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석된 예술 - <힙합> / 김지윤
국내힙합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라면 한 번쯤 꼭 보았을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쇼미더머니와 고등래퍼 시리즈. 경연 곡 하나 하나가 발표될 때마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래퍼의 노래를 그 주의 SNS 스토리, 카카오톡 상태메세지에 올려놓곤 한다. 그만큼 힙합 판이 10대 사이에서 커졌고,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힙합이라는 장르는 정말이지 매력이 넘친다. 한창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추어가는 10대들에게, 자신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사회에 대한 불만을 SWAG 있게 표출하는 힙합은 참으로 멋있게 느껴진다. 게다가 힙합으로 성공한 가수들의 패션이나 일상은 ‘힙’ 한 것으로 표현되며 트렌드의 선구자로 떠오른다. 그러나, 이렇게 때론 격렬하고 때로는 서정적이게, 다양한 비트와 가사로 우리의 가슴을 끓게하는 힙합에도 커다란 맹점이 있다. 바로 혐오이다.
힙합은 그 많은 음악과 예술들 중에서도 유난히 혐오와 관련된 논란이 많다. 멜로디보다는 가사를 이용해서 내용과 느낌을 전달하는 노래 특성상, 타 음악장르들보다 유난히 혐오표현이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편이다. 또, 힙합은 많은 면죄부를 가지고 있다. 솔직한 게 매력이라서, 억압받지 않고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장르라서, 원래 시대를 앞서나가는 사람은 비판받기 마련이라서 등등... 까닭은 이토록 다채롭지만 그 중 무엇도 혐오가사를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부분이 어쩌면 유머이다. 이런 혐오적 가사는 보통 덜 대중적이고 마니아층을 팬으로 둔 ‘언더그라운드’ 힙합에서 주로 등장하지만, 때때론 공중파 방송에서도 송출되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 대표적 예시로는 월경을 하는 여성을 비하하고 조롱한 오빗의 ‘피싸개’ 라는 곡,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와 비방을 적나라하게 담은 일베 가수 브로의 ‘폭동기억’, 특정 가수의 실명을 거론하며 외모를 비방하는 등 성희롱 가사를 담은 블랙넛의 ‘인디고 차일드’ 가 유명하다.
본래 힙합이라는 장르는 그 어떤 타 음악들보다도 진취적이고 새 것을 추구해왔다. 그런데 왜 요즘 힙합은 랩핑 스타일과 비트가 새로워지는 만큼 가사도 함께 새로워지지 않는 걸까. 그래도 요샌 많이 변했다며, 예전보다는 혐오표현이 순해졌다며 우리같은 리스너들은 쏟아지는 논란을 어떻게든 중화시키려 가수가 그럴 수 밖에 없었을 배경을 상상하고 자기합리화를 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현재 힙합씬의 주류들은 여전히 여성을 트로피처럼 표현하고, 라이벌 래퍼의 여친 속옷을 벗긴다는 내용을 타이틀 곡에 삽입하며, 온몸에 돈과 명품을 바르고 다니는 자신을 부풀리는 자기과시성 랩들을 사랑한다. 국내 힙합을 사랑하는 리스너로서, 그리고 인권에 관심이 있는 학생으로서 이는 참으로 안타깝고 화가 나는 일이다. 힙합씬은 혐오표현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걸까? 사랑이나 청춘을 노래하는 힙합의 수요가 점점 늘어감에도 불구하고 왜 가부장적 시대의 잔재가 포함된 랩들은 수명이 다하지 않는 걸까? 또, 이런 혐오가 만연한 장르의 중심에서 활동하는 여성래퍼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일단 혐오표현 이야기에 계속 포커스를 맞춰보자면, 최근의 힙합 가사는 그 사정이 비교적 나아진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에 따르면, ‘쇼미더머니’ 시즌 2에서 시즌 7까지 음원사이트 ‘멜론’을 통해 발매된 111곡 중 19건(약 17%)의 여성비하 표현이 사용됐으며, 단순 욕설이 포함된 곡은 절반에 해당하는 56곡(50.45%)으로 나타났다. 한편 2019년 방영된 시즌 8의 경우 33곡 중 3곡에서 단순 욕설, 1곡에서 장애인 비하 표현이 발견돼 혐오 표현이 약간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표면적으로 줄어들어 보인다고 해도 반성이나 제대로 된 논의를 거쳐 줄어든 것이 아니라면 지금은 그저 잠깐 잠잠해진 것 뿐이다. 하도 논란이 많은 이슈이다보니, 언급했다가 괜히 도마 위에 오를까봐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김수아 교수는 “남성 플레이어들 중에서 남성 역차별론 등의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 정서로 무장하고 일부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페미니즘은 나쁜 것’이라고 습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페미니즘 안에는 정말 무수히 많은 형태가 있고 양상이 있다. 따라서, A가 생각하는 페미니즘과 B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각각 다른 것이 보통이다. 이런 와중에 유튜브처럼 공신력 없는 채널을 통해 가치관을 형성한 젊은 래퍼들이 가사에 한 가지 관점의 페미니즘을 그 이론과 운동의 전부라고 착각한 채 비난하고 여성 혐오적인 표현을 마구 담아버리면,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리스너들 또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공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간과하는 명백한 문제이며 여성인권 후퇴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일이다.
여기서 분명히 할 점이 있다. 사람들은 ‘여성혐오’ 라고 하면 보통 여성을 말 그대로 혐오하고 싫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에 대한 지적을 듣게되면 당황하여 ‘난 여자 좋아하는데?’, ‘내가 여자인데 무슨 여성혐오야?’, ‘난 우리 엄마랑 누나, 여친 사랑해!’ 하고 대꾸하곤 한다. 단순히 여성을 싫어해서 차별성 범죄를 저지르고 대놓고 폭력적인 언사를 하는 것만이 여성혐오가 아니다. 여혐에는 굉장히 많은 사례나 종류가 있다. 자신도 모르는 새 툭 튀어나오는 멸시, 성에 근거한 능력 폄하, 성적 물화나 극단적인 신성화(성녀화) 등이 그 예시이다. 요즘 힙합씬에서 자주 나타나는 여성혐오는 주로 성적 물화로 드러나는데, 이것이 힙합 속에 다량으로 스며들어있는 이유는 바로 성적 물화나 대상화는 자칫 보면 주체적 섹시함으로 포장될 수 있고, 그저 ‘힙’하고 개방적인 감성으로 여겨질 수 있으며, 상대 여성도 원해서 그런 것이라고 합리화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더 깊은 이야기는 여성을 성적 물화하는 래퍼들의 사례와, 그 속에서 크고 작은 차별을 겪으면서 꿋꿋이 입지를 굳혀가는 여성 래퍼들을 본격적으로 다루며 설명하겠다. 우선, 평소 힙합에 관심이 없었던 여러분을 위해 몇가지 예시를 준비했다. 아래 가사들은 논란이 되었던 여성 물화 가사들이다.
“니 여친 집 내 안방, 난 절대 안 가 깜빵, 내 변호사 안전빵" – 김효은
“기침 기침 하게 만드는 여자들 차림 다 비침 비침/ 여자는 최고의 선물이야 선물이야" – BTS
“다 생각할걸 놈들 대부분 나도 고딩 때부터 막 그랬어 넌 고딩 때부터 달랐어 열아홉이었을 때도 엉덩인 꽤 두꺼워 좀 벌려봐 나 이제 잘 벌잖아 소녀 소녀 소녀 소녀" – 창모
이 가사 안에서 여성을 욕하고 비난하는 내용이 있는가? 아니, 없다. 오히려 여자는 최고의 선물이라며, 언뜻 들으면 칭찬같은 말을 늘어 놓는다. 하지만 저 말들이 과연 칭찬일까? 절대 아니다. 칭찬일 수가 없다. 저런 표현들은 여성을 자신처럼 생각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분노하는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스웩을 과시하고, 돈을 벌고, 명예를 얻으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부산물로 지칭하며, 똑같은 존엄성을 갖고 있지 않은 존재로 타자화한다. 이런 힙합씬 안에서 여성 동료들이나 여성 팬들은 창녀 또는 성녀라는 프레임 속에서 극단적으로 분류된다. 아래의 가사는 여성 래퍼들이 이러한 타자화와 능력 폄하를 견디며 자신에게 돌아오는 차별과 편견을 디스하고 문제로 제기한 가사들이다.
"넌 말했지 여자래퍼 수명 3년이라고“ - 재키와이
”뱀 뱀 뱀들의 선악과 따먹고선 버리네/ 난 인간 창녀도 성녀도 아니네“ - 재키와이
”dick 들의 게임 그걸 바꾸라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right” - 하선호
“여자 Sandy 말고 사랑해줘 my voice” - 하선호
재키와이와 하선호는 모두 각종 랩 컴퍼티션과 프로그램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내로라 하는 래퍼들에게 협업 제안을 받는, 메이저 래퍼 반열에 오른 뮤지션들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도 차별의 잣대를 피해가지 못했다. 재키와이가 피처링에 참여한 곡이 업로드되면, 기사 코너에는 어김없이 ‘재키와이, 한 줌 개미허리에 아찔한 섹시미(중도일보)’, ‘재키와이, 앙상하게 여리함... 분위기 물씬(공유경제신문)’ 같은 조회수 몰이성의 글이 올라오곤 한다. 하선호도 마찬가지다. 하선호는 고등래퍼에서 활동하는 동안 각종 힙합 커뮤니티에서 뮤지션 sandy가 아닌 약방의 감초, 칙칙한 공간 속 한송이 꽃 등으로 지칭되었다. 또, tvN의 한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개그맨 장동민에게 ‘(목걸이) 원해요? 전 전화번호 원해요. (자신은 미성년자라며 번호를 주지 않자) 탈락 드리겠습니다.’ 라는 불쾌한 발언을 들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천불이 날까. 더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애쓰고 노력해서 딕션을 개선하고 보이스를 관리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해도, 기사와 여론은 언제나 그들의 성형 여부와 몸매 근황, 인스타그램 피드 등에 먼저 주목한다. 우리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힙합을 공평하게 귀로만 평가한다고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새에 여성래퍼를 볼 때는 외형을 먼저 살피고 있지 않는지 스스로 점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쟤는 얼굴도 예쁜데 랩도 잘하네’ 라거나, ‘쟤는 컴백기간에 보톡스를 맞았나 얼굴이 왜 저렇냐’ 라거나.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너무나도 억울할 법한 말들을 이 나라의, 이 힙합씬의 여성 뮤지션들은 매일매일 들으며 살아가고 있다.
자, 지금까지 글을 읽은 독자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힙합을 언제나 검열하자? 페미니즘을 지금 당장 마음 속에 새기고 비판도 의심도 하지 말아라? 혐오표현에 더 민감해지자? 여성 래퍼의 작업물은 무조건 찬양하고 옹호해라? 아니다. 이렇게나 많은 문제가 존재함에도, 힙합은 리스너들의 비판과 뮤지션들의 각성을 겪으며 차근차근 변해가고 있다. 필자는 지금의 힙합씬에서 자주 나타나는 여남 대립구도나 각종 갈등들이 힙합이 더 멋지고 평등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데에 꼭 필요한 요소이며, 현재는 약간의 과도기적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무리들은 요즘 힙합에 새롭게 도입되어가는 페미니즘적 관점이 너무도 예민하고, 창작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지금껏 힙합씬이 성차별과 여성혐오에 지나치게 둔감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차별이 없었더라면 페미니즘도 없었다. 우리는 이런 모든 것을 고려하여 힙합을 즐기되 검열하고, 각종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누군가를 향한 혐오가 표현된 랩은 아무리 귀에 꽂히더라도 가급적 음원을 구매하지 않아야 한다. 또, 다양한 형태의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우리의 문화와 ‘힙’함 속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을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글은 여성 래퍼의 음악을 무조건 신격화하고 ‘걸크러시’ 라며 떠받들자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음악에 진심을 다하는 뮤지션들에 대한 모욕일 수 있다. 실제로 재키와이는 자신에 인스타에서 ‘저를 특별한 여성 인권 운동가라고는 생각하지 말아달라. 대부분이 남성인 동료들과 저를 이분법적으로 가르고 서로의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저를 오히려 이 씬의 아웃사이더로 만든다. 저는 우선 한 명의 아티스트이다.’ 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여성 래퍼의 음악을 남성 래퍼의 노래와 동등히 바라보고, 다른 음악들처럼 평범한 비판과 칭찬을 받을 수 있게 우리의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무대에서 입은 크롭탑과 립 컬러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기보다는, 벌스의 완성도와 비트의 매력을 찾아 칭찬해주고, 그날따라 가사를 틀리는 모습을 보이면 ‘여자치곤 괜찮았다’ 는 말 대신 ‘오늘은 아쉬운 무대였다. 다음부터는 더 멋진 무대 보여달라’ 라는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리스너들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혐오없는 랩을 듣고 즐기고 싶다. 자신을 돈 여자 명예로 과시하지 않고도, 사람 자체에서 VIBE가 흐르는 래퍼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슬릭이나 김하온처럼 살아있는 것들에게 최대한 상처주지 않는 힙합을 ‘힙’ 이라고 부르고 싶다. 2019년, 이영지의 고등래퍼 우승. 혼성 힙합 대결 프로그램 최초의 여성 우승자인 그의 경연곡은 세상에 이렇게 외친다.
“바래 모두 내가 정상에 서길 그 바람대로 다 이룰 거고 to the next level”
“WE GO HIGH”
힙합은, 여성들은, 더 위로 향할 것이다. 자신들의 이름 앞 ‘여성’ 이란 수식어가 사라지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