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청소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 인터넷 미디어

inter-Media-te / 장한

by 와이파이



inter : [라틴어] 사이에, 틈에, 가운데에

media : [영어] 미디어

te : [라틴어] 너, 당신

당신과 미디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 열광하고, 혐오하며, 존경하고, 무시하는 과정들. 어린 눈으로만 바라보던 세상을,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시기, 지금 우리는 초급자도, 상급자도 아닌, 중급자들이다. 초급자를 향한 배려도, 상급자가 가지는 능숙함도 없는 불친절 속에 스스로 성장하려 노력하는 우리들에게, 조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미디어는 우리를 어떻게 만들어왔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져가고 싶은가. ‘나’라는 인격의 주체로서, 자신만의 눈과 귀를 가지는 수신자로서.




「미디어는 청소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저번과 같은 질문이다. 당연하게도 내용은 다를 것이다. 어떻게 다를 것인지 몇몇 독자들은 이미 눈치를 챘을지도 모른다. 힌트는 바로 제목에 있다. 물론, 저번에는 방송 미디어이고 오늘은 보시다시피 인터넷 미디어이지만, 그 앞부분에 미묘한 차이가 숨어있다. 저번 기사의 제목은 ‘미디어는 청소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였다. 그렇다면 이번 기사는? ‘미디어는 청소년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이다. 저번 기사에서는 미디어의 사회유산 전수 기능과 제 1자, 제 3자 효과가 청소년을 어떻게 비추는지를 집중하여 보았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미디어의 기능과 새로운 미디어의 사회적 효과를 통해 미디어가 청소년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 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저번 글과는 다르게, 짧은 서론을 두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고자 한다. 다시 한 번 보시다시피, 이번 기사의 주제는 「인터넷 미디어」이다.


이번에도 먼저 인터넷 미디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내리려고 한다. 인터넷 미디어란 인터넷 공간에서 현실의 커뮤니티 역할을 할 수 있는 허브와 그 허브로부터 발생된 각종 정보들과 그 정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모두 아우른다. 그냥 컴퓨터나 핸드폰에 인터넷 연결되어 있으면 할 수 있는 걸 다 말한다고 보면 된다. 단, 게임은 제외한다. 게임 미디어는 인터넷 미디어와는 다르게 가지는 추가적인 특성이 있기 때문에 따로 다루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이우학교 학생들이 생각한 인터넷 미디어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의 결과를 공유해보려고 한다. 저번 기사에서 사용한 설문조사와 같은 설문조사이기에 세부 설명은 생략하겠다.


wg.PNG 주이용자 평가 비율 = 각 미디어 항목의 부정응답 합계 ÷ 각 미디어 항목의 주이용자 응답 합계


저번 기사의 주제였던 방송 미디어가 고정 이미지를 제외하고는 낮은 수치를 보였던 것에 반해 인터넷 미디어는 모든 항목에서 상당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혐오 표현에 대한 응답 비율은 85%에 달했다. 설문조사에서는 혐오 표현을 ‘급식충, 성적대상화 등’으로 정의했으며, 전체 응답자 중 이를 경험했다고 답한 수는 71.6%였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보편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인터넷 미디어인 만큼 당연하지 않나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위의 그래프는 인터넷 미디어를 자주 사용한다고 답한 100명에게 혐오 표현을 겪은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85명이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임 미디어가 100명 중 69명 남짓, 방송 미디어는 17명 남짓인 것을 보면 응답자 수가 많다고 해서 수치가 왜곡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청소년의 인식 속의 인터넷 미디어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혐오 표현이다. 전체 응답자 중, 인터넷 미디어 중에서도 영상 플랫폼을 사용한다고 답했던 사람들만 세어 봐도 85.1%인 만큼, 거의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혐오 표현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청소년들이 혐오 표현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주체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혐오 표현을 경험했다는 응답자 중 혐오 표현을 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48.5%로, 적지 않은 수치였다. 지금 새로이 설명할 미디어의 기능과 효과에 비추어보면 청소년에 대한 혐오 표현을 청소년이 하고 있다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어째서 지금의 인터넷 미디어가 이토록 청소년에게 적대적인 언어를 사용하는지는 가장 대표적인 청소년에 대한 혐오 어휘인 ‘급식충’의 유래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중학생들이 하교하는 오후 3~4시 전반, 고등학생들이 하교하는 5~6시 전반에 게임에서 학생들이 접속하는 시간대에 무개념 행위가 다소 벌어지는 것 때문에 생긴 피해의 관여로 급식충이라는 단어가 생기게 되었다.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몇몇 커뮤니티 등에서 쓰이다가 현재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쓰이게 되었다.” (출처 : 나무위키)


급식충이라는 용어의 탄생 배경에는 청소년들이 하교 후, 게임에 주로 접속하는 시간에 ‘무개념’이라고 불리는 상호 존중이 결여된, 사회적 규율을 무시하는 사태가 자주 일어났다는 사건과 상황이 있다. 그리고 인터넷 커뮤니티는 상황에 대한 원인을 청소년이라고 생각하는 나름 논리적이고 사실과 근거에 기반을 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미디어가 가지는 사회적 기능인 ‘상관조정 기능’이 끼어들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디어의 상관조정 기능이란, 사건이나 상황을 미디어의 주관을 가지고 평가, 해석함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사건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기능을 말한다. 상관조정 기능은 사건과 상황의 중점을 찾아 사회가 이 사건의 원인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를 확대시킬 수 있는 미디어의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다만, 이 또한 역기능으로 자리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보도 중 편견이 개입되어 불공정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의 중요한 쟁점에 대한 논평을 거부함으로 사건의 중요성을 흐릴 수도 있으며, 기득권층의 주장을 일반 대중에게 세뇌시키거나 원인에 대한 강조로 강한 분리주의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분리주의가 청소년을 향했을 때, 저러한 혐오 어휘가 탄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청소년들의 매너를 지키지 않은 행동으로 그들이 비판받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번 미국의 코로나 사태를 생각해보자. 미국에서의 코로나 확산은 표면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했으며 중국 정부가 이에 대한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트럼프 행정부가 방역에 안일하고 미흡한 모습을 보여 바이러스 확산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트럼프 행정부는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원인을 중국의 탓으로 돌렸다. 이 결과 미국에서는 중국,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정서가 늘어났다. 하지만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비판을 중국에 대한 것보다 더 강하게 했다. 그 결과 민주당세가 강한 지역들은 트럼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늘어갔다. 같은 상황이었지만 어떤 원인을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 게임에서의 청소년들의 행동은 비판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처럼 혐오로 이어져서는 안됐다. 지금의 미국의 아시아인 혐오정서가 잘못된 것처럼.


하지만 상관조정 기능만으로는 이렇게까지 혐오 정서가 확산된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지금의 혐오정서는 ‘편향된 지각’ 또한 원인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편향된 지각을 만들어낼 수 있는 미디어의 효과에 대한 이론이 바로 ‘배양효과 이론’이다.


배양효과 이론은 미디어가 각색, 재해석, 보도 등을 통해 비추는 세상의 모습을 사용자가 자신의 인식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대표적인 실험으로 범죄영화나 뉴스를 많이 접하는 사람일수록 세상에 대해 더 불안하고, 비도덕적인 곳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다만 이는 함부로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미디어는 이러한 효과를 가지기도 한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이러한 배양효과는 혐오정서와 맞물려서 돌아가게 되면 굉장한 시너지를 가진다.


만약 한번도 ‘급식충 유저’를 겪지 못한 사람인 A가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참고로 A는 무직이다. 이 유저는 어젯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청소년이 저지른 비매너 행위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리고 오늘, 게임에 접속했는데, 비매너 행위를 하는 다른 유저에게 피해를 받았다. 마침 시간도 고등학생들의 주 접속 시간이었던 오후 5~6시 사이였다. 그렇다면 A는 자신에게 피해를 끼친 다른 유저가 ‘급식충’이라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또 다시 게임에 접속한 A는 어제의 수법과 비슷한 방법으로 피해를 끼치는 다른 유저를 발견했다. 비록 시간은 오전이었지만 말투와 수법이 A의 눈에 너무나 청소년 같았기에 그는 그 유저에게 ‘학교 가서 공부나 해 급식충아.’라는 채팅을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인터넷 방송을 보기 시작한 A는 방송 시청자 중 눈치가 없고 분위기를 흐리는 다른 시청자를 발견했다. A는 생각했다. ‘이제는 급식충들이 인터넷 방송까지 물을 흐리는구나.’ 그리고 그 인터넷 방송의 진행자는 급식충들은 좀 나가라는 멘트를 했으며, A는 그 말에 통쾌해했다.


비록 위의 이야기가 너무나 압축적이고 중간 과정의 생략이 많긴 하지만, 필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지는 잘 전달되었을 것 같다. 배양효과를 통한 인식은 처음에는 사실을 인지하거나 논리적인 추측을 따르는 듯하다가, 결과적으로는 편향된 사고를 가지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예시였다. 사실 위의 예시에서 오전에 만난 유저가 청소년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동안 게임을 하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급식충 유저를 그들이 가장 없는 시간대인 오전에 만난다? 그건 그럴 수 있다 치자. 이젠 공간 자체가 게임에서 인터넷 방송으로 달라졌다. 인터넷 방송에서 눈치 없는 행동을 하는 다른 유저가 청소년일 확률은 얼마나 될까? 오전의 유저는 말투라는 근거가 있기라도 하지, 눈치 없는 것이 타당한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필자는 지금 무엇이든지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급식충’에게 당한 것과 ‘급식충으로 자신이 추정한’ 것에게 당한 것이 구분되지 않은 채 동일 선상에서 고려되어 인터넷 미디어의 청소년에 대한 혐오 정서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 예시가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또한, 저 A가 청소년이라고 해도 저 시나리오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위에서 밝혔듯이 청소년에 대한 혐오 표현을 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절반에 가까운 숫자인 만큼, 이미 청소년들 또한 자신들에게 자조적인 표현을 하기 일쑤이다. 또 대놓고 혐오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급식충이라는 용어에 대해 큰 문제의식 없이 그냥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 또한 많다. 이것이야말로 배양효과의 가장 부정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혐오를 당하는 당사자들 또한 이러한 혐오가 정당하고 옳다고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힘은 저항의지를 봉쇄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까지 인터넷 미디어에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청소년에 대한 혐오 정서가 증가해왔는지를 상관조정 기능과 배양효과 이론을 통해 알아봤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인터넷에서 접한 혐오 표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앞서 대표로 들어 설명한 ‘급식충’을 제외하고도 많은 표현들을 응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아래의 응답자 자신들이 경험한 혐오 표현과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적힌 코멘트를 읽고, 필자의 생각을 논하며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A : 유튜브나 아프리카 tv 같은 청소년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 소수자(청소년, 여성, 성소수자 등등)에 대한 무차별적인 혐오를 하거나 폭력적인 언어를 쓰며 주관적인 생각을 말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선동당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B : 유튜브 같은 영상 매체에서 나오는 잘못된 정보나 그런 영상 밑에 달린 댓글 같은 것에 현혹되어서 잘못된 정보를 알아가고 잘못된 인식이 생기는 경우를 본 적이 있기에 이런 점이 매우 부정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C : 미디어에서 혐오적인 댓글 (악플)등을 다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D : 커뮤니티의 익명성을 이용한 각종 혐오 발언들..

E : 잼민이 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비하한다.


필자는 이 중 A 분이 사용한 ‘선동’이라는 단어에 큰 공감을 표하고 싶다. 사실 인터넷 미디어는 정보 공간과 동시에 오락 공간의 성향도 지니고 있기에, B 분의 말처럼 잘못된 인식과 정보가 퍼지기에는 너무나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정보 공간에서 가져야 할 충분한 긴장감이 오락 공간이라는 성향에 따라 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정보에 대한 수용의 경험이 아직은 많이 필요한 우리 청소년들, 중급자들은 더욱 힘들 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위의 코멘트들을 읽으면서 그 공간에서 혐오를 당하고, 배우고, 행했던 응답자들의 마음에 많은 공감이 갔다. 그래서 오늘의 기사는 많은 위로로 마치고 싶다. 어찌 보면 슬프기도 한 기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혐오당하고 있으며, 스스로가 그 혐오를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하지만 우리 또한 그러한 혐오를 자행한 적이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커다란 상처로 남았으리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필자는 누군가는 이러한 혐오의 고리를 끊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이 기사를 쓰는 필자와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이었으면 좋겠다. 이번 기사는 중급자를 위했던, inter-Media-te의 의도와 가장 잘 맞는 기사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미디어 공간에는 더 이상 상관조정의 역기능과 배양효과의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모두가 혐오에 대해 조금은 자각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사를 마친다. 초급자를 향한 배려도, 상급자가 가지는 능숙함도 없는 불친절 속에 스스로 성장하려 노력하는 우리, 중급자들에게, 오늘은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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