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꿔나갈 대숲의 모습
'이우고등학교 대나무숲'
우리에게는 '대숲'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이곳은, 2012년에 처음 만들어져 현재 총학생회가 관리 및 운영하는 이우고등학교의 온라인 익명 담론장이다.
2019년 한 해 동안 대숲에서 우리는 수많은 감정, 사람, 이야기들과 마주했다.
임시 폐쇄 후 다시 열린 대나무숲,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지난 흐름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연 대나무숲은 우리에게 어떤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2학기가 시작되고 대나무숲은 여러 이야기가 발화되면서 문제를 겪게 되었다. ‘채식’, ‘교내 흡연자’, ‘고3’, ‘급식’, ‘이우는 망했다’와 같은 말들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대숲에 글이 올라왔지만 그중 건강한 담화로 이어진 것은 거의 없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사람 간의 대화가 아니라 글과 글이 싸우는 듯한 상황이 수없이 연출되었다. 또한, 이렇게 쉽게 쓰이고 쉽게 읽히는 글들은 맥락 없이 조각난 글들, 폭력적인 글들이 되어갔다. 그리고 이러한 글들이 순식간에 분위기를 장악하고 여론을 몰고 가는 상황이 여러 차례 나오게 되었다.
학생들이 주로 어떤 경우에 대나무숲을 이용하는지를 지난달 급식실 앞 전지를 붙여놓고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몇 가지 대나무숲을 사용하는 보편적인 경우로 ‘고민 상담’, ‘문제 제기’, ‘불만 표현’, ‘기타’를 보기로 두었다. 결과는 문제 제기가 가장 많았고 고민 상담과 불만 표현이 뒤를 이었지만 사실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보기는 ‘기타’였다. 그중에서도 ‘관찰’, ‘눈팅’과 같은 키워드들로 이루어진 댓글들이 많이 달렸다. 이는 대부분의 대숲 이용자들이 대숲에 글을 쓰기보다 올라오는 글들을 눈으로 읽기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방관하는 이들의 비율이 늘어날수록 대숲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을 때, 눈으로 한 번 읽어보고 맞는 말 같거나 재미있으면 좋아요를 누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이상의 대화나 학교 내에서의 담론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익명성은 사람들이 어떤 매체를 가장 쉽고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지만, 동시에 가장 큰 의심스러움을 남긴다. 그래서 익명의 글의 주인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종종 생기곤 한다. '익명'이라는 이름 뒤에서 대나무숲은 가장 안전한 공간인 동시에 가장 위태로운 공간이 된다.
- "글 뒤에 사람 있어요"
지난 대숲의 언쟁들을 훑어보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제대로 된 논쟁인가?"하는 의문이었다. 인터넷상의 글은 이야기를 전해줄 수는 있지만 직접 대화하는 것에 비해 감정이나 뉘앙스의 전달력에 한계가 있다. 똑같이 ‘미안해’라는 말을 전해도 얼굴을 마주 보고 목소리를 내어 말하는 것과 화면상의 글자로 전달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글, 특히 익명이라는 특성을 가진 글 속에서 말하는 이의 표정을 읽을 수 없고, 목소리의 높낮이를 들을 수 없으며, 말의 속도나 어투 또한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간혹 사람들은 ‘글 뒤에 사람이 있다’라는 사실을 잊은 채 ‘글’에 ‘글’로 무작정 달려들곤 한다. 처음 이야기를 내놓은 사람도, 이야기에 반응하는 사람들도 부재한 ‘글과 글의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또한, 대숲과 같은 공간에서의 글은 ‘맥락’의 존재 여부가 중요하다. 처음부터 대숲의 목적은 단순 의견 표출 및 건의가 아닌 ‘건강한 담론과 소통의 장 형성’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글쓴이의 의견과 의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능한 배경과 사건 등에 관해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난 대숲의 글들-주로 논란이 되었던 글 중심으로-을 살펴보면 맥락 없이 감정을 표출하거나 몇 줄의 글로 수많은 이야기를 함축해버리는 듯한 느낌의 글들이 다수였다. 이러한 글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이해할 수 없음’을 느끼게 하는 것을 넘어, 폭력성을 가지기도 한다. 날카로운 조각처럼 뚝 떨어져나온 글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오해하며, 분노한다.
- 쉽게 쓰고 쉽게 읽고 쉽게 공감한다
다양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대숲이 여전히 우리에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공간인 것은 다른 플랫폼에 비해 단연 높은 접근성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을 들고, 페이스북에 접속해, 구글폼을 열면 지금 바로 생각나는 이야기를 보낼 수 있다. 읽는 방식도 간편하다. 이런저런 글들을 넘기다 공감되는 글이 있으면 버튼 하나로 공감을 표시할 수 있다. 익명성과 더불어 높은 접근성, 그리고 SNS라는 플랫폼은 대숲에 독이 되는 요소인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매번 대숲을 살리는 요소인 것이다. 쉽게 쓰는 글들이 가볍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대숲을 사용해본 이들은 경험해봤겠지만, 어제는 저 글의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가도 오늘은 이 글이 맞는 것 같은 것이 대숲인 것은 사실이다. 그냥 잠깐 찡그리거나,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글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쉽게 대숲에 내던져진 글에는 뼈가 있고 돌이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맥락 없고 조각난 글은 누군가를 상처입히기 쉽다. 우리는 돌을 던질 수 있으나 서로의 돌에 맞을 수도 있는 개구리들이다. ‘쉽다’는 말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살벌한 연못에서 돌을 던지고, 돌에 맞고, 다른 이가 던진 돌에 무게를 싣는 일이 ‘쉽게’ 일어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 된다.
페이스북 페이지 ‘이우고등학교 대나무숲’ 외에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대나무숲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플랫폼은 없을까? 이미 총학에서는 이를 위해 몇 가지 공약들을 시행 중이다. 급식실 앞 벽에 붙어있는 아궁이는 대표적인 오프라인 플랫폼의 예시이다. 그러나 이는 사용률이 저조하다. 기존의 건의 사항이 해결되고 새로운 건의가 올라오기까지의 공백도 길고 새로운 것이 올라왔다고 해도 이 또한 읽기만 하고 지나쳐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왜 아궁이와 같은 오프라인 플랫폼은 대나무숲보다 사용이 저조할까? 총학에 건의하거나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의견을 묻는 플랫폼은 대나무숲처럼 사적이거나 가벼운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또한, 접근성 면에서도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에 비해 떨어진다. 대나무숲을 일상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이끌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논의해봐야 할 이야기가 있을 때는 그에 대한 건강한 담론을 오프라인에서도 이어갈 방법은 없을까? 이 기사에서 이 물음에 대한 뚜렷한 답을 내릴 수는 없고, 답이 있는 문제일지조차 의문이다. 그러나 이를 계속해서 개선해나가며 이어가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학생들이 이러한 문제 상황들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총학에서 두 차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나무숲을 개선 유지하자는 의견이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대나무숲은 결국 없어지지 않고 재가동을 시작하였다. 기존 플랫폼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학생들의 대나무숲과 기타 플랫폼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대숲의 문제점을 분산하고 보완하기 위해 지난 총학생회들은 많은 플랫폼을 제안해왔고, 심지어는 대숲의 담론을 오프라인으로 끌어온 다양한 이야기장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총학과 자치기구들의 행동에 대한 답변은 ‘참여 부재’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대숲 밖에서의 담론형성은 왜 어려운가? 왜 자꾸 실패하는가? 이 의문점은 앞으로 총학을 비롯한 학교의 구성원들이 풀어가야 할 질문일 것이다.
-학교는 개인의 이야기를 꺼내놓기에 안전한 공간인가?
‘안전한 공간’. 조금 상투적일 수 있지만 그만큼 소통과 공유를 위한 공간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개념이다. 공간에서 함께하는 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가? 나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두렵지 않은가? 나의 의견이 공감받거나 실제로 반영될 수 있는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공간은 꽤 많은 의문점과 신뢰를 충족해야 한다. 물론 대나무숲은 이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하지만, 익명이라는 특성 덕분에 사람들은 적어도 두려움을 떨치고 말을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에 따라 수많은, 복합적인 사유가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나오는 이유를 짚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는 토해내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현실적인 관계 속에서 꺼내놓기 어렵다는 점이다. 선생님에게, 같은 학년의 친구들에게, 지난번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떠든 그 누군가에게 전해야 할 말이 있음에도 그 말을 직접 전달하기 어렵거나 껄끄러운 경우들이 있다. 현실에서 말하면 안 될 이야기는 어디에서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맞지만, 대숲에 올라오는 이야기 중에서는 공유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나 마땅히 전할 방법이 없거나 어려운 것들도 있다.
또한, 내가 한 말이 곧 나의 전부로 보일 것 같아서 두려운 마음도 있다. 나의 주장 때문에 나에게 특정한 낙인이 찍히는 건 아닐까, 여론과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으면 별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두려운 마음. 이우학교처럼 익명성도 간신히 보장되는 작은 공동체 속에서, 심지어 ‘사람’이 배제되고 익명의 글이 내세워지는 인터넷에서는 더욱 흔하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소문은 빠르고 왜곡되기 좋으며 금방 보편이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어지럽게 떠돌던 이야기들은 결국 대숲에 모인다.
우리는 하나의 기로이자 시작점에 서 있다. 올 한 해 동안 대나무숲은 수많은 일을 겪었고, 임시 폐쇄가 끝난 이후 아직 아무런 글도 올라오지 않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대나무숲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대나무숲을 단지 익명으로 말을 옮기는 플랫폼 너머의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이 기사를 기획하게 된 시작점도 대나무숲은 더 잘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아쉬움과 기대감이었다.
아궁이가 조금씩 플랫폼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새로운 총학이 등장하기 직전의 순간인 지금, 이우고 대나무숲은 어떤 공간으로 다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우리는 대나무숲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나아갈 필요가 있다. 대나무숲이 원활하고 건강해짐은 곧 학교가 적극적으로 담론과 이야기를 공유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하나의 플랫폼의 존재 여부를 떠나, 이우 속 개인들의 이야기가 두려움 없이 울려 퍼질 날을 기대해본다.
@곽도은, 이익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