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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파이 Jun 09. 2020

호외요,호외!:키싱마이라이프

어쩌면 내가, 네가 될 수 있는 이야기; 아직 준비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2019년 4월 11일, 인터넷의 많은 기사와 댓글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는 모두 달랐다. 기사의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댓글은 ‘이제는 노콘으로 섹스해도 되겠다’라는 댓글이었고, 그 밑에는 낙태죄가 폐지되면 낙태를 계속하면 되겠다는 식의 조롱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하나의 결정이었지만 모든 사람의 감수성은 너무나도 달랐다. 헌법불합치 결정이기 때문에 그전에 낙태죄 조항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2021년부로 낙태죄는 폐지되게 된다. 낙태가 일부 허가된 사람에게만 행해지는 것이 합법이였던 우리나라에서는 낙태로 인한 성폭력, 불안전한 공간에서 수술, 큰 비용 부담 등 그 모든 무게를 대부분은 임신한 여성 혼자서 감당해야만 했다. 임신한 여성의 태아 또한 생명이라는 이유로 낙태죄를 적용하였던 사회에서 여성의 행복을 위해 임신, 출산을 강요받지 않게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판단한 이 재판은 사회적 인식의 커다란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낙태죄는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법률이다. 여성의 임신은 남성 또한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인데, 우리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임신을 하지 않는 남성에게 처벌을 가하기란 쉽지 않다. 뱃속에 태아의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에 임산부는 임신중절수술을 하면 안 된다는 이 낙태죄 법률은 어쩌면 한 여성의 삶을 망칠 수도 있는 무거운 손가락질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임신을 여성이 한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여성에게만 논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인가 우리는 올바른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


‘키싱 마이 라이프’는 고등학생 하연이가 남자친구와 첫 성관계를 갖고 임신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청소년인 하연이의 시점에서 청소년들만의 느낌을 담아서 풀어가고 있는 이 소설은 청소년 임신 소설이라고 하면 생각되는 전형적인 어둡고 우울한 느낌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많이 그려졌다. 물론 이 책에서는 현실적인 많은 어려움과 무게감에 대해서 크게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청소년 임신에 대한 부분을 가볍게 다루었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은 그저 우울함에 빠져서 암울하게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며, 책임지기 어려운 임신을 한 청소년이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할지, 어떻게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이 구절은 하연이가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나온 부분이다.


“온종일 앓았다. 뜨거운 불길처럼 갈라지는 미묘한 감정과 캄캄한 동굴 속에서 울부짖는 짐승의 격한 울음소리 같은 그런 악몽 속으로 자꾸만 빠져들었다. 귓가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릴 땐 가위에 눌려 죽을 것만 같았다. 눈을 뜨면 오만가지 생각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 두려움에 떨었다. 내 안에 내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한쪽에선 하연아, 괜찮아. 어떻게 되겠지. 걱정하지 마 하는 위로의 소리가, 또 다른 쪽에선 정하연, 너 이제 큰일났다. 어떡할 거냐? 죽었다 하는 공포심이 교차하며 나타났다.”


 하연이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부모님과 친구들, 선생님에게 바로 말하지 못한다. 학교는 임신한 학생을 퇴학시킬 수 없고, 자퇴를 유도하지도 못하지만, 현재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임신한 학생이 계속 학교에 다니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위의 이 구절은 모든 두려움과 아픔을 혼자 다 견뎌내고 있는 하연이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청소년들이 임신했을 경우 남자친구와 연락이 끊기거나 헤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임신 사실 때문에 가정에서 내쫓기는 경우도 70%로 매우 높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알아서 임신중절수술을 하거나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은 후에 유기, 심한 경우 살인까지 한다고 한다. 



 “만약 너희들이 남자애들하고 돌아다니다가 애라도 배면… 엄만 같이 죽어버릴 거야”



청소년이 임신했다고 하면 우리 사회에서 작은 단위로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바라보는 시선은 날카롭다.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청소년은 임신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닌데 가정에서조차, 학교에서조차 임신한 청소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와주지 않는 것은 한 사람에게 행하는 폭력적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임신이라는 것은 가볍게 생각해야 하는 문제도 아니고 생명 하나를 책임질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 때 임신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청소년 임신의 문제점 또한 책임질 수 없는 부분이 가장 크다. 임신한 청소년 또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분명 있지만, 더 잘 책임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 우리 사회의 역할이다. 임신한 사실만을 손가락질하고 외면하기만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청소년 임신은 어쩌면 내가, 아니면 내 옆에 친구가 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일이라는 것은 없고 경험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여성의 임신과 자기 결정권에 대해 많은 대립이 있다. 어느 한쪽의 의견만이 맞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나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와 생각과 가치관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고, 살아갈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지 않을까?




@서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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