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 - 힙합과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

재해석된 예술 - <힙합> / 이지행

by 와이파이






개요-


‘힙합’이라는 단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빠른 랩? 멋있는 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에 앞서 ‘흑인’을 생각할 것이다. 생각해보라, 헐렁한 바지에 자유로운 착장, 스냅백을 눌러쓰고 있는 사람이 마이크를 쥐고 랩을 한다? 아마 대부분의 머릿속에서 그 마이크를 쥔 손은 이미 검은 색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힙합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닌 힙합과 흑인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아니 아예 구조적으로 뗄 이유도 뗄 수도 없는 관계임을 일러두고 싶다.



인종차별이 만연히 일어나던 시절에 대하여-

흑인하면 또 무엇을 빼놓을 수 없는가? 애초에 ‘흑인’이라는 표현을 하는 행위에서부터 우리는 인종차별에 대해 논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을 피부색으로 나누고 어느 피부색을 가진 인종이 더 우월한지를 가리는 일은 매우 오래전부터 시작되어왔다. 굳이 피부색이 아니더라도 어느 대륙, 어느 국가에 가든 각기 다른 이유의 분류와 혐오가 진행되어갔으며, 미국에서는 ‘흑인’이 그 혐오 대상이었다.


1900년대 이전부터 지속되던 인종차별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 결과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서로를 혐오하고 인종을 분리해 차별하는 세력들은 존재하나 과거에 비하면 두말할 것도 없다. 버스 안에서, 길거리에서, 단상 위에서, 차별받던 흑인들은 평등을 외쳤다.



피어나는 예술에 대하여-


인종차별과 혐오가 지속되던 시기에 차별받는 노예, 흑인들 사이에서는 그들만의 문화가 생겨났다. 음악으로는 재즈는 물론 그들의 암울한 현실과 삶을 녹여낸 블루스가 있었고, 카포에이라 같이 춤과 무술 그 사이의 행위도 생겼다. (노예들의 무술 수련을 막자 몰래 춤에 무술을 녹여낸 것)


인종차별 제도가 폐지되었음에도 흑인들의 삶은 고됨의 연속이었다. 거기서 나온 것이 힙합이다. 빈민가 거리에서, 그들만의 문화들은 새롭게 태어났다. 춤, 음악, 미술로 그들의 정서와 삶은 피어났다. 특히 랩은 직접적인 가사로서 그들의 삶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예술로 세상을 바꾸려는 움직임에 대하여-


억압받는 흑인의 현실에 대한 고발은 음악적으로 터져 나왔다. 빌리 홀리데이 (Bellie Holiday)라는 흑인 가수는 ‘이상한 과일’ (백인 무리가 흑인을 집단 구타하고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사건을 은유하는 표현) 이라는 제목의 노래에서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집단 폭력과 차별을 고발하였다.


이후의 저항정신은 힙합이 물려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전설적인 MC로 후자 되는 투팍(2Pac)은 Life goes on이라는 노래에서 사회 구조적으로 빈민가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갱단에 들어가 마약 따위나 팔 수밖에 없는 흑인들의 현실을 위로하면서 “얼마나 많은 형제들이 거리에서 희생되었나”, “갱스터를 위한 천국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절대 범죄행위를 옹호할 수는 없다. 허나 갱스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흑인 친구들을 이야기하는 투팍의 노래에서는 거리의 수많은 갱스터들을 만든 것이 과연 누구인가를 돌아보게 된다.


이처럼 재즈나 블루스를 시작으로 흑인들은 자신들의 억압받는 현실과 어두운 삶을 노래하게 되었다. 특히 힙합은 다른 장르 그 어떤 것보다도 솔직하고, 많은 가사들을 활용해 그들의 삶을 예술로 표현해 갈 수 있게 해주었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과 힙합에 대하여-


인종차별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잊을 만하면 흑인 과잉진압, 유명인의 인종차별 논란이 터지기 일쑤다. 수많은 흑인이 죽어갔으나, 수많은 예술가는 물론 MC들이 마이크를 쥐었으나 최근의 조지 플로이드 씨의 죽음과 같은 안타까운 사건들은 끊이지 않고 우리에게 들려온다.


이번 조지 플로이드 과잉진압 사망 사건은 수많은 사람은 물론, 흑인 음악가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투팍을 비롯한 수많은 리릭시스트들의 가사를 듣고 자란 래퍼들은 바로 플로이드 과잉진압 사망 사건을 풍자하는 뮤직비디오를 냈고 그들의 가사 속에는 분노가 담겨있었다.



Dababy, Roddy Ricch Lil Baby – 반복적인 과잉진압과 무고한 희생자의 발생에 대한 분노


최근에도 빌보드 차트 1위를 찍었던 Dababy와 Roddy Ricch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접하고서는 자신들의 히트곡인 Rockstar에 새로운 퍼포먼스, 분노를 담은 가사를 담아 플로이드에 대한 추모와 현 사태에 대한 분노를 전했다. 그의 뮤직비디오에는 Dababy가 경찰 옷을 입은 사람의 무릎에 깔려 랩을 하는 퍼포먼스가 담겨있었으며 플로이드를 애도하는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빌보드 가수의 분노는 미국 시민들은 물론 전 세계의 힙합 팬들을 움직였다.


Lil Baby라는 래퍼 역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추모하며 흑인에게 가해지는 수많은 폭력들을 고발했다. 또한 흑인은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불합리한 사회를 변화 시키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뜻을 다졌다.

분노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들의 예술은 하나의 기름이 되어 그들의 들불을 키웠다. 특히 필자는 경찰복을 입은 무릎에 깔려있지만 또렷한 두 눈으로 저항의 가사들을 뱉어내는 Dababy의 퍼포먼스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XXXTENTACION – 분노의 올바른 표출 형태에 대한 냉철한 고찰

Dababy를 비롯한 수많은 래퍼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들을 행동하게 만들었다. 허나 모두가 알다시피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움직임이 있었는가 하면 어떤 군중들은 분노와 광기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고 폭동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였다. 수많은 상점들이 털리고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저 정의롭지 못한 분노 표출로 인해서.


정의가 없는 힘은 폭력에 불과하다. 분노는 매우 뜨거운 불덩어리와 같아서 조금은 이성적이게, 신중하게 표출해야 한다. 허나 앞서 말했듯 적지 않은 지역의 군중들은 그 분노를 폭동으로써 표출했고 그 누구에게도 기분 좋지 못한 모습들을 보였다.


인종차별 사건에 연계되어 일어나는 폭동은 비단 플로이드 사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평화로운 시위가 있었던 반면 다소 폭력적이고 왜곡된 분노 표출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EMO 힙합(Emotional Hip Hop)을 대표하던 래퍼 XXXTENTACION은 과거 자신의 노래 Riot에서 분노는 어떤 형태로 표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냉철한 시각을 제시했다. 그의 랩에서는 “이건 장난이 아니야, 성숙해져야 해”, “난 네가 턴 가게를 본다고.”와 같이 분노에 이성을 잃고 폭동을 일으키는 군중들에게 차가운 이성을 잃지 말라고 지적한다. 비록 플로이드의 죽음보다 더 앞선 2017년에 발표된 곡이지만 현재의 상황에 빗대어보아도 전혀 손색없다.



힙합의 역할에 대하여-


앞선 두 경우만 보아도 음악은, 특히 힙합은 그 장르의 특성과 매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물론 몸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Dababy와 같은 래퍼의 음악은 부조리한 사회를 지적하고 시민들을 움직이게 하였다. XXXTENTACION과 같은 래퍼는 움직이는 군중들의 분노는 어떤 형태로 표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냉철한 시각을 제시하였다. 힙합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가만히 침묵하던 사람들을 순식간에 움직일 수도 있고, 이성을 잃은 군중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시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힙합은 어떤 역할을 해내야 할까? Dababy와 같은 아티스트가 있는가 하면 XXXTENTACION과 같은 아티스트도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고 XXXTENTACION과 같은 아티스트는 적더라도 큰 파장을 줄 수 있는 아티스트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힙합은 장르의 특성상 억압받는 이들, 또 10~20대와 같이 젊은 나이 층이 소비하고 성장시키기 마련이다. 힙합은 아직 미성숙한 시각, 또는 아직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예술을 소비하면서 더 넓은 시각, 더 이성적인 잣대를 가질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 Dababy가 사회를 고발하며 예술을 소비하는 이들을 움직였듯, XXXTENTACION이 이성적인 잣대를 잃지 않게끔 예술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충고하였듯 힙합은 장르의 무한한 스펙트럼을 활용해 예술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어야 한다.


물론, 심장을 쿵쿵 뛰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비트는 영원한 필수 준비물이다. 평소 힙합을 많이 소비하는 (사실 거의 편식 급이다) 힙합 마니아로서 힙합이 수많은 이들의 심장을 쿵쿵 뛰게 할, 또 올바른 방향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는 예술이 되어 영원하였으면 한다.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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