아내에서 아들을 지키려는 어머니로, 나아가 아들을 통해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한 인간이자 활동가로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어머닌 도대체 자그마한 기쁨이라도 느끼며 살아보셨어요? 무슨 기억할 만한 좋은 일이라도 있으시냐고요?]그 말을 들은 그녀는 뭔가 새롭고 이해할 수 없는, 서글프면서도 기쁜 것을 느꼈는지 침통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자 그녀의 아픈 가슴은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다. 자기 자신과 자기 삶에 대한 그런 말들은 생전 처음 듣는 것이어서 그런지 그녀의 가슴속에서 오래 전에 잠들어 분명하지 않은 생각들을 일깨워, 삶에 대한 꺼져버린 어렴풋한 불만을 불러 일으켰다. - 빠벨이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노동운동을 설명하는 장면

어머니의 마음 안에선 빠벨의 운명 앞에 닥친 위험과 그에 대한 자부심이 한데 뒤섞였다.



빠벨이 정부로부터 탄압받는 노동운동에 뛰어들겠다 말하자 어머니의 마음은 빠벨의 운명 앞에 닥친 위험과 빠벨에 대한 자부심으로 뒤섞인 감정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어머니의 삶 속에서 억눌러왔던 불만들이 정당하지 않았음을 감각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이 첫 경험을 아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은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때 여전히 그녀의 앞에는 누런 얼굴이 장교가 떠올랐다. 잔뜩 의혹을 품은 악랄해 뵈는 얼굴이었다. 얼굴에선 까만 콧수염이 당혹스러운 듯 움직였고 위아래로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진 입술 사이에서는 악다문 허연 이빨이 번뜩였다. 어머니의 가슴속에선 희열이 마치 새처럼 노래를 불렀고 두 눈썹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능숙하게 음식을 떠주면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 더 있어요, 더들 들어요...]

- 빠벨 대신 공장에서 음식을 나눠주는 것으로 위장해 전단을 나눠주는 장면



아들의 구속 이후 아들의 역할을 대신 하게 된 어머니는 노동자들에게 [더 있어요, 더들 들어요]라고 이야기한다. 아들 빠벨을 도왔다는 마음과 함께 어머니는 자신 또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에 일조하고 있다는 희열을 동시에 느낀다. 이 장면부터 어머니가 아들을 지키려는 모성애에서 한 인간이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깨어나는 과정으로 뒤바뀐다.



잊었던 기도 소리가 되살아나 새로운 믿음에 불을 지피자, 어머니는 불꽃이 튀듯, 가슴속에서 그것들을 끄집어내 던졌다. [ 진리와 이성의 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이 모두에게 사랑을 가져다 줄 것이오. 그리고 새로운 하늘로 모든 사물을 덮어 주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모든 사물을 환히 비출 것입니다. 그러면 애들의 전세계에 대한 사랑으로 휩싸인, 그런 새로운 삶이 창조될 것입니다. 누가 과연 이 사랑의 불길을 끌 수 있겠소, 그게 누구란 말이오? 어떤 힘이 이보다 더 강하겠어요? 누가 감히 이 물결을 막아내겠어요? 지구가 새로이 태어나고 생명들이, 모든 생명들이 승리를 구가하는...]


마침내, 어머니는 아들을 통해 이끌려진 노동운동에서 억압받았던 자신의 삶을 ‘부조리하다’고 새롭게 정의하며 진리와 이성을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말한다. 가슴 속에 품고 살았던 인간의 불꽃을 끄집어낸다. 그녀는 아들을 지키려 했던 어머니에서, 혁명을 이끌어낸 한 인간으로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어머니의 노동운동은 아들 빠벨을 지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아들을 지키고자 하는 모성애로만 설명할 수 없는 과정이다. 책 <어머니>는 빠벨이라는 한 인간을 통해 자신의 삶 속 불꽃을 찾아나간 한 인간 닐프로냐의 이야기로 해석되어야 맞을 것이다. 남편에게 맞고 살았던 비참했던 과거를 지나 헌병에게 맞으면서도 정의를 외치는 닐프로냐는 스스로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녀의 영혼은 새롭게 태어났다.


mosaERmri9.jpeg?type=w1100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mosanH4cBS.jpeg?type=w1100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삶 또한 그렇다.


이소선 여사는 “내가 태일이 엄마라서 노동운동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적은 없다. 태일이 죽음 이후에야 어린 노동자들이 얼마나 참혹한 환경에서 일하는지 알았다.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오는 걸 보려고 싸우다 세월이 지났다.”고 말한다.


배은심 여사는 “평등을 외치다 죽었어요, 우리 한열이가. 평등이라는 것은 모두 같이 어울려 사는 거 아닙니까. 그런 세상이 민주주의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아들의 죽음 이후 아들과 닮은 또 다른 약자들과 연대하고 세상을 위해 싸운 이들의 삶은 책 속 닐프로냐의 삶과 닮아있다. 자신의 삶 속 불꽃을 찾아가고 다른 이들의 삶에 불꽃을 찾아준 이소선, 배은심의 역사이다. 닐프로냐, 이소선 여사, 배은심 여사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희생자에서 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능동적이고 당당한 인간으로, 당대 사회적 불의에 용감히 맞서 싸우는 인간으로 변모한다.



"오늘 내가 자신을 모욕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 모욕에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해서 그냥 웃고 넘겨 버린다면, 그 모욕을 가한 인간은 나에게서 힘을 시험해 보고, 내일은 다른 사람의 껍질을 벗기러 들 것입니다."
-책 <어머니> 닐프로냐의 말



@이육샛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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