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동성애자 지지 발언 & 큐아논 - 걸어서 __ 속으로/ 윤지우
*걸어서 __ 속으로 는 한 달간의 국제 이슈들을 모아 이미지와 함께 더 쉽게 알리는 코너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듯이, TV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 차용했다. 이 코너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한 층 더 알아보고, 관심을 가져보는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10월 21일, 이탈리아 로마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프란치스코> 내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자를 ‘주님의 자녀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그들도 가족이 될 권리가 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버려지거나 비참해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나옵니다. 더 나아가, 그는 동성애자들이 법적으로 보호받기 위해 ‘시민결합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가톨릭 교리는 결혼은 남자와 여자 간에 이뤄지는 것이며 동성 결혼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동성 간 시민 결합법은 동성 커플의 결혼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성 간 결혼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법입니다. 일부 유럽 국가와 미국의 일부 주에서 시행하고 있죠.
(+ 프랑스의 유명한 제도인 팍스(PACS: Pacte civil de solidarité 시민연대계약) 또한 대표적인 시민 결합 제도입니다. 동성결혼 합법화 이후 동성커플 뿐만 아니라 결혼에 담긴 종교적, 전통적 사고에 동의하지 않거나 간소한 방식의 결합을 원하는 커플에게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난 3일, 교황의 발언에 대해 교황청 국무원이 해명했습니다. 국무원은 다큐멘터리에서 등장한 교황의 발언은 2019년 5월 멕시코 방송사와의 인터뷰와 <프란치스코>의 감독 예브게니 아피네옙스키 감독이 직접 진행한 인터뷰 두 건을 편집해 맥락이 왜곡됐다고 설명했습니다. 1년 전 멕시코 최대 방송사인 텔레비사와의 인터뷰에서 교황은 ‘동성애자들도 가정에 속할 권리가 있다. 그들도 신들의 자식이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가정에서 내쫓을 수도 없고, 그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습니다. 이에 대해 국무원은 ‘동성애 성향의 교인이 가족에게서 버림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실제 편집 전 인터뷰 원본에는 '동성 간 결혼에 대해 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으나 다큐멘터리에서는 이 부분이 통째로 잘려 나갔다고 전했습니다. 국무원은 이러한 점을 언급하며 교황이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러시아 태생의 미국인 에브게니 아피네예브스키 감독은 그 자신이 동성애자로, 2009년에는 유대인 가정에서의 동성애 자녀 포용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바 있습니다. 그는 현재까지 다큐멘터리에 인용된 교황 인터뷰의 편집 과정에 대해 해명하지 않고 있죠.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으로서는 역대 최초로 ‘시민결합법’의 필요성에 대해 말한 것은 놀랄 만한 일입니다. 전 세계 교회를 대표하는 교황의 입장에서 그러한 말이 나온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 의미가 무엇이든 그들이 가족을 이룰 권리가 보장된 사회, 존재로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1월 3일, 미국 대선 선거가 이루어졌습니다. 트럼프의 집권 연장이 될 것이냐, 바이든의 당선일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전세계적으로 뜨거웠죠. 대선이 진행되기 전 두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 간의 다툼도 떠들썩했습니다. 그 중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의 인종주의 단체이자 신흥 극우주의 음모론 사이트인 큐아논(QAnon)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음모론이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일루미나티가 있습니다.)
큐아논은 극단주의 성향으로 악명 높은 미국 인터넷 커뮤니티 ‘포챈(4chan)’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이 미국 정부의 비밀문서를 열람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는 ‘Q’라는 유저가 2017년부터 올린 글에서 시작되었죠 알파벳 Q는 미국 에너지부의 최고 기밀 취급 등급인 Q에서 착안한 명칭입니다.. 큐아논은 Q에 익명(Anonymous)이란 단어가 더해진 합성어입니다. Q가 올리는 글은 예언서처럼 암시와 상징, 알파벳 약자로 가득합니다. 많은 네티즌들이 암호문과도 같은 그의 글을 해석하고 추종하기 시작했는데, 큐아논은 Q를 믿고 따르는 세력, 이들이 제기하는 음모론을 통합적으로 칭하는 개념입니다.
큐아논은 백인 우월주의를 앞세워 유색 인종과 비기독교도를 비하합니다. 코로나19 위험도 과장됐다고 믿으며, 백신과 마스크도 반대하죠. 딥 스테이트에 맞서 행동해야 한다고 선동합니다. 캘리포니아의 한 큐아논 지지자는 ‘진실’을 폭로하겠다며 폭탄 테러를 계획하다 체포되기도 하였습니다. / 이들은 미국 민주당과 세계 단체 관련자들, 그리고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같은 유명인들이 그림자 정부인 딥 스테이트(Deep State)의 일원이라며, 영생 불사를 위해 아이들을 납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딥 스테이트란 정부 안에 깊숙이 뿌리 내린 강력하지만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세력을 말합니다.) 다만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일반적인 음모론자들이 현재의 불안정한 세계를 종교나 외계인, 과학적인 요소가 해결해 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는 것에 비해 큐아논은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을 해결책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큐아논의 중신인 Q는 트럼프 행정부를 정부, 산업, 언론 등을 접수한 ‘반 미국적’ 무리에 맞서 싸우는 정복자로 묘사합니다. 그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세상을 구원한 유일한 메시아라고 주장합니다. 최근에는 빌 게이츠가 자신이 개발한 백신을 팔기 위해 일부러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트렸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죠.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보건기구에 돈을 기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빌 게이츠가 ‘위험한 결정’이라고 지적하자, 이를 견제하고자 만들어진 가짜뉴스가 아니냐는 추측이 많았습니다. 트럼프는 큐아논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근래 진행된 백악관 브리핑에서 그는 ‘(큐아논이) 날 굉장히 좋아해 줘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흑인들의) 폭력 시위에 분노해 일어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트위터에서 큐아논 관련 계정의 게시물을 수차례 리트윗하기도 했습니다.
큐아논은 원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비주류였습니다. 하지만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 서비스와 결합하며, 최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조직적인 유권자 그룹이 되었죠. ‘Q’ 추종자들을 위한 앱 큐 드롭스는 지난 4월 애플 앱스토어에서 가장 많이 내려받은 앱 10위 안에 들었고, 3월에 출범한 큐어넌닷펍(Qanon.pub) 사이트는 한 달간 700만명이 방문했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SNS에서 가짜뉴스를 선동해 퍼드리는 것이 그치지 않고 직접 시위 현장으로 나와 자신의 존재를 알리거나 미국 정계에 진출하는 등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현재 큐아논의 세력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큐아논 관련 계정에 접근 제한 조치를 내렸습니다. 유튜브도 큐아논 영상이 검색에 잘 노출되지 않도록 알고리즘을 번경했죠. 하지만 큐아논은 이미 미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것처럼 보입니다. 트럼프가 낙선하더라도 그들은 선동과 가짜 뉴스를 통해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표현의 자유’를 어느 정도로 제한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지만, 가짜뉴스나 혐오 표현에 대한 문제가 음모론을 타고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제도적 장치를 만들 수 있을 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큐아논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영상 첨부 ↓
: https://www.youtube.com/watch?v=n_POsiXfC2c