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석된 예술 - <조커> / 이지행
영화 조커 속 등장인물 중 아서라는 남자를 아는가?
‘음...조커의 친구였던가? 아니면 직장 동료?’ ...아서가 누군지 싶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아서의 풀네임은 아서 플렉. 빨간 정장에 광대 분장을 하고 초록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한 조커가 될 사람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아서는 어떻게 조커가 되었는가에 대하여 심리학적 용어와 함께 아서와 아서 주변의 심리를 알아보려고 한다.
1. 아서 : “우울한 게 싫어서요” - 우울증 (Depression)
아서 플렉, 그는 광대 분장을 하고 거리의 행인들이나 아이들을 대상으로 일한다. 아서의 또다른 이름은 해피(Happy)인데, 말 그대로 행복이라는 뜻으로 아서의 어머니가 사람들에게 늘 웃음을 주라는 의미로 붙여준 애칭과 같은 이름이다.
타인의 행복을 위하지만 정작 해피의 일상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 우스꽝스러운 광대 분장을 하고, 스탠딩 코미디 쇼에 나가고, 버스에서 만난 꼬마 아이를 웃겨주는 해피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무례하기 그지없다. 길거리에서 만난 광대의 일감(간판)을 빼앗아 망가뜨리고 그걸로 모자라 발로 차고, 한 코미디언의 코미디를 조롱거리와 웃음거리로 만들고.
‘해피’의 삶이 끝난 아서의 모습은 우울로 가득하다. 어쩌면 당연하다. 우울증이 의심되기 때문. 영화속 아서의 퇴근길은 퇴근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암울한 음악이 깔리고 스크린은 전체적으로 칙칙하고 어둡게, 우울한 컬러로 채워진다. 땅바닥을 보고 걷는 것은 우울의 상징적인 모습이며 끝도 없어보이는 퇴근길의 높은 계단은 막막하고 외로운 아서의 현실을 의미한다. 야윈 몸 또한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인 식욕저하의 결과가 아닐까 의심해볼 수 있다.
2-1. 아서 : “ ” - 싸이코시스 (Psychosis)와 망상 장애(Delusional Disorder)
싸이코시스란 현실과 그렇지 않은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정신병이며, 증상으로 환각(Hallucination)과 망상장애를 동반한다.
망상의 정의는 근거가 없는 주관적 신념으로 해당 문화권 안에서 통용되는 논리나 명백한 증거를 내밀어도 교정되지 않는 병적인 잘못된 판단이나 믿음이다.
극 중에서 옆집 여자 소피와 자신이 연애하고있다고 착각하고(환각으로 인해서), 코미디 프로그램 쇼 진행자 머레이를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장면에서 아서의 싸이코시스 증상이 드러난다.
2-2. 페니 : “우린 사랑했잖아요 웨인.” - 색정망상 (Erotomania)과 자기애성 성격장애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흥미롭게도 아서의 어머니 페니에게서도 망상 장애와 같은 결의 정신질환이 보이는데, 바로 색정망상이다. 남성보단 여성에게서 더 흔하게 일어나는 증상으로, (물론, 남성에게서도 일어나며, 그 방법은 스토킹과 같이 더 폭력적이라고 한다.) 주로 연예인, 스타와 같은 유명인사가 자신을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이다.
망상의 근거는 다양하지만, 영화속에서 페니와 웨인이 함께 찍은 사진이 있기도하고, 페니가 웨인의 집에서 일한 적이 있기 때문에 페니 스스로 ‘웨인이 나를 좋아한다’라는 식의 나르시시즘에 빠진 것은 아닐지... 페니가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앓고 있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까 싶다. (애초에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영어로 보나 한국어로 보나 자기애, 나르시시틱이 들어간다.)
3. 아서 : “하하하하하!” - 병적 웃음(Pathological Laughing)
조커 영화를 보는 내내는 물론, 보고 난 뒤에도 드는 의문. 바로 병적 웃음이다. 영화가 주는 메세지도 강한 여운을 남기지만 영화 내내 어딘가 슬퍼보이는 조커의 웃음은 관객으로 하여금 ‘저게 뭐지?’라던가, ‘진짜 저런게 있나?’와 같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실제로 존재하는 이 병적 웃음은 심리적 (즉, 내부적) 요인보다는 신경계 쪽에 (외부적) 요인을 두고있다. 물론 심리적인 요인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3-1 페니 : “늘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렴, 해피.” - 방어기제 (Defence Mechanism)와 반동형성 (Reaction Formation)
심리적 요인으로 (사실 본능적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아서의 병적 웃음을 해석해보자면, 방어기제와 반동형성으로 인한 웃음이 아닐까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방어기제란 받아들이기 싫은 잠재적 불안, 위기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적인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조절한다거나 왜곡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불러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실 부정, 합리화, 승화, 집착 등이 있으며 반동형성도 그러한 방어기제 중 하나이다.
그러면 반동형성은 무엇일까? 반동형성이란, 사회적·도덕적으로 좋지 않은 욕구나 원망을 억제하기 위하여 그 욕구와 정반대되는 성향의 행동을 취하는 무의식적 행위이다. 이러한 반동형성이 다소 순한맛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 나도 모르게 좋아하는 사람에게 못살게 구는 경우이다.
하지만 아서는 순한맛을 넘어 핵불닭맛이나 다름없다. 극 중 아서는 우울하고 분노를 느낄때 조절할 수 없는 병적 웃음을 보였고, 이는 충분히 반동형성으로 인한 병적 웃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미 위 글을 읽으며 느꼈겠지만 지나친 방어기제와 반동형성은 자신조차 속이고 진실된 감정을 받아들이는데 방해가된다. 하지만 누군가의 조언이나 규칙을 따르라고 교육받는 성장기, 자아형성기에 한가지 감정을 강요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 감정’만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박증을 겪게되고 강한 방어기제와 강한 반동형성이 따르게 된다.
불행히도 아서에게 어릴적부터 ‘행복’을 요구한 존재가 있었으니... 아서의 엄마다. 자, 이번엔 외부적 요인이다.
3-2 상담사 : “머리에 큰 외상이 있었어요” -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영화 후반부, 아서는 어머니 페니의 진단서를 보게되고, 자신이 어릴적 학대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당시 페니의 상담사는 페니에게 발견된 아서의 몸에서 영양실조, 멍 자국, 머리 쪽 외상(즉, 뇌손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으며, 이는 PTSD,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의심해 볼 여지가 충분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말 그대로 외부로부터 전해지는 상해 이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앓는 것을 말하는데, 정신적인 고통이나 신체적인 후유증을 동반한다. 후유증 중에는 자율신경계 장애가 있는데, 자율 신경계에 장애가 생겨 웃음을 통제하는 데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웃음을 통제하는 신경계의 장애로 인해 우울하고 화나는 상황만이 아니라 코미디를 하는 상황에서도 시도 때도, 한도 끝도 없이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보면 위에서 언급한 심리적 요인의 증거에 대한 약간의 모순을 느낄 수도 있다. 또, PTSD는 주로 외상 후 3개월 이내에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학대받은 아서의 모습을 말해주는 상담사에게 “우는 걸 못봤어요. 걘 항상 해피한 아이죠.”라는 대답을 한 페니의 말로 보아 어릴적부터 이미 병적 웃음이 진행된 것은 아닌가 싶다.
3-3 상담사 : “그 아이를 입양했잖아요 페니” - 반응성 애착장애 (Reactive Attachment Disorder)
병적 웃음과는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영화에서 엄마인 페니의 존재가 가진 의미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꽤 크다. 후반부 아서가 자신에 대한 엄마의 학대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후에 아서가 엄마를 죽이고 더이상 해피나 아서가 아닌 ‘조커’로 탈바꿈하는 시발점이자 변환점이 된다. 이말인 즉슨, 아서를 조커로 만든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 중 마지막 사건을 만들고 마지막 사람이 된 사람이 바로 엄마 페니라는 것이다.
아서의 코미디는 솔직히, 재미없다. 코미디는 애초에 상대를 어떻게 해야 웃겨줄지, 상대가 무엇에 재밌어할지를 캐치하는 능력이 중요한데, 이런 부분에서의 부족함은 곧 아서의 공감능력 결여를 의미한다. 아이는 양육자의 사랑으로부터 공감능력을 배운다. 그리고 누누히 말하지만, 양육자의 사랑은 없었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어야 하는 존재의 부재. 부재를 넘어서 그 존재가 애정 대신 폭력을 행사했을때, 아이는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지 않나 싶다. 이 점에서 어릴적부터 부모로부터 사랑, 양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가 후에 사회생활, 발달에서의 장애를 겪는 반응성 애착장애 (Reactive Attachment Disorder)까지 던지고 넘어가고 싶다.
4. 독자 : “그래서 무슨말이 하고싶은데?”
심리학적 용어들과 함께 아서가 조커가 되기까지의 심리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았다. 그래서, 이 기사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느냐.
조커를 봤다면 감상 내내 느껴지는 암울함과 답답함, 감상 후에 느껴지는 찝찝함과 불편함을 알 것이다. 허나 이 예술작품에서는 무엇을 바랐을까? 그저 불편하라고? 그저 찝찝하시라고? 물론 그 정도의 의도만 전달되었어도 충분히 성공적일 것이다. 조커를 본 당신의 머리는 꽤나 복잡했고 마음은 꽤나 찝찝했으니까. 그 복잡함과 찝찝함은 모두 사회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었을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고민에서 멈추기엔 너무 아쉬운 감성과 지성을 가졌다. 그러니까 아는대로, 느낀때로 실천하자는 것.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가 당신을 복잡하고 찝찝하게끔 만든 이유는 당신이 할 고민 그 너머에 있을 변화에 대한 기대였다.
자, 조커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아니, 왜 아서는 조커가 되었을까? 필자 역시 참 머리가 복잡해졌고 찝찝했다. 그리고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 ‘이웃하는 삶을 살자’ 이다.
첫 번째로 제시한 우울증은, 옆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해결되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제시한 싸이코시스 증상들은, 좋은 상담사의 공감과 치료가 있었다면 해결되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제시한 병적 웃음은, 주변인들의 사랑이 있었다면 앞에 두글자가 빠진 온전한 웃음이 되었을 것이다.
타인의 이웃이 되어주지 않고, 타인에게 공감해주지 않고, 타인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삶을 산다면, 정말 그런 삶을 산다면.. 그것은 어쩌면 두 번째 조커를 만드는 삶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커가 되는 데에는 그저 재수 없는 하루 정도면 충분해”라는 조커의 대사를 다시 전하며 글을 마무리짓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