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와이파이 첫 번째 기획기사 _ <가을총학 탐구생활>
그렇게 공청회가 끝나는 듯했으나, 당신의 목 뒤에서 사투리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이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19년 3월 11일, 이우고등학교 총학생회 선거 공청회가 열렸다. 2018년 12월에 치러져야 했던 선거는 후보자를 기다리며 미루어졌다. 총학 <틈새>는 선거를 치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연구했지만, 결국 선거는 후보자가 출마하지 않았던 관계로 방학을 건너 2019년 3월에 치러졌다. 개교 이후 처음 있는 선거 연기 사례였다.
계속해서 이어져온 관례는 전통을 만들어낸다. 전통이 없는 사례는 시초가 된다. 시초는 한 시스템의 태동이자 기틀이다. 전례 없는 시기와 한 팀의 러닝메이트만이 출마한 사사롭지 않은 선거는 이례적으로 학기가 시작한 후, 3월 14일에 치러졌다.
논란은 선거권의 범위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3월 11일에 있던 공청회는 15,16,17기가 참관했다. 공청회에서 선거관리위원회는 17기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지 않는다고 처음으로 공표했다. 17기를 비롯한 몇 학생들은 혼란스러워했다. 공청회 자리에서 몇 학생이 1학년의 선거권과 관련된 의문을 제기했다. 선관위는 “회장단이 늦게 나온 만큼 공약과 방향에 대한 이해, 학교의 분위기 및 상황을 아는 투표권자와 그렇지 않은 고1의 간극은 매우 클 거라고 판단했다. 이우학교를 전혀 경험하지 않고 투표에 참여했을 경우 투표 결과의 해석이 어렵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답했다.
논란의 당사자인 17기 내의 발화는 최초 제기 이후 빠르게 사그라져 들었다. 선거 이후 5일간 진행된 와이파이의 설문조사(응답률 42%, 구글폼 사용)에 따르면, 1학년 학생들의 51% 가량은 2019 총학생회 선거에 참여하지 못한 것에 불만을 느끼지 못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불만을 느끼지 못한 주요 원인으로는 ‘1학년은 당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시기이므로’, ‘원래 시스템 상으로는 선거를 하지 못하니까’ 등을 언급했다. 통계상 절반 정도의(약 49%) 학생이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했으나, 실제로 가시적인 연대와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우리가 기사를 준비하며 잡아낸 문제의식은 1학년 선거권에서 시작되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향해 이내 현 총학의 선출방식에 대한 지평의 물음으로 넘어갔다.
개교이례로 유지되고 있는 총학생회 선거 시스템은 매우 익숙하고 보편적이다. 하지만 당연시되어온 이 선거 시스템은 출범 이후 논의되지 않았다. 현재 총학의 구성은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 최선의 방법일까? 이 논의의 발화점은 1학년 선거권 문제에서 시작했지만, 우리는 동시에 총학을 선출하고 운영하는 보다 다양한 대안이 조명 받아 총학생회 선출과정에 대한 새 담론이 형성되어야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선거 시스템이 ‘무결점’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은 “그동안 해왔으니 앞으로도 이러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앞선 관성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한 문제제기이다.
문제제기는 2019년 총학생회 선거권의 범위에서 시작되었지만, 문제의 발현은 총학의 구성방식에 대한 재고로 이어졌다.
기존의 선거 방식은 ‘12월 선거-총학’이었다. 이우고등학교 총학생회 선거는 매년 12월에 실시되었다. 다음 해에 3학년이 되는 총학생회장과 2학년이 되는 부총학생회장 후보가 팀을 이루어 총학생회 러닝메이트로 ‘당’을 구성한 후, 비전, 공약을 만들고 선거 약 1주일 전에 학교학생들이 모두 모인 장소에서 이를 발표하는 공청회 시간을 가졌다. 선거권의 대상은 선거가 있는 해의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왔다. 선거를 거치고 당선된 총학생회는 그 다음해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그 이후 겨울방학 혹은 학기 초에 학생회 부원들을 모집해왔다. (단, 1학년의 경우 입학을 안했기 때문에 학기 초에 모집해왔다). 현재의 선거 시스템은 1년을 단위로 하는 연속성 있는 선거제도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곧 졸업생이 되어 학교를 떠날 3학년들이 선거를 한다는 점이다. 졸업할 3학년들은 선거 날에 표만 던지고 학교를 떠난다. 그렇게 선출된 총학생회가 활동을 할 때 투표자의 1/3은 학교에 없다. 선거를 하지 못한 1학년 입학생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매년 1학년은 자기 손으로 직접 총학생회를 뽑지 못하고 이미 당선되어 결정된 총학생회를 받아들인다.
지난 해, 2018년 총학생회 후보가 나오지 않을 시기에 총학생회 <틈새>는 [2019년도 총학생회장후보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 대한 2018년도 총학 2학년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성명에는 기존의 총학 지도부 선출 방식의 대안을 언급하며 3학년의 선거권과 관련해 문제제기를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오랜 기간 재직한 한 선생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개교 이례부터 조금씩 있어왔다고 한다. 일례로 2016년 총학생회 후보 ‘건드리당’은 구체적인 공약으로 선거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꺼냈다. ‘건드린당’은 고3과 고1 신입생의 선거 참여 문제를 지적해 ‘가을총학’을 공약했다. ‘가을총학’은 선거를 2학기가 시작하는 가을에 진행하여 1년 동안 총학생회를 운영하는 방침을 담고 있다. ‘건드리당’은 ‘가을총학’을 통해 단지 고3과 고1 신입생의 선거 참여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이점들도 상당하다고 보았다.
첫째로, 1학년의 원활한 총학 참여가 용이해진다. ‘건드리당’은 총학 내부의 문제에도 주목했다. 이전부터 총학생회에서는 고1 학생들과 고2, 고3 학생들 간의 학교에 대한 앎의 차이, 실질적 발화 권력의 차이로 한 학기 혹은 일 년 내내 총학생회 회의 참여에서 어려움을 겪곤 했다. 가을총학의 운영으로 한 학기 동안 어느 정도의 학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높인 상태에서 총학생회 활동을 하게 되어 앎의 차이로 참여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교사회와의 1년 학사일정, 교육과정의 논의·협의에도 적합한 측면이 있다. 보통 1년의 학교계획은 해가 바뀌고 1-2월에 세워진다. 이 때문에 매년 총학생회가 활동을 시작하면 이미 학교의 중요 학사일정, 교육과정 등은 수립되어 있어 도중에 문제점이 있거나 변화가 필요해도 이를 수정하기가 어려웠다. 문제가 드러나도 다음기수에서야 수정되어 그 기수에서의 즉각적인 문제해결은 어려웠다. 하지만 가을총학이 운영된다면, 총학은 전년도 2학기에 제기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겨울방학 때 학교 1년 계획을 수립할 때 교사회와 직접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세 번째로, 깊고 안정적인 선거 및 공약 준비가 가능하다. 기존의 선거 시스템으로는 보통 선거 1주일 후 학기말 고사를 치르곤 했다. 많은 교과목의 시험 준비와 각종 수행평가를 해야 하는 시기에 총학생회 선거 준비와 중첩되어 당원들의 피로도가 상당했다. 때문에 지금의 선거 일정 하에서는 깊고 안정적으로 몰입하여 선거를 준비하기에 어려울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가을총학의 일정에 따라 선거 일정을 2학기 초로 바꾼다면 올해 총학 선거에서 ‘불씨’당이 겨울방학기간에 몰입하여 준비해 풍부한 비전과 공약을 설계했던 것처럼, 여름방학 시기에 몰입해 안정적으로 선거를 준비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선거 시스템은 3월 새 학년의 시작과 함께 총학 또한 시작해서 끝을 맺는데 반해 가을총학은 2학기 초에 시작해 다음 해 1학기 말에 임기가 종료된다. 여름방학에 비해 비교적 긴 겨울방학기간 동안 기구의 동력이 떨어지고, 총학이 새 학년과 반의 담론을 담아내는 것에 흐름이 끊길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1학기에 총학의 임기가 끝나고 2학기 때 새로운 총학임기가 시작되면 이때 3학년의 참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2학기가 되어 새로운 총학생회장은 2학년에서, 부총학생회장은 1학년에서 선출하게 된다. 한 학기 후 졸업하는 3학년에서 총학 부원을 새로 또 뽑기가 어렵고, 부원을 뽑지 않는다면 2학기 때 3학년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기 어렵다. 만약 한 학기의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3학년을 뽑는다고 하더라도 총학 부원 모집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큰 문제는 ‘가을총학’이라는 대안이 현재의 총학 시스템과 변화되는 과정의 혼란이다. 가을총학으로 변환되는 과정에서는 전해의 총학이 1년 더 운영되거나, 한 학기 동안의 ‘비상총학’이 운영되어야만 한다. 어떤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두 시스템의 교체가 일어나는 한 학기동안 시초의 혼란이 있어야 한다. ‘가을총학’은 이러한 혼란을 학교 구성원 모두가 감내할 만큼의 명확한 이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신입생과 졸업생의 선거참여 문제와 위의 3가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가을총학’을 공약했던 ‘건드리당’은 그 해 낙선했다. 우리가 기사를 통해 다룬 것도 ‘가을총학’이라는 하나의 대안을 소개한 것이지, 그 또한 모든 의사결정 제언이 그러하듯 ‘가을총학’ 역시 무결점의 시스템은 아니다.
선거란 특정 후보자를 선출하는 것을 넘어 민주적 주체로서의 능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수행하는 것은 당위나 의무의 개념이 아니라, 자치의 주체로서 존재하는 필수불가결적 요소이다. 이우학교에서의 민주적 자치는 특정 당을 총학생회로 선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 개개인 모두가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주체라는 사실을 담고 있다. 또한 선거를 함으로서, 모두가 평등한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립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이고 자치이다.
주체로서 ‘자치’한다는 것은 현재 구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하는 것이다. 현행과 가을총학 같은 새로운 절차와 구조를 비교하고, 의심해야 한다. 그래서 자치의 과정은 보다 폭 넓은 다양한 가능성으로 고민되어야 한다.
신화 속 판도라는 금기된 상자를 엶으로써 세상에 희망 혹은 미련을 남겼다. 반면, 여우는 나무 위 포도가 실 것이라는 자기암시를 하고 떠난다. 그러나 여우가 놓칠세라 꽉 쥐고 있던 신념의 결말은 불편한 진실 혹은 편안한 거짓이다. 두 선택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아직 나무 위의 포도 맛을 모른다.
@위수한, 박다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