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의
2차 세계대전, 세계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라는 건 모두 알지만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길지 않은가? 발생 배경부터 전개 과정과 종전,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3차 세계대전의 전망까지, 이 글 하나로 최대한 쉽고 짧게 요약 정리하겠다.
독일: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을 패배한 이후로 일부 영토를 빼앗기고 엄청난 액수의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또한 독일의 영토임에도 프랑스에 인접한 국경 지역은 군대 배치가 금지되었고, 군대 규모가 제한되었다. -베르사유 조약
특히 이 막대한 규모의 배상금은 독일이 지불 가능한 액수의 13배에 달했으며, 당연히 독일의 경제는 무너지고 도저히 배상금을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영국과 미국은 배상금 액수를 줄여주긴 했지만 프랑스는 배상금을 줄이지 않고 독일을 압박했고 나중에는 돈을 안 낸다는 이유로 군대를 동원해 독일의 공업 지대를 점령해버리기도 한다. 이에 독일인들이 항의했지만 주둔한 프랑스군이 독일 민간인들을 폭행하고 심지어는 처형하는 일까지 속출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협상국들에 대한 독일인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협상국: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승리한 국가들. (영국, 프랑스, 미국 등)
그러던 와중 독일 내에서는 극단적 민족주의와 국가주의(파시즘)를 앞세운 나치당과 히틀러가 등장한다. 패배감에 찌들어 있던 독일인들에게는 혜성과도 같은 존재였던 그들은 대중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승리하며 독일을 장악했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나치 독일은 군수산업과 중공업에 집중하며 산업을 회복시켜 세계 3위의 경제력을 되찾았다.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협상국이었으나, 입은 피해에 비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때문에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상당했으며, 또한 국가 내부에서도 각종 집단들의 갈등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때, 강력한 민족주의로서 이탈리아가 하나로 뭉칠 것을 주장하는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각광을 받았다.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세력을 키우던 무솔리니는 쿠데타를 성공시켜 정권을 잡는다. 그리고 독일과 이탈리아, 이 두 파시즘 국가는 후에 동맹을 결성한다.
일본:
일본은 아시아에서 한창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하여 타이완 섬을 식민지로 삼고 러일전쟁에서도 승리하여 러시아에 의존하던 대한제국까지 식민지로 만들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서방에 많은 수출을 하며 아시아의 신흥 공업국으로 떠오르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수출이 줄어들고 서방국가들에게 견제를 당하며 위기를 겪었지만, 만주국을 괴뢰국으로 삼아서 만주 지역의 천연자원들을 흡수하며 오히려 산업을 발전시켰다. -러일전쟁, 청일전쟁, 만주사변
(노란색 땅이 만주국)
만주국에 대해서 서방국가들이 비난을 가하자 일본은 국제연맹에서 탈퇴해 버렸고, 모든 제약이 풀려버렸다. 일본은 타이완 섬과 만주로는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중국 본토로 진격하여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점점 폭주하기 시작한다. -중일전쟁
전쟁 발발 과정
유럽에서 독일이 확장을 시작한다. 독일은 협상국들이 금지시켰던 모든 것을 대놓고 위반하기 시작한다. 군대 규모를 확장시키고 프랑스 국경에 다시 군대를 배치했다. 이런 독일을 협상국들이 제재하지 못했던 이유는, 1차 세계대전의 기억이 협상국들에게도 악몽으로 남아 독일과 갈등을 만드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라인란트 재무장
독일은 군대를 보내 오스트리아를 합병했으며, 체코의 영토의 일부분도 합병을 요구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더 이상 영토를 확장하지 않겠다는 독일의 약속을 받고 이를 허락했지만 몇 달 만에 독일은 약속을 어기고 체코의 남은 영토까지 합병해 버린다. -뮌헨 협정
(왼쪽 사진의 진한 빨간색이 합병한 오스트리아 영토, 오른쪽 사진의 노란색이 합병한 체코 영토)
소련은 진작부터 이러한 독일의 확장을 경계하고 있었고 영국, 프랑스에게 독일을 견제할 군사 협력을 맺자고 제안하였으나 영국, 프랑스가 거절해서 실패하였다. 그래서 소련은 견제하지 못한다면 협력하겠다는 판단을 하여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는다.
-독소불가침조약
1차 세계대전 이후로 영토를 빼앗긴 독일은 폴란드와 지속적인 영토 분쟁을 이어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협상을 시도했지만 도저히 분쟁은 해결이 되지 않았다. 결국 독일은 소련과 함께 폴란드를 침공한다. 이에 프랑스와 영국이 더는 참지 못하고 독일에 전쟁을 선포해 버린다. 이 두 국가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연합국이다. -폴란드 침공, 2차 세계대전 발발
프랑스가 곧바로 독일로 선제공격을 가했다. 독일로서는 동쪽에서 폴란드를 공격하다가 서쪽에서 뒤통수를 맞게 된 셈이었는데, 생각보다 첫 전투에서 프랑스를 잘 막아내자 프랑스군이 금세 철수한다. 이때 독일 군대의 대부분은 폴란드에 가있었으며, 프랑스가 전력으로 쳐들어오면 멸망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프랑스는 그걸 알지 못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 영토 너머 동쪽에 있는 폴란드를 도와주지 못했고, 폴란드는 침공 한 달 만에 항복하게 된다. 폴란드의 영토는 독일과 소련이 반으로 갈라서 나눠 갖는다.
사실상 프랑스와 영국이 전쟁을 선포한 시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전쟁 전개 과정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의 참전을 예상하지 못했으나, 이렇게 된 이상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장기전을 위한 자원수급을 위해 덴마크를 침공했으며, 영국과의 해상 전투를 대비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노르웨이도 이어서 침공한다. 덴마크는 6시간 만에 항복하고, 노르웨이는 영국이 방어를 시도했으나 막지 못했고, 독일이 두 달 만에 점령을 성공한다.
-덴마크 침공, 노르웨이 침공
폴란드 점령을 성공한 후에 독일은 프랑스 침공을 준비했지만, 사실 독일 입장에서는 정말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병력의 질에서도 수에서도 프랑스가 훨씬 우세했기 때문이다. 독일 내부에서도 프랑스를 이길 거라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때문에 정면 돌파를 피하고 허를 찌르는 전략을 준비한다.
독일은 병력 일부를 북부로 이동시켜 프랑스군을 유인했고, 독일의 의도대로 프랑스는 북부로 따라와 줬다. 당시 이 첩보를 듣고 히틀러가 “기쁨에 겨워 울 것 같다.”라는 감상을 남겼다고 한다.
프랑스가 유인에 걸려들기를 남부에서 기다리고 있던 독일군이 즉시 진군하여 밑으로 크게 돌아서 프랑스군을 포위했고, 프랑스는 위가 바다였기 때문에 완전히 갇혀버리고 만다. 프랑스는 북부에 마지노선이라는 엄청난 방어선을 만들어놨지만 남부가 뚫리고 포위당했으니 그건 다 소용없어져 버렸다. -낫질 계획
(당시 독일이 성공시킨 일명 낫질 계획의 지도)
이 상태로 독일이 몇 번의 기적적인 승전을 반복하자 프랑스는 대부분의 전력을 잃어버리고 말았고, 그나마 일부는 영국의 수송선이 바다를 통해 영국으로 탈출시켰다. 세계 최고의 육군을 보유하고 있던 프랑스가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당연히 독일군은 멈추지 않고 진격했고 4주 만에 파리 입성, 6주 만에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낸다.
(파리를 점령하고 에펠탑 앞에 선 히틀러)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는 중에 이탈리아도 프랑스를 공격했으나 별 성과는 내지 못했다.
독일은 프랑스를 항복시키고 난 뒤 영국에게 외교적 압박을 가하며 항복을 요구했으나 영국은 이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독일은 영국도 공격하기로 결심한다.
영국의 해군은 독일이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었기에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던 공군으로 공격을 가한다. 독일의 전투기들이 영국 본토로 날아가서 폭격을 시도했으나, 영국 공군이 항공전을 벌이며 이를 잘 막아내었고, 독일 공군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철수하게 된다.
-영국 본토 항공전
이후 독일, 이탈리아의 동맹에 일본이 합류하며 삼국 동맹이 만들어졌다. 이 세 국가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바로 ‘추축국’이다. 독일, 이탈리아는 유럽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 일본은 아시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이 목표로 동맹은 결성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의아하게도 동맹을 결성한 이후부터 뭔가 하나씩 엇나가기 시작한다. -삼국 동맹 결성
프랑스 침공을 실패한 것이 아쉬웠던 이탈리아가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 그리스를 침공했다. 그리스보다 월등히 우수한 군대를 보유한 이탈리아는 당연히 승리를 예상하며 자신만만하게 진군했다. 그런데 그리스는 이탈리아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내고 오히려 역공세를 벌이는데, 여기서 이탈리아가 역으로 영토를 빼앗겨 버린다. -그리스 침공
이탈리아의 공격은 독일의 반대를 무릅쓰고 행한 것이었지만, 그마저도 대차게 실패해 버린 것인데, 설상가상으로 영국이 지원을 오기 시작한다. 결국 독일이 그리스 침공에 합세했으며, 독일이 공격을 시작한 지 또 두 달 만에 그리스를 항복시킨다.
이 시점에서 독일은 소련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다. 소련과 독일은 분명 불가침조약을 맺은 관계였으나, 각국 지도자인 히틀러와 스탈린이 사상적으로 완전히 대립해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언제 사달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또한 이 침공은 히틀러의 민족주의적 사상에 기반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소련의 서쪽 지역에서 슬라브인들을 추방하거나 노예화 한 뒤, 그 땅은 게르만인들의 땅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또 다른 목표로는 소련을 항복시켜서 끝까지 저항하는 영국의 의지를 꺾으려는 것이 있었다.
결국 히틀러가 조약을 어기고 소련으로 침공을 시작하고,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 시작된다. -독소전쟁
소련군과 독일군에 각각 연합국의 지원과 추축국의 지원이 더해지며 규모는 더욱 커졌다.
총 병력 규모는 연합국 3450만 명, 추축국 1820만 명이었다. 극단적 민족주의와 이념 갈등이 기반된 전쟁이었기 때문에, 이 전쟁은 시작부터 서로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었다. 서로가 포로를 잡으면 죽이거나 강제노동을 시킨 덕분에 당시 포로의 사망률은 50%를 넘겼고,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은 끔찍한 전쟁 범죄가 속출하여 다른 전쟁들보다 민간인 사망 비율이 유난히 높았다.
(독일의 폭격을 맞은 소련 레닌그라드의 건물)
전쟁 초기에는 선전포고 없이 기습공격을 성공시킨 독일이 소련의 주요 도시에 공격을 가하는 입장이었다. 앞서 말했듯 독일은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도시를 포위한 상태로 식량과 에너지 공급을 끊어서 군인이고 민간인이고 모조리 몰살하려 했다. 당시 소련에서는 막대한 숫자의 아사자와 동사자가 발생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나무껍질을 벗겨먹고 가죽 신발을 끓여 먹으며 버텼다.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 모스크바 공방전
그럼에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버틴 소련은 기어코 반격을 성공하며 독일군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소련은 미국에 엄청난 양의 자원을 지원받으며 생산력으로 독일을 압도했고, 갈수록 동부전선의 전황은 독일에게 불리해져만 갔다.
당시 아시아 상황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 영토)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폭주하기 시작한 일본은 계속해서 확장을 이어나갔다. 중국 영토의 상당 부분을 점령했고, 동남아에서도 식민지를 넓혀갔다. 당시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막을 나라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연합국에서 일본에게 확장을 멈출 것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이미 남의 말을 들을 상태가 아니었고, 일본을 제재하기 위해 연합국은 일본에 모든 전략물자 수출을 중단한다. -ABCD 포위망
이것은 일본에게 매우 치명적이었다. 무엇보다 석유 수입이 막혀버린 것이 컸는데, 이래서는 정복 전쟁을 멈춰야 하는 상태가 돼버렸다. 이 상황에서 일본은 믿기지 않는 선택을 하고 마는데, 바로 미국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일본도 미국과 전면전을 벌일 생각은 없었고, 예상치 못한 기습 공격으로 겁을 주면 미국이 협상에 응해서 석유를 다시 수출해 줄 것을 기대했다. 일본의 목표는 미국의 태평양 함대 기지가 있는 진주만이었고, 철저한 준비를 거쳐 대규모 공습이 벌어졌다. -진주만 공습
공습 자체에서는 거의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미국은 일본의 기습에 거의 대항하지 못했고, 하루 만에 태평양함대의 상당 전력을 손실했다. 하지만 일본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은 협상 제안이 아닌 전쟁 선포를 날렸고, 전시 경제를 발동하여 엄청난 함대를 찍어내기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당시 미국에는 “진주만을 잊지 말자.”라는 문구가 널리 퍼졌다. 일본이 먼저 공격했으니 자비를 베풀지 말자는 뜻이었다.
이 공습을 계기로 미국은 일본뿐만이 아닌 추축국 전체와 싸울 것을 알리며 2차세계대전에 공식적으로 참전한다.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서
여전히 독일과 소련이 전쟁을 치루던 도중, 영국과 미국의 군대가 이탈리아에 상륙을 성공시켰다. 독일이 급하게 지원을 왔지만 이미 소련과도 싸우고 있는 와중에 점점 부담이 가중되고 있었다. 결국 연합군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이탈리아가 항복을 선언한다. 추축국의 영토가 밑에서부터 뚫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탈리아 상륙
이에 더해 연합군은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 북부 해안에도 상륙을 성공시켰다. 3주간 156만명의 연합군이 투입되었고, 프랑스가 드디어 독일로부터 해방되게 된다. 반면 독일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에서, 소련에서 연합군이 밀고 들어오며 점점 숨통이 조여오고 있었다. 이 전쟁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하지만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미국도, 영국도 아닌 소련이었다. 동부전선에서 점점 우세를 점해가던 소련군이 독일군을 박살내며 달려온 것이다. 베를린이 소련군에게 함락당하자 독일은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베를린 공방전
이제 일본만 남았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미국은 전면전을 벌였다. 진주만 공습 이후로 기세를 잡은 일본이 잠깐 미국을 몰아붙이기도 했지만,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소모전이 지속되자 압도적인 산업력을 가진 미국이 우세할 수 밖에 없었다. 계속된 소모전으로 일본의 해, 공군은 모두 무력화 되고 있었다.
사실상 일본은 무방비 상태가 되었고 미국이 그대로 상륙해도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상륙을 해보니 생각보다 자신들의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피해를 받지 않으며 공격하기 위해 공군으로 폭격을 가한다. 대표적으로는 도쿄가 대공습을 받아 도시 전체가 불타버렸으며, 이로 인해 10만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다. 군사 시설과 거주 시설을 구분하지 않은 무차별적 공습이었기 때문에 더 피해가 컸다. -도쿄 대공습
하지만 그럼에도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고, 최후의 수단으로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한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차례대로 핵폭탄을 투하했으며, 결국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며 2차세계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종전되었다.
연합국 : 영국, 미국, 중국, 소련, 프랑스 외 46국 → 승리
추축국 : 독일, 이탈리아, 일본 외 25국 → 패배
결과
전쟁 동안 너무 많은 상처와 충격을 받은 탓에 앞으로의 전쟁을 방지할 국제 기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연합국의 주요 국가들이었던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을 중심으로 국제 연합 UN이 만들어진다. 이 5개국들은 UN의 상임이사국 지위에 오르게 된다.
미국은 대규모의 병력을 파견하였으나 본토는 전혀 공격받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비교적 적었고, 전쟁 동안 많은 수출을 했으며 엄청난 군사력을 가지게 된 덕분에 초강대국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영국 또한 본토가 공격받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비교적 적었다. 하지만 적극적인 전쟁 참여에 국력을 많이 소비하여 기존 식민지들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대부분의 식민지를 해방시켜주고 피식민지 국가들과 영연방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구축한다. 그와 동시에 영국 본토에 집중하며 자국민들을 위한 복지를 강화하는 최초의 복지 국가 체계를 만든다. 과거의 초강대국 지위는 상실했지만 여전히 강대국의 지위는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일찍 항복했지만, 전쟁 막바지에 본토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져 피해가 꽤나 컸다. 하지만 영국과는 달리 식민지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에는 유지하지 못했다. 유럽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조하였고, 후에 독일과 함께 유럽 연합을 이끄는 나라가 된다.
소련은 본토가 직접적으로 공격 당해 엄청난 피해를 받았지만, 동시에 높은 전쟁 기여도로 많은 영토를 얻게 되었다. 또한 유럽 내에서는 비교 불가한 군사력을 보유하여 초강대국의 지위에 오른다. 후에 미국과 대립하는 사회주의 세력의 중심 국가가 되어 냉전을 이끈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끝까지 일본에 저항하였고 막대한 피해를 받았지만, 그 공로를 인정받아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공산당 세력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타이완 섬으로 쫓겨난다. 한국에는 ‘대만’으로 알려져 있다. 공산당 세력이 세운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을 계승한 것으로 인정 받으며 상임이사국의 지위도 중화인민공화국이 가져간다.
독일은 나치당이 해산되고 기존 점령한 영토는 모조리 빼앗겼으며 베를린 장벽을 기준으로 나라가 반으로 갈라지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 통일을 성공했으며 경제를 빠르게 회복하여 현재도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전범국이라는 인식을 받게 되었지만 적극적인 보상과 사과를 실천하여 세계로부터 인정 받을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별로 성공한 공격도 없고 연합국에게 공격을 받고선 바로 항복을 해버려서 피해가 비교적 적다. 원래도 전범국 이미지 자체가 별로 없었지만 정치 제도를 현대화하고 기존 식민지들을 포기하며 과거로부터 탈피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현재는 준 강대국 수준의 국력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직접적인 공격을 당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또한 모든 해외 식민지들을 빼앗겼다. 스스로 포기한 것이 아닌 연합국의 요구로 빼앗겼다. 일본 고유의 귀족 제도를 폐지 당하고 서구 방식의 정치 제도로 개편되었다. 하지만 이후에 찾아온 여러 기회를 살려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명실상부 강대국의 지위를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