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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파이 Oct 05. 2023

15분 도시, 과연 한국에도 적합할까?

임금비

 작년 11월 10일, 오영훈 제주도정은 15분 제주 기본구상 및 시범지구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발표했다. 약 5억 원이 투입되는 이 용역에서는 제주형 15분 도시 개념 및 비전제시, 제주형 15분 도시 기본구상, 제주특별자치도 생활권계획 가이드라인 수립 등이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영훈 제주도정은 같은 날 제주의 장기 발전 방향을 설정하는 도시기본계획(안)을 발표하며 제주의 생활권을 5대 권역생활권(제주시 동부, 제주시 서부, 서귀포시 도심, 동부, 서부)으로 설정하고, 도보 또는 자전거를 이용하여 공공 서비스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15분 도시 추진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였다고 밝혔다.

  새롭게 이루어지는 도시계획. 응원의 목소리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어떤 부분이 우려를 만드는 것일까? 이에 대해 다루기에 앞서, 15분 도시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15분 도시'란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의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시간과 관련된 도시이론을 연구하며 낸 명칭의 도시 이론이다. 사람들이 도보나 자전거와 같은 ‘소프트 모빌리티'를 이용해 15분 내에 문화, 의료, 교육, 복지, 여가, 업무까지 15분 이내에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으로서, 인간과 시공간, 삶의 질, 그리고 사회적 관계가 긴밀히 연결되어 선순환을 이루는 구조를 추구한다. 이러한 15분 도시는 2020년 1월, 프랑스 파리 시장 선거가 열릴 당시, 재선을 노리는 안 이달고 후보가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와의 만남을 계기로 15분 도시를 자신의 정책 공약으로 내세우게 되며 15분 도시가 프랑스를 넘어서, 유럽까지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파리 15분 도시의 개념

자료: 파리시청, 2021 생태교통 정책카페 발표자료 ‘15분 도시’


   15분 도시는 세 가지 개념이 융합되어 만들어졌다. 크노어바니즘(crono urbanism), 크로노토피아(cronotopia), 토모필리아(tonophilia)가 바로 그 세 가지 개념이다. 각각 도시를 단순히 공간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시공간'으로 봄으로서 건축 및 환경 조성 시 거주자의 이동 시간을 고려 대상으로 두자는 것을, 낮에는 교실로, 밤에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시간의 변화에 따라 공간의 용도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장소에 대한 애착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을 가진 15분 도시의 핵심 개념은 다시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도보 또는 자전거로 15분 내 접근할 수 있도록 도시공간을 조성하고, 둘째, 도보와 자전거를 이용하고, 도시 내 공원 등 녹지공간을 확보하여 도시의 탄소배출을 줄이고 친환경의 녹색도시를 만드는 것이 두 핵심 개념이다.


  이 두 가지 핵심 개념을 통해 15분 도시는 ‘지속가능한 친환경적인 도시'에 가까워지고자 한다. 지금까지 인적・물적 흐름의 집결로 인해 발생한 도시화는 기후변화에 대단한 영향을 미쳐왔는데, 특히 업무지구와 거주지구를 분리한 탓에 더 많은 차량을 사용하게 되며 도시 열섬 현상을 가속화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성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따라 15분 도시는 이동성이 아니라, 근접성에 중점을 두며 도로에 차가 줄어들게 하고자 한다. 이는 태양 반사도가 높은 콘크리트 도로를 줄이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며, 자동차를 위한 공간의 축소는 곧 도심 속 녹지대의 확장관 연결될 수 있다. 결국 이는 탄소배출량 감소로 이루어지며 보다 탄소중립적이고 환경적인 도시 공간을 만들 수 있게 한다. 


  더불어 15분 도시는 도시의 공공 공간인 도로와 광장, 학교를 주민을 위한 삶의 공간으로 전환함으로써, 도로는 보행자와 자전거 중심의 조용한 거리고, 주차장은 자연과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바꾸고, 아이들을 위한 안전한 길을 조성하며 생활 활력을 높이고자 한다. 더불어 학교를 방과 후와 주말의 경우 주민을 위한 활동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등 시간에 따라 특정 공간의 용도를 달리하여, 도시공간의 사회적 가치를 다시 회복시키고자 한다. 또한 일상에서 문화를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문화 플랫폼을 구축하고, 다양한 시민이 서로 만나고 도우며, 조언을 구하고, 공공행정에 접근할 수 있도록 ‘시민 키오스크를 설치하여 지금까지 도시공간에서 부재했던 주민 간 소통과 문화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위와 같은 다양한 이점들에 따라 15분 도시는 기존의 도시 계획과 운영에서 놓친 부분들을 잡고, 새로운 도시의 패러다임을 열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획기적인 도시이론이다.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고밀도'를 지향하고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인구감소 상황을 겪으며 특히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소멸 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 적용하기는 적합하지 않다. 이 부분이 바로 제주도에 15분 도시를 도입한다는 것에 대한 우려점이다. 


  제주는 국내 다른 도시와 달리 면적이 상당히 넓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주거시설에서 15분 내로 필수적인 서비스 이용 시설을 생산해 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에 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제주의 경우 도시는 대규모 주거지 개발로 인하여 구도심은 활력을 잃은 지 오래이고, 농촌은 도시로 빠져나가는 인구와 고령화, 저출생으로 인해 소멸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제주도 전체 평균 인구가 1 km²에 377명, 제주시는 km²당 518명이지만, 서귀포시는 km²당 218명에 불과하다. 애초에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추진하는 도시계획인 15분 도시를 제주도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도입하는 것은 필수 전제조건인 주거, 업무, 상업, 보건, 교육, 여가 시설을 해결하기 쉽지 않다. 애초에 현재 세계에서 15분 도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파리, 멜버른, 포틀랜드와 같은 도시들은 인구 수백만에서 1000만 이상인 인구과밀 도시들이다. 


  만약 이러한 악조건을 모두 무시하고 15분 도시를 계속 추진한다고 했을 때도 생기는 문제점이 있다. 15분 도시를 만들겠다는 명목 하에 건축이나 각종 개발 규제의 완화로 난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15분 도시 재편성이 제주도 각 지역마다의 특성과 성향을 고려하지 못한 채 획일적 틀로 만들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러한 점에서 서울 및 경기도와 같은 수도권 지역, 그리고 인구 과밀화를 겪고 있는 소수의 지방 도시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역에서 15분 도시를 정책으로 이끌겠다고 하는 것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유행’만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심지어 계속해서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구감소 시나리오에 적합한 도시계획을 발표하지 못할 망정, 15분 도시를 위해 무작정 인프라를 구상하는 것이 추후에 지방자치단체의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5분 도시는 분명 다양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의 편의성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기후위기 시대, 탄소중립과 친환경 부문에 있어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기존의 도시에서 사라져 버린 ‘소통'을 다시 부활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파리에서, 그리고 선진국에서 이 도시 계획을 민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대상에 대한 적합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고밀도 도시에 알맞은 계획인 15분 도시를 인구감소로 인한 저밀도 도시로 향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15분 도시는 그저 유행 따라가기 밖에 될 수 없다. 제주도가 15분 도시 정책을 도입함에 있어 많은 우려점이 나오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생긴 이유는 바로 이러한 유행 따라가기만 고려한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제주도의 사례에서 아쉬운 점을 보완하며, 우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현실적인' 미래를 고려한 후, 현재의 상황에 적합하고 미래의 상황에도 유연히 대처할 수 있는 그러한 도시 계획이 필요하다.



출처  


전 세계적 화두, ‘15분 도시'에 대해 창안자에게 직접 의미를 물었다. 김현유. 2023. 에스콰이어 코리아(https://www.esquirekorea.co.kr/article/76536)


15분 도시의 개념과 적용에 관한 연구. 김형준. 2023


[책&생각] ‘시간 도난' 없고 싶어…삶에 돌려주는 ‘15분 도시'란, 장동석, 2023, 한겨례(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80081.html)


파리의 15분 도시, 미래의 삶을 꿈꾸다. 박창석. 2022. KDI 경제정보센터(https://eiec.kdi.re.kr/publish/naraView.do?fcode=00002000040000100009&cidx=13791&sel_year=2022&sel_month=06&pp=20&pg=1


파리의 15분 도시 정책 추진 현황과 시사점(https://www.icleikorea.org/getContent.do?seq=2643&gubun=003)


[전문]개념 정립도 못한 ‘제주형 15분 도시'...도민 우롱. 현달환. 2022. 뉴스N제주(https://www.newsnjeju.com/news/articleView.html?idxno=94340


[창간 기획] 15분 도시 제주…비현실적vs세계적 흐름. 2023. 제주도민일보(http://www.jeju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7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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