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데모) 돌아보기 2) 1980~2020

문화 돌아보기 / 김재헌

by 와이파이

4. 대학교에서의 학생운동의 문화와 6월 항쟁.

1980년대는 대학교에서의 학생운동이 제일 활기를 띄었던 때이다. 20년가량의 장기간의 군부 독재로 인해서, 대학생들은 사회주의적 혁명이 장기간의 독재를 끊을 수 있는 직접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생각 속에서도 여러 가지의 계파가 나눠지게 된다. 이들 중 대표적인 두 계파의 이름은 national liberal(민족 해방), people’s democracy(민중 민주) 계열로, 이들을 각각 줄여서 NL, PD 계열이라고 부르게 된다.


비교를 하자면, 이 중에서 NL 계열은 반미, 민족주의 계열로 볼 수 있으며 PD 계열은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라서,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가져야만 근본적인 체제의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모두 마르크스 이론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당시 신군부 정권에 개선을 바라던 지점은 일명 ‘체육관 선거’로 불리는 간접 선거로, 여당 선거인단이 약 90% 가량을 차지하는 간접 선거에서 대통령이 임기 유지에 실패할 확률은 없기에, 이는 곧 전두환의 측근들 간의 사실상의 세습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과도 같다.


1987년 1월, 서서히 불어오는 민주화의 바람 속과 반대로, 24살의 한 학생은 어두운 남영동의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박종철으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경찰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에 연루된 선배의 행방을 알기 위해서 평소 지인이던 박종철 군을 강제로 체포 후 조사했으며, 약 하루간 계속된 고문 끝에 체포 다음날인 1월 14일 사망하게 된다. 경찰 측의 발표에서는 그 유명한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라는 망언이 나오게 되었고, 결국엔 고문에 의한 치사 사건이라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전두환은, 임기의 끝자락인 1987년 4.15 호헌 조치를 내리게 된다. 즉 법을 개선할 아무런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선언은 정권에 대해 가지고 있던 반감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촉발시키게 된다. 선언의 시기가 대학교의 개강과 맞물리게 되면서, 전국 각지의 대학에서는 전과 다른, 유례없는 시위가 일어나게 된다.


주요 대학의 총학생회에서는 연이어 대대적인 데모, 시위를 준비했으며, 역시 군부 정권의 반발도 거셌다. 역시 6월 9일 연세대에서도 시위가 일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원래는 공중으로 발사되어야 할 최루탄이 실탄 사격과 같이 각도를 낮춰서 발사하면서 연세대학생 이한열이 큰 부상을 입게 된다. 결국 이한열 열사는 약 한달 가량의 치료 끝에 숨을 거두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서 마치 영화 에 나오듯 나이와 직업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다.


앞서도 말했듯이, 전두환은 그의 후계자 작업을 진행중이었으며, 이대로라면 자신의 세력도 실권할 위기에 취하자 정권의 2인자인 노태우와 협의를 거쳐 6.29 선언문을 작성하게 된다. 선언문의 가장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 1988년 2월 평화적 정권이다.3. 김대중의 사면복권과 시국관련사범들의 석방.
기존의 대통령 선거 방식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꾼다는 점에서, 1971년의 직선제 선거 이후 16년만의 직선제 선거가 열리게 된다는 의의가 있으나, 비교적 여론의 눈치를 많이 본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신군부의 전략은,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가 승리를 거두며 어느 정도는 효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5. 촛불집회의 시작, 미군 장갑차 중학생 압사 사건 & 이명박 정권 당시의 촛불집회

전반적으로 뜨거웠던 1980년대와 다르게, 1990년대에는 여러 가지 영향으로 인해, 사회적 변화의 바람이 사그러들게 되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영향을 찾자면 주로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대학가에서 프락치 사건으로 대표되는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 영향을 꼽을 수 있다. 프락치라는 용어 자체는 파벌을 숨기고 다른 집단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실제 경찰 측에서도 여러 노동운동 단체나, 각 총학생회 단체에 잠입해 그들의 동태를 살피는 일이 있었기에 실제 프락치를 잡아내는 일도 몇 있었다. 하지만 프락치를 잡아내는 사건의 대부분에서는 자신이 프락치라고 자백을 할 때까지 고문을 했으며, 이러한 고문의 형태는 운동권 세력이 끔찍하게도 싫어하던 경찰의 고문 방식과 같은 모습이었다. 당연하게도 고문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사망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과격한 운동권에 대해서 고개를 돌린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992년부터 군대 출신이 아닌 인물이 대통령이 되면서 생각보다 조속한 민주화의 과정이 이루어졌으며,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성수대교 붕괴 사건, 1998년 외환 위기 사건] 등의 일들로 인해 기존보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의 형태가 기존과 달라졌기 때문에, 이와 같은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 시위(데모)의 형태가 전체적으로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 일어난 시위는 이전과 다르게, 동적인 부분이 많이 사라지고 정적인 부분이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노동자 / 대학생 등의 구분이 사라지고, 국민이라는 연대 속에서 집회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형태는 촛불 집회라는 새로운 형태를 통해서 나타나게 된다.


2002년 일어난 사건으로, 우리가 흔히 ‘효순이, 미선이 사건’ 이라고 부르는 [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은 변화된 시위의 형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6월 13일 양주시에 있는 56번 지방도 에서, 미군 장갑차가 당시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신효순, 심미선 양을 치고 가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이 문제는 당시 한일 월드컵의 열기에 가려져 공론화가 되지 않았지만, 양주시 주위에서 일어난 지속적인 촛불 집회가 이어졌으며, 또한 11월 가량이 되어서는 미국 법원에서 당시 장갑차를 운전한 운전자에 대한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점과, 주한 미군에 대한 일차적인 판결권은 미국 법원에 있다는 점 등에서 사람들은 분노했으며 또한 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두 번의 정권이 바뀌고 최초 기업인 출신인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2008년,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이후 중지되었던 미국산 소고기의 재수입에 대한 내용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때 4월에 발표된 내용 중에는 미국에서 소해면상뇌증(광우병) 이 다수 발생하더라도, 대한민국 정부는 임의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 여러 tv 프로그램과 언론사들은 연이어 비판을 쏟아냈고, 이 중에는 일부 왜곡된 사실도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사건의 본질 자체는 ‘광우병 발생시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기에, 5월 초부터 점차 많은 사람들이 청계광장으로, 그리고 광화문 광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으며, 1987년의 6.10 민주항쟁을 기리기 위해 기획된 6월 10일 광화문 시위에서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에 대해 경찰은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서 청와대 쪽으로 행진하려는 인파를 강제로 막았으며, 이는 당연하게도 현재 ‘명박산성’ 이라는 이름으로 이명박 정권의 대표적인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후 6월에 미국과의 추가적인 협의를 통해서 최종적인 합의를 하며 불길은 점점 사그라들었지만, 한편으론 임기의 끝자락도 아닌, 초반에 거론되는 ‘탄핵’ 이라는 말과 촛불집회는 이명박 정권을 더욱 긴장 상태로 만들었을 것이다. 광우병과 관련해서 과장된 방송과 기사가 있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누구 한 쪽이 잘했다는 식으로의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시위의 현대사에 하나의 족적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6. 박근혜 정권 당시의 촛불집회와 현재의 평가.

여러 가지 말이 많았던 이명박 정권이 끝나고, 18대 대선에서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에 소속되어 있던 박근혜 씨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경제 발전에 크게 공헌한 바가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에서 많은 국민들의 기대를 안고 대통령이 되었던 인물이다. 이러한 기대에 반해, 그가 임기 중에 보였던 모습은 많은 국민들의 실망을 안겨주었다. 재임 후 1년이 지나 세월호 사건에 대해 미흡한 대처, 그 중에서도 사건이 발생한 10시 가량부터 공식 기자회견에 등장한 5시 15분까지, 약 7시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는 지점에서 큰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2016년, 그렇지 않아도 삐걱거리던 정권에 하나의 ‘스모킹 건’ 이 쏘아올려지게 된다. 박근혜 씨의 비서이던 정윤회 씨와 관련된 의혹부터 시작해서, 각각 문화재단과 스포츠재단의 명목으로 있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여러 대기업들이 후원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된다. 이후 정윤회 씨의 딸인 정유라에 대한 부정입시 의혹과 함께, ‘박근혜 탄핵’ 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오게 되는 계기인 최순실 씨의 태블릿 pc가 입수되면서 국정농단의 직접적인 증거물이 수집되자, 국민들은 지금까지 쌓아온 정권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게 된다.


이후의 내용들은, 모두들 알듯이 11월 광화문 광장에는 약 232만명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으며, 이에 대해 국회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12월 9일 국회의원 300명 중 234명의 인원이 탄핵에 동의하면서 정족수 2/3을 넘어 가결되었으며, 최종적인 탄핵심판은 헌법재판소로 옮겨지게 된다. 다음해 3월 10일, 8명의 재판관은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 재단을 이용한 사적 이익의 추구, 이외의 법률 위비행위 등을 그 근거로 들어 만장일치로 피고인 박근혜를 대통령의 위치에서 파면하게 되었다.


필자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비교적 같은 나이의 보편적인 기준보다는 많은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직 미취학아동의 신분에 있을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광우병 반대 촛불집회에 나갔고, 중학교 1~2학년에 걸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도 [박근혜 탄핵!] 이라는 손팻말을 들고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간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시내에 나갈 때마다 각자 다른 주장을 하는 여럿의 시위대를 마주치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필자는 자유로운 정치적인 참여 활동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고, 하나의 의무로 여기고 있었다. 명색뿐인 표현과 집회의 자유가 아닌, 실질적인 개선은 이루어진 것이 꽤나 가까운 시일이었음에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낀다. 마지막 문장은 많이 들어보았을 테지만, 전문을 쉽게 접해보지는 못했을 글을 하나 첨부하며 이번 글을 마무리하겠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이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한다."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역사는 무궁무진하다. 그 누구도 정확한 시작의 시점을 정할 수 없으며, 또한 그 누구도 역사의 종말을 예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마치 거대한 바위와도 같은 일들을 파헤쳐가며, 또 세세한 분류로 쪼개려고 하는 일의 의의는, 멀거나 비교적 가까운 하나하나의 사건이 현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의 맥락으로 이 기사를 쓰게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혹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어떻게 해서 변하였으며, 우리에게 오게 되었는지 알기 위한 취지에서 이 기사를 처음으로 기획했다. 글을 관심깊게 살펴봐주신 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럼에도 잠깐이나마 이 기사를 스쳐가기라도 했을 우연한 분을 위해 간단한 말을 남긴다.



출처 :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3245362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4703https://ko.wikipedia.org/wiki/4.19_%ED%98%81%EB%AA%85http://theme.archives.go.kr/next/economicDevelopment/overview.dohttp://www.law.go.kr/lsInfoP.do?lsiSeq=4963&mode=3#000

도서 전태일 평전 - 조영래. https://ko.wikipedia.org/wiki/YH_%EC%82%AC%EA%B1%B4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075000/2001/021075000200102140346036.htmlhttp://www.518archives.go.kr/?PID=003 (5.18 재단)https://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93700 (서울역 회군 관련 기사)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C%A2%85%EC%B2%A0_%EA%B3%A0%EB%AC%B8%EC%B9%98%EC%82%AC_%EC%82%AC%EA%B1%B4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http://www.518.org/sub.php?PID=030003&page=&category=&searchText=&searchType=&action=Read&idx=6 (5.18 기념재단 / 진상규명과 왜곡 대응)https://www.yna.co.kr/view/AKR20161213167900060 (대한민국 ‘촛불 민주주의’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A%B7%BC%ED%98%9C-%EC%B5%9C%EC%88%9C%EC%8B%A4_%EA%B2%8C%EC%9D%B4%ED%8A%B8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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