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석된 예술 - <힙합> / 장한
You never thought that hiphop would take it this far.
- Notorious B.I.G. 「Juicy」 中
힙합은 20세기 흑인 사회가 품었던 저항과 자아실현의 욕구가 가장 성공적으로 발현된 장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세계적인 대중음악 장르 중 발라드나 포크, 컨트리 등을 제외하면 (심지어 발라드도 어느 정도 소울과 결합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완벽한 제외는 불가능하지만) 모든 종류의 장르가 초기 흑인 음악의 원형인 19세기의 블루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 블루스에서 록과 재즈가 갈라져 나왔고, 다시 록은 백인 음악으로, 재즈는 흑인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재즈에서 또 펑크, 디스코, 소울 등의 장르가 갈라져 나왔고, 그 모든 장르에게 영향을 받아 새로이 등장한 장르가 힙합(with R&B)이다. 그리고 그 힙합은 흑인뿐 아니라 백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모두의 유행으로 등장한 힙합은 어쩌면 그 등장부터 대중음악의 왕좌에 오를 것을 암시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지금의 힙합을 장르로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들 하지만, 1970년대 초 미국의 클럽에서 최초의 힙합적인 사운드(브레이크)가 등장한 이후, 2000년대 초까지 힙합은 크게 세 가지 하위 장르를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 동부 힙합이다. 동부 힙합은 주로 무거운 비트와 비교적 느린 박자에 강한 발음과 함께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는 특징을 가졌고, 대표적인 뮤지션으로는 JAY Z, Nas, Notorious B.I.G. 등이 있다. 이 당시의 동부 힙합은 주로 사회를 비판하고, 기득권인 백인 경찰에 저항하는 형태의 가사를 많이 보였다. 반면 서부 힙합은 동부 힙합보다는 빠르고 가벼운 비트에 가벼운 이야기나 마약, 갱 등의 불법적이고 비격식적인 내용들을 많이 담았었다. 대표적인 뮤지션에는 Dr. Dre, Snoop Dogg, 2Pac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남부 힙합이 있는데, 트랩으로 대표되는 복잡한 더티 사운드와, 클럽 친화적인 단순한 비트와 코드, 그리고 자기 과시와 여성 비하가 드러나는 가사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힙합이라는 장르의 윤리성이 지속적인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남부 힙합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2012년, 음악 방송 채널 엠넷에서 새롭게 선보인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은 힙합이라는 장르를 대한민국 음악 산업의 커다란 축으로 떠오르게 했다. 물론 이전부터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힙합 아티스트들은 있었고, 몇몇 음악은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만, K-pop과 발라드에 희석되면서 2010년대 당시 순수한 힙합은 메이저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쇼미더머니의 성공으로 힙합은 한국 대중음악에서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쇼미더머니와 힙합의 성공은, 당시 특이할 정도로 남부 힙합을 강하게 표방했던 어떤 뮤지션에 의해 일어났으며, 사람들은 그의 음악의 겉모습을 따라 하기 바빴다.
스물하나에는 1억
스물둘엔 거의 2억 그래
스물셋엔 오억 찍고
다섯에는 10억
이젠 여섯이니 더
- 도끼 「111%」 中
쇼미더머니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5년이 지나 엠넷에서는 또 다른 힙합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쇼미더머니와 비슷했지만 대상이 고등학생이었다. 이는 커다란 사회적 충격을 내놓았다. 애초에 미디어에서 미성년자를 등장시킬 때는 어리고 귀여운 모습이나 천재, 영재, 신동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학습적인 내용을 배우는 역할로 등장시킨다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었는데,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청소년을 한 예술 활동의 주체로 불러냄으로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는 거대한 기대를 제작진들이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방영 전과 초기에는 프로그램에 대한 우려가 컸다. 아무래도 힙합이라는 문화가 기존의 대한민국의 문화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쇼미더머니도 부정적으로 본 사람이 많았는데, 거칠다거나 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문화를 법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상업적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즌 1이 끝나고서도 이러한 걱정과 우려는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우려들은 시즌 2와 3을 거치며 잦아들었다. 아니, 오히려 그 10대들이 만들어 갈 문화를 기대하게 만들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너 그리고 날 위해
증오는 빼는 편이야
가사에서 질리는 맛이기에
- 김하온 「고등래퍼 학년별 Cypher」 中
사실 이러한 말을 힙합 뮤지션들은 그동안 이러한 말들을 안 해오긴 않았다. 그들은 비교적 많은 말과 적은 예술을 통해 자신들이 음악을 하는 이유와 자신이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온 순간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동안 힙합 뮤지션들이 자신의 삶에 관해 치열히 고민하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써온 것들은 예술가들(그 뮤지션들)의 대표적인 ‘작품’로서 사람들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본 것은 그들의 표면적인 가사들, 여성혐오와 재력 과시, 그들이 누리는 물질적인 풍요와 그렇지 못한 루저들에 대한 조롱이었다. 그러다 보니 필자를 포함한 힙합 문화에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들이 과연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사 안에 넣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힙합은 겉으로 보기엔 돈, 총, 마약, 여자 그 외엔 아무것도 아니잖아.”
필자와 음악적인 교류를 꽤나 자주 하던, 힙합의 길을 걷고 있는 한 동생의 말이다. 사실 이 말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는 충격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힙합이 고귀했고, 그 자체로 숭고했던 시절의 가사들은 모두 저항과 자유의 의지였다. 그들이 다른 누군가를 일시적으로 비하하는 것도, 그들이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한 것도, 심지어는 그들이 불법적인 행동을 상당히 저질렀음에도 그의 가사를 가지고 지금도 저항을 운운하는 이유는 그 의지가 진심이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들이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였고, 그들이 비하하는 대상은 사회적 다수자이자 강자였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Notorious B.I.G. 의 말처럼, 힙합은 너무나 커졌다. 그러니 그저 아래를 향해 혐오의 말을 내뱉거나 자신의 재력, 능력이나 업적을 자랑하거나 하는 것이 그들의 예술의 최대 목표인 것처럼 보이기만 한다. 그러니 힙합은 지금을 탈피해야 한다. 백인과 흑인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한 가지 음악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뭉치게 해 준 과거와 반대로 지금 누군가를 갈라놓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하면서.
Take a little time 시간이 치료
너무 급한 맘 갖지 않기로
어젠 울어도 오늘부터 웃기로 해
질투 시기보단 사랑을 권해
상처 대신 꽉 안아주길 원해
누군 말해 어차피 사람은 변해
변하는 게 아냐 멋지게 진전해
우리 기분 걸어 와이키키
사진을 찍어 손 V V
서로에 어깨 손 올리지
수능도 날 등급 못 매기지
- 이영지 「따라와 (Feat. 쿠기)」 中
예술의 역사는 사람의 인생과 같다고 생각한다. 어떤 예술은 시작부터 끝까지 고귀하게 대해져 온 예술이 있고, 어떤 예술들은 저마다의 성장의 과정이 있었다. 정말 어두운 면을 뚫고 성장하여 언젠가는 정상에 서서 밝게 비추는 그런 과정 말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었음에도 어린 시절의 상처를 이겨내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불편하고, 모든 것이 어두웠던 예술도 있었다. 힙합은 어떤 위치에 서 있을 것인가가 지금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예술이 예술로서 대접받기 위해 힙합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지금 힙합은 빛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예술적 전성기가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의 상처를 이겨내고 지금 이 자리에 우뚝 선 힙합은, 음악사 중 어떠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인가. 어떠한 방향과 방식으로 나아가든, 결국에는 힙합이 혐오와 논란의 장르라는 오명을 벗고, 하나의 예술로서 자리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