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Media-te / 장한
inter : [라틴어] 사이에, 틈에, 가운데에
media : [영어] 미디어
te : [라틴어] 너, 당신
당신과 미디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 열광하고, 혐오하며, 존경하고, 무시하는 과정들. 어린 눈으로만 바라보던 세상을,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시기, 지금 우리는 초급자도, 상급자도 아닌, 중급자들이다. 초급자를 향한 배려도, 상급자가 가지는 능숙함도 없는 불친절 속에 스스로 성장하려 노력하는 우리들에게, 조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미디어는 우리를 어떻게 만들어왔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져가고 싶은가. ‘나’라는 인격의 주체로서, 자신만의 눈과 귀를 가지는 수신자로서.
「미디어는 청소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분명 어디선가 많이 본 질문이다. 국어 교과서인지, 사회 교과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그때마다 토론 비슷한 것이 열린 것 같은데, 아마 항상 똑같은 얘기였을 것이다. ‘미디어는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준다.’, ‘미디어는 중독의 위험이 있다.’, ‘미디어는 우리의 정신적 건강에 도움을 준다.’ 등등. 그렇게 열심히 토론을 진행하고 결국 결론은 ‘미디어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라니. 이렇게 당연한 말로 시작해서 당연한 말로 끝났던 수업들이 기억난다. 큰 도움은 되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좀 헷갈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전의 수업들에서는 ‘올바른 사용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에서 끝나버려서 ‘올바른 사용’이 뭔지를 몰랐다. 디시인사이드는 뭔지, 게임이 정말 폭력성을 유발하기는 하는지, 대체 무엇까지 성 상품화라고 봐야 하는지. 해가 갈수록 지식은 늘어나는데 제대로 써먹기는 너무 어려웠다. 분명 미디어를 사용할 줄은 아는데 과연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 혼란스러움을 조금이라도 해결하고자, 이번에는 너무나 뻔한 찬반 토론의 근거들은 잠시 치워두고, 좀 더 현실적으로, 자세히, 조금은 있어 보이는 말들로 논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참여했던, 그 설문조사의 결과와 함께, 우리에게 맞는 이야기들로 말이다. 그렇게 출사표를 던지는 이 글 위에 올라갈 첫 번째 주제는, 「방송 미디어」이다.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방송 미디어에 대한 확실한 정의는 해놓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글에서 방송 미디어란 지상파 또는 케이블 방송을 통해 각 단말기로 송출되는, 동시적 속성을 가지는 영상 미디어를 말한다. 격식을 내려놓고 말하면 그냥 TV를 틀면 나오는 것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방송 미디어라는 것이 청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약 한 달간 진행했던 설문조사의 통계를 공유하려고 한다. 이 설문조사는 미디어의 부정적 영향과 종류별 미디어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진행되었으며, 참여한 인원은 중1~고2 중 141명으로, 전체 집단의 약 40%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차트를 보면 방송 미디어가 혐오 표현, 차별과 관계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아주 적으나, 고정 이미지와 관계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7.1%로 각각 66.1%와 36.9%인 인터넷 미디어와 게임 미디어보다 많았다. 설문조사에는 고정 이미지를 ‘청소년은 ~이어야 한다 등의 뉘앙스’로 정의했으며, 이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71.6%에 달했다. 또한, 방송 미디어에서의 고정 이미지 경험은 다른 미디어와는 다르게, 장르나 정보 내용에 따른 부정 응답의 차이가 4개 미만일 정도로 모든 항목(예능, 교육, 영화&드라마, 음악방송)에서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응답되었다. 참고로 인터넷 미디어나 게임 미디어에서의 장르에 따른 응답 간 간극은 최대 80개 가까이에 이른다. 그러므로 이는 미디어 중, 특히 방송 미디어에서 올바른 청소년의 모습이 특정한 한 가지로 정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단일화와 사회적 규범 형성은, 미디어가 가지는 사회적 기능 중 하나인 ‘사회유산 전수 기능’에 속한다. ‘사회유산 전수 기능’이란, 특정 사회의 규범, 가치관 등을 다음 세대나 새로운 구성원에게 전달함으로써 사회 통합과 구성원 결속에 공헌하고, 구성원들에게 교육적 정보를 제공하며, 선행과 악행을 구성원들에게 각인시킴으로 도덕적 규범을 확립하는 기능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에게 주관적인 올바름을 주입하고, 이를 따르도록 하는 기능이다.
사회유산 전수 기능이 필요한 이유는, 단순한 도덕적인 옳고 그름을 넘어서, 사회의 원활한 운영과 평화, 발전을 위해 각 구성원들에게 부과되는 추가적인 책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발생되는 피해들(환경파괴, 간접흡연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또한 이로 인해 발생하는 미디어의 힘은 때때로 법률이나 규칙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데, 매우 공적인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제정 및 행정이 이루어져 공식적인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법률이나 규칙과는 다르게, 사회적 규범은 매우 사적인 공간에서 은밀하게 규제되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분란을 조장하는 등의 행동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강력한 사회적 힘은, 그 힘의 크기만큼의 역기능을 낳기도 한다. 많은 독재자들은 진실을 말하는 미디어인 언론을 장악하면서 민중들의 저항의지를 소멸시키려 했다. 그리고 그 억압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이 바로 미디어의 사회유산 전수 기능이다. 단일화, 규범화를 지향하면서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고, 그 규범에 대한 문제제기마저도 어렵게 만드는 이 거대한 힘은 독재를 정당화하고 오랫동안 유지하기에 너무나 매력적인 도구였다. 그리고 이 힘은,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독재의 도구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렇게 발생된 사회적 규범을 통해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작용하는 미디어의 효과가 바로 제 1자, 제 3자 효과이다. 제 1자 효과란 올바름을 강조하는 미디어의 메시지에 많은 사람이 ‘나는 저 의견에 동의하며 잘 따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이고 제 3자 효과는 자극적이고 설득력 있는 미디어의 메시지에 ‘나는 저 의견을 비판적이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저 메시지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이다.
가령 껌을 씹는 행위가 문화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사회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껌을 씹지 말자는 공익 광고를 보며 ‘나는 껌을 씹지 않을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과연 저 메시지를 나처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일까?’하는 생각을 가질 것이고, 껌을 씹어대는 액션 영화의 주인공을 보며 ‘저 주인공의 행동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저 행위를 단지 주인공이 멋있다는 이유만으로 옹호하고 따라하려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거야. 그래서 이건 생각보다 커다란 문제야.’라는 생각을 낳고,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껌을 씹으면 안 된다.’는 이전보다 더 강력한 분위기가 형성되게 된다.
이렇듯 결과적으로는 제 1자, 제 3자 효과 모두 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고 다른 사람들의 도덕성을 깎아내리면서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의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강력한 도덕적 신념을 가진 거대한 여론을 형성하게 된다.
설명한 내용대로 결론을 내려 보면, 방송 미디어의 사회유산 전수 기능과 제 1자, 제 3자 효과들은 청소년에게 사회적으로 부가된 ‘고정 이미지’를 정당화하고, 강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청소년에게 요구되는 고정 이미지는 무엇일까? 설문조사에 남겨진 3가지의 답변을 참고하여, 그 답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A : 그냥 요즘 TV에서 학업이나 입시 관련한 말들 보면 뭔가 불편하다. 우리 학교랑 교육 철학이 달라서 그렇긴 하겠지만 성적이 잘 나오려면 특정한 과목을 들어야 한다는 그런 말들이 좀 그렇다.
B : 성공한 것만 보여주고 실패한 건 보여주지 않는다. 뭔가 도전하라면서 제대로 알려주는 건 없다.
C : 사실 저는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무릇 요구되는 기본적인 이미지들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대통령에게는 예의 바르고 타의 모범이 되며 겸손한 기타 등등의 이미지를 요구하듯 학생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신분에게는 그에게 요구되거나 기대되는 하나의 자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략)
처음 코멘트를 받아보고는 가장 먼저 A 분의 말에 마음이 갔다. 학교에서 학습하게 되는 것들을 그저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 더 나은 삶을 위해 거쳐 가는 것으로만 대하는 모습들 때문에 진정한 배움이 방해받는 느낌이 들 때가 많이 있다. 또한 학창시절을 그저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희생되어버리는 시간으로만 여기는 것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이러한 고정 이미지가 청소년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B 분의 의견을 보고나니 요즘 방송 미디어에 정석적인 ‘모범생’이라고 불리는 루트 밖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퇴를 했거나,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진학하지 않았거나 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여주며 꿈을 찾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고 말하고 있으면서, 실제로 뭔가 정석적인 루트에서 벗어나려 하면 주위에서 그리 좋은 시선으로 봐주지는 않는 현실이 조금은 씁쓸했다. 필자는 다른 사람이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하든지 크게 상관하는 편이 아니라 그런 부정적인 시선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부정적 시선의 의견에 동조하는 자신을 보면서 슬프기도 하다.
그렇게 두 분의 의견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나니 현재의 방송 미디어가 청소년의 삶을 특정한 목적성을 가지도록 고정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의 감정으로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지금의 방송 미디어는 청소년에게 자신들의 시간을 그저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시간으로 소비할 것을 권유하며, 새로운 선택을 위해 알아야 할 내용은 알려주지 않고 ‘성공’이라는 겉면만 보게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필자는 부모님이 입시나 학업 관련 TV 프로그램을 보고만 계셔도 자신이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비교되어 자존감이 낮아지는, 그런 삶을 미디어가 청소년들에게 불어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울함이 들었다.
하지만 C 분의 의견을 읽으니 어쩌면 이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청소년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자세가 크게 강조되지 않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담배라든지, 술이라든지 아무튼 청소년의 신분으로는 가까이 해선 안 되는 것들이 너무나 쉽게 노출되어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 말이다. 또한, 어른에게 갖춰야 하는 예의라던가, 성(性)과 관련된 문제, 민주주의 등은 청소년기에 다루어야 할 중요한 문제임에도 미디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결국 필자가 내린 결론은, 방송 미디어가 미디어의 사회적 역할인 사회유산의 전수를 올바르게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결론도 어딘가 치우쳐져서 필자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내린 성급한 의견일 수 있다. 그래도 이러한 문제점을 글로써 공론화시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만족스럽다. 글은 여기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필자의 결론은 현재 방송 미디어가 미디어의 사회적 역할인 사회유산의 전수를 올바르게 이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청소년에게 강조해야 할 부분을 제대로 강조하지 못하고, 그들의 삶의 목적성을 정해진 틀 안에 맞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독자들의 결론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미디어의 중요한 사회적 역할인 사회유산 전수 기능, 그리고 모든 구성원의 도덕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제 1자 효과와 제 3자 효과,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방송 미디어를 통해 느낀 점들을 종합해봤을 때, 우리는 방송 미디어를 어떻게 선택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초급자를 향한 배려도, 상급자가 가지는 능숙함도 없는 불친절 속에 스스로 성장하려 노력하는 우리, 중급자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