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석된 예술 - <조커> / 김지윤
2019년, 코믹스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영화가 있다. 바로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조커>. 조커를 본 직후에는 형용할 수 없는 불편함과 찜찜함 때문에 영화가 탐탁치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의 광기와 놀라운 연출, 그리고 신들린 연기가 자꾸 떠올랐다. 역시 호평을 받은 작품답구나. 그런데 왜, 아직도 이렇게 가슴 한 켠이 언짢은 걸까?
그 해답은 영화 밖에 있었다. 바로 관객들이다. 영화에 지나치게 이입하는 사람들, 조커를 우상화 하다 못해 신격화 하는 사람들, 이 시대의 조커가 되고 싶은 사람들... 어쩌다 이 명작은 3류들의 우상이 되어버렸나. 조커의 그릇된 신념을 마음의 등불 삼으려는 그들의 심리는 대체 무엇일까.
나는 이번 평론을 몇번이나 뒤엎었다. 나 스스로도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조커에 대한 우상화를 비판하려 펜을 쥐었다가, 계속해서 흔들렸다. 그를 따라하려는 이들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지 않을까? 내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서사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는 새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비웃으려 든 건 아닐까? 조커가 논란성이 많은 작품임에도 명작이라 회자되는 것은 아마 이런 각 관점의 첨예한 대립과 시사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제 2의 조커를 만들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다. 착하면 호구 잡히는 세상이고,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서 아무리 열심히 살아내도 성공의 기회가 공정히 주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어쩌면 조커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럼에도 조커가 우상화 되고, 너도나도 화려한 각성을 꿈꾸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실제로 자신을 조커라고 여기는 사람들 중 다수는 단순한 나르시시즘, 조커식 정신질환에 대한 동경 등에 버무려져 착각에 빠져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개봉할 무렵, SNS에는 조커 목격담이 많았다. ‘이태원 조커’, ‘학과 커뮤니티 조커’ 등등... 이런 상황들이 처음에는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하지만 사례가 늘어날 수록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나같이 닮아있는 코리안 조커들의 주요 특징은, 행복하지 않은 자신에게 도취되어 굳이 빠져나오고 싶지 않아하는 모습이었다. 정신질환을 미화하고 동경하는 것은 비난하는 것 만큼이나 위험하다. 조사에 따르면, 국내 주요 17개 정신질환의 평생 유병률은 25.4%로 나타났다. 성인 4명 중 1명꼴로 평생에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질병을 마치 자신만의 특이성으로 여기고 도취되는 것은 정신질환을 치료하고자 하고 인식 개선에 힘쓰는 환자, 의사들에게도 민폐이거니와 자신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조커의 행동은 명백히 옳지 못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의 감정선이나 서사에 동화되어 행동까지 따라하려 들었다. 사회로부터 주목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자신의 악함이나 범행을 정당화 하려 드는 것이다.
진짜 조커는 범행의 대상을 위선적인 ‘강자’들로 특정하여 관객들의 죄책감을 덜고 은근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였다. 하지만 자칭 조커들은 강약약강의 표본이었다. 자신보다 약한 자를 타겟삼고 범행을 저질렀다.
그것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N번방 사건의 ‘박사’ 조주빈이다. 텔레그램 박사방을 운영하고, 성인 및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제작하여 유포한 범죄자 조주빈은 말했다. “피디님 보기에 저는 악마입니까?”, “저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자신을 사회에서 도태된 피해자로 포장하고, 스스로를 악마라 표현하며 서사를 구성했다. 조주빈은 악마도 이 시대의 조커도 아니다. 그저 비열한 범죄자일 뿐이다. 그에게 ‘악마’라는 쿨한 별명을 붙여주곤 범죄 이전의 삶을 주목하는 매스컴을 본 전국의 코리안 조커들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런 임팩트라면 나도 한번쯤 해볼만 하겠다는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히진 않았을까.
지금까지 말이 길었지만, 필자는 결론적으로 영화 ‘조커’를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조커의 교훈보다는 외양의 쿨함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성숙해지고, 패션 정신질환에 대한 담론이 널리 퍼지며, 범죄자의 서사를 미화해주는 언론이 사라질 때 조커는 비로소 누구에게나 추천해줄 수 있는 보편적인 명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