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석된 예술 - <힙합> / 김슬
- 한국이라는 사회 속 힙합의 의미는?
한국 내에서 힙합이 처음으로 인기를 끈 것은 1990년대 초라는 의견이 많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현진영 등이 이때 대중가요를 통해 본격적으로 힙합의 부흥을 불러왔다. 그러나 힙합이라는 장르의 시작은 본래 1970년대 가난과 폭력, 인종 차별에 시달리던 미국의 사회적 약자들이 삶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하고 저항 정신을 표출하기 위해 개척한 것이다. 당시의 가난과 차별 같은 열악한 환경에 대한 대도시 흑인 들의 분노와 저항으로 시작한 만큼, 장르 자체에 미국의 시대적, 환경적 특성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따라서 본토 힙합의 주제인 물질적 쾌락, 또는 억압에 대한 분노 등이 우리나라로 그대로 들어오게 되면 사회적 상황과는 결이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 국내 힙합의 주 소비층은 중산층이므로 열악했던 당시 미국 힙합의 소비층과 거리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힙합이 가지는 그 의미라는 것이 한국이라는 환경에 따라 변화한 부분이 있다.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이의 음악으로, 청소년의 불안이나 사랑 같은 본토와는 다른 주제를 이야기해오기도 했다. 그런데 힙합의 언더그라운드 정신, 그러니까 중산층의 세련된 음악, 방송과 연예계 중심의 활동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에 독자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인디펜던트 정신에 충실한 사람들이 나타났고, 이런 ‘언더’ 정신은 국내 힙합의 상업성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단지 미국의 저항 정신을 표방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음악에 자신만의 주제를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힙합에서 지적되는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다. 가령 2010년대 이후 트랩(trap)이 미국 힙합의 주요 장르로 떠오르면서, 한국에서도 비슷한 곡들이 빠르게 나오거나, 래퍼들이 미국 래퍼들의 플로우나 스타일을 베낀다는 문제가 지목된다.
이렇게 힙합의 고향인 미국과 우리나라의 사회적 괴리감으로 인해 한국의 힙합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힙합의 사회적 위치는 어떤 상황일까?
힙합은 특히 최근에는 젊은 층에서 트렌드를 주도한다. 스웩 (swag)이나 플렉스 (flex)와 같이 힙합 용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만큼 기본적으로 힙합은 젊은 이들의 일상에 그 어떤 음악보다 가까워져 있다. 패션에 있어서도 마치 연예인처럼, 유명 래퍼가 방송에 입고 나온 옷이 마구 팔리기도 하고, 어떤 래퍼들은 의류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한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힙합이라는 것은 표현의 수단이자 동경의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래퍼를 꿈꾸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특히 sns를 통해서도 힙합을 자주 접할 수 있고, 누구나 쉽게 듣고 즐길 수 있다. 그런 만큼 가사의 주제의식이 소비자에게 주는 영향도 만만치 않다고 볼 수 있어서, 앞서 언급했듯 물질적인 쾌락과 날 것 자극적인 가사들이 특히 주요 리스너들인 청소년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분명히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힙합은 맨 처음 장르가 발생했을 때의 사회적 의미와는 멀어졌을 수는 있지만, 굉장한 관심을 받으며 그 나름의 의미와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갈수록 많은 뮤지션들과 리스너들이 힙합이라는 장르에 열광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힙합이 각자의 사회적 맥락에 맞추어 우리만의 힙합, 우리 사회에서 만의 의미를 확립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